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3년, 반도체 산업은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났다. 이같은 상황에서 올해 반도체 산업은 전환점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AI, IoT 등의 기술 발전으로 인해 반도체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며, 연쇄 작용으로 재고 감소와 가격 상승이 주목된다. 기업들은 급격한 변화에 대응해 생산 장비 및 시설 확장이나 기술개발(R&D)를 위한 추가 투자 등의 전략으로 성장 기회를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긍정적인 동향 속에서 기업은 미래를 대비한 전략과 산업 통찰력을 발휘해야 할 중요한 시기를 맞았다.
바닥 아래 지하 경험했던 2023년
2023년 반도체 산업은 여러 대내외 변수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2023년은 반도체 수출 규제를 위시한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를 비롯해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상, 지속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최근 발생한 하마스-이스라엘 전쟁까지 바람 잘날 없는 한해였다. 이는 비단 반도체뿐 아니라 전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요인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사이클이 있는 반도체 산업은 고점을 지나 하락세를 지나야 하는 시기였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반도체 가격이 하락하고 재고 물량이 쌓이면서, 전에 없던 적자를 경험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2023년도 상반기 영업이익이 90%가량 줄어들며 1조 원 이하를 기록했다. SK하이닉스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2023년 3분기까지 8조 원가량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타격을 입었다.
반도체 산업 하락세와 함께 국내 수출 지표도 먹구름이 드리웠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23년 반도체 수출이 전년 대비 24.2% 줄었다고 밝혔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경쟁은 국내 반도체 산업의 공급망 재편을 의미했다.
미국이 진행한 반도체 법(CHIPS and Science Act)은 중국을 향한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가 포함됐기에, 우리나라의 반도체 거래 주요국가인 중국의 난항은 고스란히 국내 반도체 업계의 고민이 됐다. 최근 미국은 중국 생산시설에 대한 반도체 장비 반입을 무기한 유예하면서, 국내 반도체 업계는 기회를 모색하게 됐으나 위기 또한 여전히 상존하는 상황이다.
주요 지표에서 반등 조짐 보이다
최근 국내 수출 지표가 증가 기조를 이어가며, 2024년 수출 실적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만들어내는 선두에는 단연 반도체가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반도체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12.9% 증가한 95억2000만 달러로, 16개월 만에 플러스로 바꼈다.
반도체 수출은 지난 2022년 8월 마이너스를 기록했다가 2023년 1월에는 -44.5%로 바닥을 찍은 뒤, 11월에 비로소 플러스로 전환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D램과 낸드 등 메모리 반도체 가격 상승이 주효했다. 이와 함께 대 중국 수출 실적도 개선됨에 따라, 국내 산업 전반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내년 수출 지표가 반도체 호황으로 인해 개선될 것으로 전망한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발표한 2023년 수출입 평가 및 2024년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국내 수출이 전년 대비 7.9% 증가한 6800억 달러로 책정됐다. 수입 역시 3.3%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무역수지는 2023년 적자 150억 달러에서 2024년 흑자 140억 달러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했다. 산업연구원도 2024년 경제·산업 전망 보고서에서 2024년 수출이 지난해보다 5.6%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같은 전망 또한 반도체 시장 상황 개선을 전제한다.
2024년에는 반도체 장비 매출도 반등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이하 SEMI)는 향후 2025년 124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2022년에 기록한 역대 최고액 1074억 달러를 넘어서는 수치다. 아짓 마노차 SEMI CEO는 “올해는 반도체 생산능력 증대와 신규 공장, 전공정·후공정 부문 투자 강세로 반도체 장비 시장 개선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SEMI는 특히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낸드 장비 매출이 2023년 88억 달러로 전년 대비 49% 감소했으나, 올해는 21% 증가한 107억 달러, 2025년에는 다시 51% 늘어난 162억 달러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D램 장비 매출 역시 HBM 수요 확대로 2025년 20% 증가한 155억 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메모리 반도체, 여전한 성장동력
2023년에는 메모리 반도체가 고전을 면치 못했으나, 여전히 국내 경제를 이끄는 대표상품이다. 우리나라 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뛰어난 기술력과 연구개발 활동으로 AI 시대를 맞아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향후 다양한 산업에서의 발전과 혁신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2024년에 메모리 반도체의 반등이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아 말하고 있다.
키움증권 박유악 애널리스트가 발표한 산업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공장 가동률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됐다. 여기에는 삼성전자의 시안 공장과 SK하이닉스의 우시 공장에서 생산하는 메모리 반도체 수량 확대가 내포돼 있다. 생산량과 함께 가격 상승도 예고된다.
시장 조사 기관인 DRAMeXchange에 따르면, 지난해 11월에는 D램 공급 축소로 인해 평균 가격이 소폭 상승했으며, 공급 기업들은 공격적인 가격 인상을 시도했다고 알려졌다. 낸드 역시 가격 상승을 보임에 따라, PC 및 스마트폰 세트 기업의 구매 심리를 자극할 것으로 내다봤다.
무엇보다 반도체 업계는 고대역폭 메모리(HBM)의 높은 잠재력을 주목하고 있다. 업계는 생성형 AI 시장의 확대를 기회로 삼아 HBM을 포함한 메모리 반도체를 비롯해 AI 반도체 등의 기술력을 앞세워 실적을 개선할 계획이다.
최근 주요 반도체 기업의 메모리 반도체 감산효과와 함께 스마트폰 신제품과 AI 서버용 고부가 제품 수요가 늘면서, 세계 IT 시장의 반도체 수요 역시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글로벌 IT 시장 수요가 회복되면서 2024년 반도체 수출이 지해보다 20% 넘게 증가하는 등 IT 제품이 수출 성장을 주도할 것으로 전망했다.
SK증권 리서치센터 한동희 애널리스트의 분석에 따르면, GPU 경쟁에 따른 신규 칩 출시와 HBM 고용량화, 하이퍼스케일러의 AI 반도체 수요 증가로 인해 HBM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내다봤다. AI 칩을 생산하는 주요 빅테크 간 경쟁은 AI 칩 고도화 및 최적화로 인해 다수의 HBM을 활용하는 구조를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한 예로, 2024년 2분기 출시를 앞둔 엔비디아 ‘H200’은 141GB의 HBM3e를 필요로 하는데, 이는 H100에 탑재된 HBM3 대비 76% 높은 용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한등희 애널리스트는 향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HBM 생산 능력이 150%가량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교보증권 리서치 최보영 수석연구원은 “메모리 반도체 기업은 수요가 확인되는 HBM에 설비투자 규모를 늘리며 온디바이스로의 확대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최보영 수석연구원은 “챗GPT 출시와 함께 생성형 AI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이는 엔비디아 주가 상승으로 이어졌고, 동시에 HBM 수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메모리 반도체 기업의 주가도 동반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이에 메모리 반도체 산업에 대해 “2024년에는 PC와 스마트폰, AI 서버 증가를 통한 완만한 수요 회복을 예상한다”고 언급했다.
주요 국가 동향과 2024년 전망
중국은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상승세로 돌아서며 업황 호전을 기대한다고 알려졌다. 일부 D램과 낸드 제품 가격은 올해 최저치 대비 각각 13%~18%, 50%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스마트폰, 데이터센터용 제품의 가격 상승세가 가장 두드러지며 스마트폰에 사용되는 고용량 낸드플래시의 경우 브랜드에 따라 차이가 있다”고 분석했다. 현지 업계는 AI·전자제품 수요 증가로 메모리 반도체 분위기가 개선되고 있다는 반응이다.
미국은 전공정을 넘어 후공정으로도 눈을 돌렸다. 미국은 30억 달러 규모 투자로 반도체 어드밴스드 패키징 산업 생태계 구축을 계획하고 있다. 어드밴스드 패키징은 만들어진 반도체 칩을 효율적으로 쌓고 서로 연결해 전체 칩셋 성능을 최적화하는 패키징 기술이다.
미국 종합 반도체 회사들은 그동안 전공정에 비해 주목받지 못했던 후공정 패키징 기술 혁신으로 세계 반도체 산업에서의 경쟁력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아시아 의존도를 낮추고 반도체 자급자족을 실현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이 계획은 지난해 11월에 발표된 국가 어드밴스드 패키징 제조 프로그램(NAPMP) 하에 실행된다.
대만의 경우, 지난해 12월 대만 행정원은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제출한 ‘칩 구동 대만산업혁신계획’을 승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만은 2024년부터 2033년까지 10년간 실시하며 총 3000억 대만달러를 투입할 계획이다. 대만산업혁신계획은 생성형 AI와 반도체 칩의 결합으로 산업 혁신 촉진, 국내 인재육성 환경 개선과 글로벌 R&D 인재 유치, 이기종 통합 및 첨단기술 발전 가속화, 반도체 경쟁우위 기반으로 한 글로벌 반도체 스타트업과 외국자본 투자 유치 등을 전략으로 삼았다.
헬로티 서재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