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배출 규제와 ESG 공시가 산업 현장의 실제 과제로 들어오고 있다. 제조 기업들은 생산성과 품질 향상을 위한 디지털 전환과 인공지능 활용에 더해, 어떻게 탄소 배출 데이터를 측정하고 관리해 나갈 것인지, 환경 규제에 대응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특히 수출 기업을 중심으로 탄소 배출 관련 데이터 요구가 본격화되면서, 기업 내부 대응을 넘어 공급망 데이터 연계에 대한 고민도 커지고 있다.
제조 AI 솔루션 기업 아이핌(AIPIM)의 정희태 대표는 이러한 산업 환경의 변화를 현장에서 직접 겪어왔다. 아이핌은 제조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AI 플랫폼에서 출발해, 현재는 탄소 배출 데이터 관리 솔루션을 개발, 산업 현장의 인공지능 전환(AI Transformation, AX)과 녹색 전환(Green Transformation, GX)을 지원하고 있다. 정희태 대표는 또한 국내 기업들의 탄소 대응을 지원하기 위해 작년 출범한 '디지털 ESG 얼라이언스(이하 i-DEA)'에서 데이터스페이스본부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정희태 대표를 만나 제조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변화와 기업들의 환경 규제 대응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AI에서 ‘AI+GX’로. 아이핌이 탄소중립 플랫폼을 시작한 이유
Q. 아이핌은 어떤 문제 의식으로부터 시작된 회사인가?
A. 아이핌(AIPIM)은 'AI +in Manufacturing'의 약자다. 제조 산업에 AI를 도입하는 데 역할을 해보고자 만들었다. 창업 전에는 반도체 분야의 글로벌 기업들에 솔루션을 공급하는 업체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다. 반도체 산업이 인더스트리 4.0 관점에서 각종 첨단 기술을 활용하며 앞서 나가고 있는 산업군이었는데, 반도체 산업에서 잘 사용되던 좋은 혁신 솔루션들을 일반 산업군에도 확산시키면 좋겠다고 생각해 2019년 아이핌을 창업하게 됐다.
Q. 어떻게 제조 AI 플랫폼에서 탄소중립 플랫폼으로 사업을 확장하게 됐나.
A.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아이핌은 제조 분야에 적용될 수 있는 AI 플랫폼을 경쟁력 있게 만들어 보급하려는 목적으로 시작됐다. 그런데 제조 현장에 어느 날부터 탄소중립이라는 과제가 들어오면서 디지털 전환 이외에 또 다른 허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시장을 보니 이러한 규제들에 대응할 수 있는 솔루션이 없었고, 제조업에서의 경험치를 바탕으로 직접 솔루션을 만들어서 공급해야겠다는 판단을 했다. 약 5년 전부터 탄소중립에 대해 공부하며 솔루션을 만들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아이핌 입장에선 시장이 넓어진 셈이다.
Q. 탄소중립 솔루션에 대해 소개해달라.
A. 아이핌의 탄소중립 플랫폼 ‘그린-엑스(Green-X)’는 말 그대로 탄소중립 대응 개념을 AI+GX의 개념으로 확장, 제품화한 것이다. 사실 기존에도 탄소중립이나 ESG 경영을 지원하는 소프트웨어 제품이 일부 존재했지만, 실제로 사용하기에 너무 까다로워 전문가가 아닌 일반 사람들이 쓰기에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기존의 ERP나 MES 시스템처럼 제조 현장에서 실무자가 손쉽게 운용할 수 있는 탄소 관리 솔루션을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에서 그린-엑스 솔루션이 나왔다. 직관적인 UI를 바탕으로 제조 현장에서 배출되는 탄소 데이터를 자동으로 수집하고 관리하며 리포트하는 솔루션이라고 보면 된다.
Q. 여러 탄소 관리 솔루션들이 시장에 나오고 있다. 그린-엑스의 차별점은?
A. 사용자 편의성, IoT 기술 기반의 정확한 탄소 측정, 리포트 단계 자동화가 아이핌 그린-엑스 솔루션의 경쟁력이다.
Q. 자세히 설명해 달라.
A. 그린-엑스는 태생 자체가 제조 현장의 실무를 타깃으로 만들어진 솔루션이다. 현장에선 사업장 경계, 제품 탄소발자국 등 제품을 평가를 하기 위한 복잡한 규정과 평가 요구 사항이 많은데, 그런 복잡한 부분들을 서버단에서 계산 로직을 만들어 처리하고, 나머지는 실무자가 쉽게 운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모니터링이 직관적이고, 유지 보수가 덜 필요하다는 점도 강점이다.
또 그린-엑스는 예전처럼 전체 전력 사용량을 생산된 제품의 양으로 나눠 제품 한 개 당 전기를 얼만큼 썼다고 단순 가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IoT 센서를 통해 제품이 생산될 때 실제로 전기가 얼마큼 쓰이는지를 측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탄소배출량을 계산한다. 실제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선 이렇게 '측정 가능한 데이터'가 중요하다.
여기에 AI 기술을 활용해 보고서 작성도 자동화했다. 기존에는 보고서를 작성할 때도 외부 컨설턴트에게 맡겨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SLM(Small Language Model) 기반의 생성형 AI가 제조 현장에서 탄소를 바로 계산하고 보고서까지 작성해주니 추가로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공급망 데이터 오가는 국가 디지털망이 필요한 이유
Q. i-DEA에서 데이터스페이스본부장을 맡고 있다. i-DEA에는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
A. 중소벤처기업부 국책 R&D 과제로 '기업 간, 기업 내 데이터를 공유하는 플랫폼' 과제를 수행했었다. 환경 규제들에 대응하기 위해 공급망 데이터들을 주고받을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있었고, 이와 같은 문제 의식을 공유하며 i-DEA 출범 전부터 논의에 참여했다.
Q. 데이터스페이스가 무엇인가?
A. 개념 자체는 유럽 자동차 회사들이 공급망 업체 간에 데이터를 주고받기 위해 만든 '카테나-X(Catena-X)'라는 플랫폼으로부터 나왔다. 데이터스페이스(Data Space)는 이름처럼 데이터가 존재하는 공간이라기보단 유통 경로의 역할을 하는 공간이다. 그동안 기업 간에 납품서나 발주서 등 데이터를 주고받을 때, 이메일이나 사진, 프린팅으로 주고받는 경우가 많았는데, 데이터스페이스라는 플랫폼 안에서 기업들이 조건에 따라 데이터를 자동으로 주고받을 수 있도록 디지털화한 것이다. LCA, CBAM, 중대재해처벌법 등 다양한 ESG 솔루션을 제공하는 업체들이 데이터스페이스라는 중개 플랫폼에 솔루션들을 올려놓고 데이터 제공자(Provider)와 소비자(Consumer)가 표준화, 자동화된 방식으로 데이터를 주고 받는 생태계라고 보면 된다.
Q. i-DEA가 데이터스페이스를 하는 이유는?
A. 데이터스페이스는 기관이나 기업, 또는 소비자 간에 데이터를 주고받는 역할을 아울러야 하는 큰 플랫폼이다. 데이터스페이스가 지켜야 할 몇 가지 구성이 있는데, 예를 들어 데이터 제공자가 데이터의 주권을 가지고 상대방과의 계약, 정책 등 조건에 따라 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하고, 데이터를 주고받는 방법론 등이 표준화돼야 한다. 그래서 개인 업체가 데이터스페이스를 운영하기는 쉽지 않다. i-DEA를 통해 데이터스페이스 플랫폼을 국가 사업화해 국가의 디지털망을 만드는 방향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Q. 아이핌 대표로서, i-DEA 데이터스페이스본부장으로서 올해 목표는 무엇인가?
A. 당장 자동차 1,2차 밴더와 같은 수출 업체들은 CBAM과 같은 규제 대응이 시급하다. 공급망 데이터를 원활하게 주고받아야 하는 것이 큰 이슈인데, 이를 지원하기 위한 솔루션을 런칭하기 위해 매우 공을 들이고 있다. 예전과 달리 실구축 단계로 넘어가고 있고, 관심을 가져주는 고객사들도 많아 매출에 대한 기대도 높다.
i-DEA로서는 데이터스페이스를 위한 별도 플랫폼 법인인 iDSN을 통해 올해 데이터스페이스를 런칭하고 영업, 세일즈를 적극 지원하는 것이 목표다. 작년까지 SaaS 업체들의 온보딩(데이터 스페이스 연계) 작업을 계속해왔고, 현재 호스팅, 클라우드 환경을 테스팅하고 있다. 데이터스페이스가 상용화된 서비스로서 한국에서 첫 스타트를 끊는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환경 규제 대응, 수출 경쟁력 넘어 생존으로 직결된다
Q. 제조업 현장의 환경 규제 대응 상황은 어떤가.
A. AX의 경우 기존 현장에 생산 효율과 품질을 개선하는 스마트팩토리 중심의 이해가 있었다면, GX, 즉 탄소 규제 쪽은 '전혀 준비가 안 됐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대기업이나 일부 중견기업은 전문 인력도 갖추고 조금씩 자체 대응력을 갖춰가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대다수의 기업은 고객사인 대기업이 탄소나 ESG 관련 데이터를 요청하면 그제야 발등에 불이 떨어져 알아보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올해 CBAM이 시작됐고 내년에는 보고서를 의무적으로 제시해야 하는 등 규제가 법적 의무로 다가오고 있는데, 여전히 기업들은 “그때 가서 해야겠다”는 생각을 아직도 많이들 하는 것 같다.
Q. 환경 규제 대응을 못 하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A. CBAM은 전 세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세계 주요국들이 모여 탄소를 줄이고 넷제로를 달성해야 한다는 목표에 따라 만들어진 규제다. 규제는 법이기 때문에 지키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 수출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고, 수출이 되더라도 탄소세가 더해져 경쟁력이 떨어진다. 생존의 문제다. 공급망에서도 1차 밴더가 2차 밴더에 요구하는 데이터가 제대로 오지 않으면 결격 사유가 돼 수출이 금지될 수 있다.
Q. 환경 규제가 완화될 것이란 전망에 대해서는?
A. 작년 EU에서도 옴니버스 패키지(Omnibus Package)법안이 통과되면서 환경 규제 적용 대상이 잠시 줄어들긴 했지만, 통상 마찰이 있으니 유예한 것이지 취소된 것이 아니다. 유예는 준비 기간을 준다는 의미로, 결국은 계속해서 밀고 나간다고 봐야 한다. 기업들이 심각성을 인지해야 한다. 현재 국가가 정책적으로 탄소 관련 지원을 하는 것도 기업이 도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Q. 마지막으로 기업 관계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시대가 변해가고 있다는 건 기업을 운영하는 분들이 절실히 느끼고 계시리라 생각한다. 시대 변화에 대응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경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AI든 ESG든 시대적 흐름에 귀를 기울이고 트렌드에 관심을 많이 가져야 한다. 예전에는 누가 먼저 나서면 따라가는 케이스가 많았지만, 지금 AI 시대에서는 하루하루가 급격히 변하기 때문에 먼저 나서 행동하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의 격차가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환경 규제에도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먼저 대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헬로티 이동재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