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High Bandwidth Memory)은 AI 개발을 위한 컴퓨팅 요구사항을 충족시키는 핵심 기술로 자리잡고 있다. HBM이 가진 높은 잠재력과 함께 개발 선두에 선 SK하이닉스의 행보에 연일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메모리 반도체 강자인 SK하이닉스는 확장하는 AI 시장을 주목하고, AI 인프라의 필수 품목인 GPU에 포함되는 HBM 개발 및 양산에 빠르게 착수했다. 이에 HBM 시장에서 경쟁 기업보다 한 걸음 빠르게 움직이게 됐고, 점차 격차를 벌리고 있다.
‘5조 원대 영업익’ 부활의 신호탄 된 HBM
SK하이닉스가 올해 2분기를 기점으로 완전한 부활을 알렸다. SK하이닉스는 6년 만에 분기 영업이익 5조 원대를 기록하며, 지난 부진을 말끔히 씻었다. 이 과정에서 HBM이 톡톡히 자기 역할을 수행했다. 지난 7월 SK하이닉스는 연결 기준 올해 2분기 매출 16억4233억 원, 영업이익 5조4685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흑자 전환에 성공했음을 발표했다. 영업이익의 경우 반도체 슈퍼사이클이었던 2018년 2분기와 3분기 이후 6년 만에 5조 원대 진입이었다.
괄목할 성적을 기록한 SK하이닉스는 중국과 미국에서도 호실적을 기록했다. 지난 8월 SK하이닉스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외 지역별 매출 합계(28조8528억 원)에서 중국과 미국은 각각 29.8%, 55.4%의 비중을 차지했다. SK하이닉스는 상반기에 중국에서 8조6061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전년 동기 대비 두 배 이상을 달성했다. 미국에서는 전년 동기 대비 세 배에 가까운 수치를 기록했다.
SK하이닉스가 거둔 성적은 반도체 업황이 전환되는 시기와 맞물렸을 뿐 아니라 빅테크로부터 얻은 매출 상승이 컸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D램과 낸드 모두 가격이 상승한 데다 메모리 제품의 판매 확대 등의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상반기 SK하이닉스의 전체 D램과 낸드 매출은 각각 18조1938억 원, 9조5919억 원을 달성했다.
시장에서의 기업 평가도 안정을 되찾았다. 무디스는 SK하이닉스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조정했으며, 발행자·선순위 무담보 신용등급 ‘Baa2’는 유지했다. 무디스는 이번 조정에 대해 “SK하이닉스의 수익과 현금흐름이 개선되고 부채 감축을 위한 노력이 향후 약 18개월 동안 재무 완충력을 강화할 것임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SK하이닉스의 장기 발행자 신용 등급과 선순위 무담보 채권 등급을 ‘BBB-’에서 ‘BBB’로 상향 조정했다. 등급 전망은 ‘안정적’이라고 평가했다. S&P는 SK하이닉스가 HBM 시장을 선도하며, 이후에도 자체 기술과 제품으로 경쟁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든든한 엔비디아 그리고 보조금
엔비디아는 현재 SK하이닉스와 공고한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이에 5세대 고대역폭 메모리인 HBM3E의 엔비디아 소비점유율이 85%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트렌드포스는 “엔비디아의 H200 출하로, 올해는 HBM3E 소비점유율이 60% 이상으로 높아질 것”이라며 “내년에는 블랙웰 플랫폼에서 HBM3E의 포괄적인 채택, 제품 레이어의 증가, 단일 칩 HBM 용량의 증가로 엔비디아의 HBM3E 소비가 85% 이상으로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올해 하반기 시장은 HBM3E 12단 제품에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HBM 시장 주류는 HBM3와 HBM3E 8단 제품이지만, 최신 AI 칩에 더 높은 용량과 성능의 HBM이 필요해지면서 12단 제품에 대한 수요가 점차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 예로, 블랙웰 울트라의 경우 8개의 HBM3E 12단 스택을 활용하며, 기존 GB200도 곧 선보일 B200A와 함께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
이에 내년에 HBM3E에서 12단 제품 비중이 40%까지 증가하고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3월부터 HBM3E 8단을 엔비디아에 납품하기 시작했으며, HBM3E 12단 제품은 이미 주요 고객사에 샘플 공급을 마쳤으며, 이번 분기 양산을 시작해 4분기부터 고객에게 공급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SK하이닉스에 또 하나의 호재도 들려왔다. SK하이닉스가 미국 상무부로부터 인디애나주 반도체 패키징 생산기지 투자와 관련해 최대 6200억 원 규모의 직접 보조금을 받게 됐다. 예비거래각서에 따라, SK하이닉스는 미 정부의 직접 자금 지원 외에도 5억 달러의 대출을 지원받을 수 있다.
미국 재무부는 SK하이닉스가 미국에서 투자하는 금액의 최대 25%까지 세액 공제 혜택도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SK하이닉스의 투자 금액 대비 직접 보조금 비중은 11.6%로, TSMC(10.2%)와 인텔(8.5%)에 비하면 높은 수준이다. 텍사스주 반도체 공장 투자로 보조금 64억 달러를 받게 된 삼성전자의 투자 금액 대비 직접 보조금 비중은 14.2% 수준이다.
HBM에 사활거는 SK하이닉스
SK하이닉스는 지난 8월 이천포럼 2024을 열고 주요 고객사를 대상으로 한 비즈니스 전략을 논의했다. 이날 류성수 SK하이닉스 HBM 비즈니스 담당 부사장은 “매그니피센트 7에 해당하는 기업들이 HBM에 대한 커스텀 제품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가 범용 제품의 성격을 띠었다면 최근에는 맞춤형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에 SK하이닉스는 맞춤형 HBM인 6세대 HBM4를 준비 중이다. 어드밴스드 MR-MUF 기술을 적용한 HBM4 12단 제품을 내년 하반기에 출하하고, 오는 2026년 수요 발생 시점에 맞춰 HBM4 16단 제품 출시를 준비한다는 목표다.
특히 SK하이닉스는 HBM4에 맞춰 차세대 패키징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낸다. HBM4 16단부터는 어드밴스드 MR-MUF,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을 모두 검토해 고객 니즈에 부합하는 최적의 방식을 쓰겠다는 계획이다.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은 16단 이상 HBM 제품에서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와 함께 어드밴스드 MR-MUF는 기존 칩 두께 대비 40% 얇은 칩을 휘어짐 없이 적층할 수 있는 칩 제어 기술이 적용됐으며, 신규 보호재를 통해 방열 특성까지 향상된 차세대 기술이다.
이에 이규제 SK하이닉스 PKG제품개발 담당 부사장은 자사 인터뷰에서 “커스텀 HBM에 맞춰 차세대 패키징 기술을 개발하겠다”며 “방열 성능이 우수한 기존 어드밴스드 MR-MUF를 지속적으로 고도화하는 한편, 하이브리드 본딩 등 새로운 기술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헬로티 서재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