로봇, ‘움직이는 지능’으로 산업 판 흔드는 중

 

그동안 로봇은 정해진 위치에 갇힌 채 맹목적으로 팔(Arm)을 흔들었다. 거대하고 무거운 몸으로 오직 한 가지 작업만을 반복하며 생산성을 책임지는 '고정된 노동자'였다. 하지만 이제 로봇은 더 이상 제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공장 바닥을 자유롭게 누비고, 사람처럼 스스로 판단하며, 환경에 적응하는 '지능형 파트너'로 진화하고 있다.

 

이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의 중심에는 바로 '모바일 매니퓰레이터(Mobile Manipulator)'라는 혁신적인 폼팩터가 있다. 이는 정밀한 작업을 수행하는 협동 로봇(코봇)과 자율적으로 이동하는 자율주행로봇(AMR)이 결합된, 그야말로 '움직이는 지능'이다.

 

과거에는 생산 라인 전체를 갈아엎어야만 가능했던 혁신이 이제는 로봇 한 대의 도입만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로봇은 더 이상 정해진 경로를 따라 부품을 옮기는 단순한 운송 수단에서 벗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스스로 최적의 동선을 파악하고, 돌발 상황에 대응하며, 작업 위치를 유연하게 재배치하는 자율형 비즈니스 자산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이는 제조업 현장의 고질적인 비효율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로봇이 곧 기업의 핵심 경쟁력이 되는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다.

 

특히 제조업에서는 스마트 팩토리(Smart Factory)을 넘어, 로봇이 스스로 판단하고 학습하는 '피지컬 AI(Physical AI)' 시대로 향하고 있다. 이러한 거대한 흐름의 중심에서, 로봇 기술은 지금 이 시간에도 발전하는 중이다. 정밀한 코봇의 DNA와 민첩한 AMR의 강점을 결합한 ‘통합 솔루션’이 그 중심에 있다. 해당 전략은 인력난과 생산성 한계라는 두 가지 난제를 동시에 해결할 게임 체인저가 될 전망이다.

 

로봇 업계 최신 키워드 ‘기술 융합’...지능·이동성 결합이 관건

 

 

최근 미국, 유럽, 독일 등 선진국에서는 AMR에 코봇 팔을 장착한 모바일 매니퓰레이터 개발 및 적용이 활발하다. 이는 물건을 옮기는 기존 로봇의 목적을 넘어서는 가치로의 재탄생을 의미한다. 이동하면서 특정 작업을 수행하는 로봇에 대한 시장의 요구를 반영한 결과다.

 

글로벌 산업용 테스트 장비 기술 업체 테라다인(Teradyne)의 로봇 사업 부문인 ‘테라다인로보틱스’가 한국 시장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사측은 코봇 솔루션 업체 유니버설로봇과 AMR 기술 업체 모바일 인더스트리얼 로보틱스(MiR 이하 미르) 등 덴마크 소재 로봇 업체를 한 지붕 아래 뒀다. 이로써 모바일 매니퓰레이터 시장에 본격 진출하게 됐다.

 

이내형 테라다인로보틱스코리아(이하 테라다인) 대표는 “이상적인 것은 코봇과 AMR이 유연하게 협업하는 것”이라며 “최근 유니버설로봇과 미르를 통합해 비즈니스 시너지 창출에 집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자동차·전기전자·반도체 등 대기업들은 이미 모바일 매니퓰레이터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위험 물질 제어처럼 작업자가 직접 수행하기 어려운 작업을 로봇이 대신하는 비전이 주 목적”이라고 강조하며 브랜드 통합 배경을 설명했다. 이번 결집은 이러한 시장의 니즈에 발맞춰 연구개발(R&D) 효율성을 높이고, 영업·마케팅 조직의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한 결정이다.

 

사용자 경험의 새로운 방향성...“통합 솔루션이 혁신 청사진”

 

이내형 대표는 해당 비즈니스 통합이 기술 결합과 고객 경험의 혁신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코봇과 AMR의 역량을 하나로 합침으로써 다양한 용도에 맞춘 제품 라인업 확장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다. 여기에 신규 공장 솔루션 제공, 고객 교육 시스템 통합 등 측면에서의 이점을 노리고 있다.

 

 

이 대표는 세분화된 제품 라인업과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에 대해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기존에는 모델별로 가반하중이나 작업 반경에 제한이 있어 ‘성능 과잉’의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사용자는 이번 통합을 통해, 작업 환경에 맞춰 3·7·12·16·20·30kg 등으로 가반하중이 각각 세분화되고 작업 반경도 나뉜 코봇 모델을 선택적으로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게 됐다. 유니버설로봇의 UR3·UR7·UR12·UR16·UR20·UR30 등 제품이 이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용접과 같이 로봇 팔 길이가 중요한 특정 애플리케이션의 경우, 목적과 다른 과도한 사양의 대형 로봇 대신 작업 반경에 최적화된 소형 로봇을 선택할 수 있다. 또한 AMR에 탑재할 코봇은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AMR에 맞춰 기존 제품 대비 더 빠르게 동작하는 신규 모델을 제공함으로써 유연한 협업을 지원한다.

 

다른 한편, 코봇은 그동안 신규 공장 프로젝트에서의 시너지를 위해 기존 공장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개념으로 도입됐다. 미르 AMR도 주로 신규 공장 구축 시 컨베이어 벨트나 무인운반차(AGV)를 대체하는 용도로 사용됐다. 이제 두 폼팩터의 통합으로, 배터리 공장 등 신규 프로젝트에서 코봇과 AMR을 함께 사용하는 통합 솔루션을 구현하고 있다.

 

이어 통합 교육 프로그램을 구축하는 것에 대해 이 대표는 “코봇은 누구나 쉽게 다룰 줄 알아야 하는 폼팩터”라고 강조하며 교육 및 인재 양성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유니버설로봇은 이 일환으로, 전 세계 150여 개의 트레이닝 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미르도 데모룸 형태의 공간을 운영해 직접적인 체험을 지원한다.

 

▲ 태블릿 형태의 코봇 제어기 '티치 팬던트(Teach Pendant)'를 통해 코봇의 가동을 훈련하고 있다. (촬영·편집 : 헬로티 최재규 기자)

▲ 동작을 학습(Teaching)한 코봇이 그대로 움직임을 구현하는 모습(좌)과 해당 로봇에 탑재된 카메라의 모습을 사용자 화면(UI)에 띄운 장면(우). (촬영·편집 : 헬로티 최재규 기자)

 

테라다인은 내년까지 경기 의왕, 충남 천안, 경북 대구 등 전국 주요 거점에 통합 교육 센터를 구축할 계획이다. 이 시설에서는 유니버설로봇·미르의 통합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할 전망이다. 이를 통해 고등학생·대학생 등 미래 인력은 물론, 현장 엔지니어가 로봇을 즉시 활용하도록 하고, 나아가 로봇 생태계 확장에 기여할 방침이다.

 

한국 시장 공략, 전략적 생태계 구축에 나서다

 

이 대표는 한국 로봇 시장의 특수성에 대해 경쟁이 치열한 아시아 기반 시장이라고 정의했다. 코봇만 하더라도 국내외 여러 제조사가 이 시장에서 경쟁하는 흐름이다. 테라다인은 이 양상에서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협력 생태계’를 강조한다. 이때 유니버설로봇의 로봇과 호환되는 주변기기·부품·소프트웨어 등을 개발하는 전 세계 파트너사의 네트워크 ‘UR 플러스(UR+)’를 앞세운다.

 

이내형 대표는 여기에 다양한 글로벌 파트너사들과 공동 행사를 개최하고, 국내 비전 기술 업체들과의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거시적인 전략을 밝혔다. 특히 해외 진출을 꿈꾸는 국내 로봇 기업들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이들이 UR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목표다.

 

 

그는 이어 이종 산업 간 기술 접목과 로봇 애플리케이션 수요 확장에 대해서도 의견을 내비쳤다. 최근 건설·반도체 등 이종 산업에서 로봇 도입이 활발해지고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특히 건설 현장에서는 AMR이 자재를 운반하고 코봇이 특정 작업을 수행하는 개념증명(PoC)이 진행되며, 반도체 산업에서는 위험 물질을 이송하는 작업에 로봇이 투입되고 있다.

 

그는 “사람이 보호복을 입고 들어가던 위험한 현장을 로봇이 대체하고 있다”며 UR30을 활용한 위험 물질 처리 사례를 언급했다. 이와 동시에 이 대표는 “지금 시점에서 주목받는 휴머노이드 로봇(Humanoid Robot)은 차세대 로봇 폼팩터가 맞지만, 공간 제약이 있는 복잡한 제조업 환경에 최적화된 모바일 매니퓰레이터가 그 가치를 지속 증명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실제로 신규 구축 공장에서는 컨베이어 벨트나 스키드(Skid)를 대체하는 차원에서 코봇·AMR·AGV 등의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며 로봇 폼팩터 트렌드 변화의 움직임을 진단했다.

 

하드웨어 넘어선 로봇의 미래 비전, 인공지능(AI)·소프트웨어로 ‘승부수’

 

이내형 대표는 한국 로봇 산업의 미래에 대한 냉철한 분석도 내놨다. 그는 최근 국내 로봇 제조사들의 위험 요인으로 ‘중국산 로봇의 국내 시장 잠식’을 꼽았다. 그러면서 “한국 로봇 산업은 가격 경쟁력을 내세우는 중국 소재 로봇과 경쟁해야 하는 환경”이라고 우려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은 차별화된 기술력”이라고 역설했다.

 

그가 내세우는 핵심 포인트는 고도화되고 유연한 로봇 하드웨어와 인공지능(AI) 기반 소프트웨어 기술의 접목이다. 이 대표는 “로봇 하드웨어와 기계 설계는 어느 정도 상향 평준화된 영역”이라며 “비전(Vision) 기술을 이용한 로봇 인지 성능과 그에 따른 프로세싱 기술은 여전히 높은 수준의 역량이 필요한 분야”라고 언급했다.

 

실제로 테라다인은 이러한 시각을 반영해 국내 AI 비전 기술 업체들과의 협업을 지속하고 있다. 이를 통해 코봇 모델의 지능을 끌어올리고 있고, 각종 현장에 코봇을 도입해 현장 역량과 로봇 기술을 융합하는 데 힘쓰고 있다. 대표적으로, 조선·해양 분야 대기업 조선소에 용접 로봇을 공급해 역량 다지기를 집중하는 사례가 있다.

 

무엇보다, 테라다인은 소프트웨어 역량 강화를 위해 글로벌 AI 컴퓨팅 기술 업체 엔비디아(NVIDIA)와 긴밀한 협력을 진행 중이다. 로봇의 인지 능력을 극대화하고 자율성을 높이기 위해 엔비디아의 AI 플랫폼과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이를 통해 로봇이 더욱 복잡한 환경에서 사람처럼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진화시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유니버설로봇의 자체 소프트웨어 플랫폼 ‘폴리스코프(Polyscope)’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사용자가 직관적으로 로봇을 프로그래밍하고 제어하도록 기반을 마련했다.

 

미르 역시 ‘미르 플릿(MiR Fleet)’을 통해 다중 AMR을 효율적으로 통합 관리하고 최적의 경로를 설정하는 데 기여한다. 아울러 최근에 론칭한 ‘미르 AI(MiR AI)’는 로봇이 환경 변화에 더욱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움직이도록 지능을 고도화했다.

 

▲ 지능형 기술이 내재화된 테라다인 모바일 매니퓰레이터 모델 'MC600'이 작업자를 대신해 다양한 공정에서 활약하고 있다. (왼쪽부터) 생산 라인 최종 제품을 출하하는 과정을 준비하는 공정, 완제품 박스를 팔레트 위에 쌓는 팔레타이징(Palletizing), 특정 기계에 자재·부품을 공급하고 가공이 완료된 제품을 꺼내는 머신텐딩(Machine-tending) 작업. (촬영·편집 : 헬로티 최재규 기자)

 

사측은 이러한 소프트웨어 기술력은 하드웨어 경쟁을 넘어선 진정한 솔루션 차별화 전략의 핵심이라고 내세운다.

 

대표는 “국내 로봇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시장 안에서 경쟁하거나 견제하는 분위기에서 벗어나야 하며, 산업 내 기술력·경쟁력을 가진 주체가 적극적으로 나서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액세서리 등 로봇 생태계 전반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테라다인은 모바일 매니퓰레이터를 시장 통합 및 선도의 혁신 비전으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기술적 난제인 콧봇의 안전성과 AMR의 자율성을 결합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특히 우레탄 재질의 바닥이나 물기가 있는 환경에서 AMR이 배터리 문제나 슬립(Slip) 현상 없이 안정적으로 구동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적 해법을 찾고 있다.

 

이 대표는 “로봇 도입이 단순한 비용 발생이 아닌, 위기 극복을 위한 필수 투자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 집중할 것”이라며 특히 로봇 교육 및 인프라 구축을 통해 중소기업의 디지털 전환(DX)을 돕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아울러 그는 “로봇 산업이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식음료(F&B)와 같은 단일 도메인에만 로봇 도입이 활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며, 제조·물류·건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로봇의 활용도를 높이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 산업과 제조업이 로봇 기술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궁극적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제시했다.

 

헬로티 최재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