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핸스 이승현 대표 인터뷰
온라인 쇼핑 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 상품 가격은 실시간으로 바뀌고, 프로모션은 몇 시간 만에 시작·종료되며, 경쟁사의 움직임에 따라 판매 전략이 시시각각 조정된다. 이런 환경에서 기업은 더 이상 데이터를 보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속도로는 버틸 수 없다. 결정이 곧 실행으로 이어져야 시장에서 살아남는다. 인핸스는 바로 이 지점에서 등장했다. LAM(Large Action Model) 기술을 앞세워 결정과 실행 사이의 시간을 소거한 것이다. 이에 인핸스 이승현 대표를 만나 LAM 기반으로 AI 에이전트 시대를 열어갈 전략에 대해 이야기 나눠봤다.
수행에 최적화한 AI, 커머스를 주도하다
인핸스는 커머스 분야에 특화한 버티컬 AI 에이전트를 앞세워 성장세를 타고 있다. 데이터를 분석하는 AI를 넘어, 분석 결과를 즉시 실행으로 옮기는 액션 중심의 기술을 핵심 경쟁력으로 삼았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엔진이 인핸스의 자체 기술 ‘ACT-1’이다.
ACT-1은 거대언어모델(LLM)과 결합해 자연어 명령을 실제 소프트웨어 작업으로 변환·수행하는 LAM 기반 기술로, 가격 조정부터 재고 관리까지 전 과정을 자동화한다. 이에 인핸스는 삼성전자, P&G 등 글로벌 기업을 주요 고객으로 확보해 사업 토대를 다지기 시작했다. 인핸스 이승현 대표는 “우리는 AI 기반 커머스 설루션 ‘커머스 OS’로 고객사의 매출 전환율을 높이고, 장기적으로는 금융·방산 등 다양한 버티컬로 확장 가능성을 테스트 중이다”고 밝혔다.
인핸스가 내세우는 강점은 LAM 기반의 실행형 AI다. 이는 단순히 질의응답이나 정보 제공에 그치는 기존 LLM과 달리, 사용자의 자연어 명령을 구체적인 실행 동작으로 변환하고 직접 수행하는 능력을 갖춘다. 예를 들어 “쿠팡에서 특정 상품 가격을 5만7000원에서 5만4000원으로 변경해 줘”라는 명령이 입력되면, 시스템은 해당 과정에 필요한 모든 클릭·입력 단계를 자동으로 처리한다.
인핸스는 기존의 대규모 모델을 자체 프리트레이닝하기보다, 여러 오픈 모델과 상용 모델을 조합해 액션 수행에 최적화한 구조를 만들고, 일부 핵심 모듈을 파인튜닝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이승현 대표는 “이 방식은 방대한 자본 없이 실행 중심의 고성능 모델을 구현하게 했고, 결과적으로 고객사의 업무 자동화를 빠르게 실현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인핸스의 출발점은 우연과 문제 해결 의지에서 비롯됐다. 이승현 대표는 삼성전자 재직 시절 아마존과의 협업으로 커머스 분야의 잠재력을 실감했다. 당시 빅스비 비전에 커머스 기능을 연동하면서, 특정 기능 추가가 즉각적인 거래 전환율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을 경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데이터와 실행이 긴밀히 연결될 때 비즈니스 효과가 극대화된다는 통찰을 얻게 됐다.
이후 온라인 판매 업무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자동화 필요성을 절감했고, 이를 계기로 주말마다 개발자와 엔지니어가 모여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1년 반의 실험 끝에 2019년 법인을 설립하며 본격적인 사업에 뛰어들었다. 창업 초기부터 고객사의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 집중한 접근 방식은 인핸스를 단순한 기술 제공사가 아닌, 매출 증대와 운영 효율화를 직접 이끄는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특히 버티컬 AI 에이전트를 통한 커머스 OS 전략은 시장에서 빠른 신뢰를 얻었고, 이를 기반으로 글로벌 무대까지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버티컬 OS 거듭나는 인핸스의 전략
ACT-1 개발 과정에는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지난 2022년, 세계적으로 LAM을 본격적으로 시도하는 기업이 거의 없던 시기, 이승현 대표는 미국 스타트업인 어댑트(Adapt)를 주목했다. 이 회사는 약 60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며 주목받았지만, 제품 접근 권한이 제한적이었다. 이승현 대표는 직접 샌프란시스코를 찾아가 어댑트와 미팅을 시도했고, 장시간 기다린 끝에 커머스 분야에 LAM을 적용한 유즈케이스를 설명하며 파트너십 논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협상이 진행되던 중, 어댑트가 아마존에 인수되면서 협력은 무산됐다. 이에 인핸스는 자체 개발 전략을 확립했고, 외부 기술 의존 없이 독자적인 실행형 AI 엔진을 완성할 수 있었고, 이는 현재 인핸스 커머스 OS의 핵심 경쟁력으로 자리 잡았다. 이 대표는 “누가 만들지 않으면 우리가 만든다”는 태도로 접근한 것이 지금의 성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했다.
인핸스의 커머스 OS는 단순한 자동화 솔루션을 넘어, 고객사의 매출 증대와 운영 효율화를 위한 오퍼레이팅 시스템으로 설계됐다. 회사는 기술 개발 이전에 고객 현장으로 직접 들어가 문제를 파악하고, 실무자와 C레벨의 요구사항을 통합해 유즈케이스를 설계한다. 이 과정에서 엔지니어가 고객사 사무실에서 장기간 상주하며 PoC를 진행하기도 한다. 덕분에 평균 SaaS 도입 기간보다 훨씬 짧은 시간 안에 비즈니스 효과를 입증할 수 있었고, 이는 빠른 계약 전환으로 이어졌다.
경쟁사들이 벤치마크 점수나 기술 지표에 집중하는 반면, 인핸스는 고객 가치와 매출 기여도를 최우선으로 삼는다. 이승현 대표는 “LLM 성능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며, “지식 체계화, 판단 모델 설계, 액션 생성, 결과 반영의 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진정한 경쟁력”이라고 설명했다.

인핸스의 성장에는 팔란티어와의 협업도 중요한 계기였다. 올해 글로벌 1기 ‘팔란티어 스타트업 펠로우십’에 선정된 인핸스는 약 6주간 팔란티어 엔지니어들과 함께 기술 개발과 쇼케이스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온톨로지 설계와 아키텍처 최적화 등 시스템 구조에 대한 깊이 있는 인사이트를 확보했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대하는 성과도 거뒀다. 팔란티어 측은 인핸스의 액션 중심 AI와 커머스 OS에 큰 관심을 보이며, 향후 공동 프로젝트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승현 대표는 “롤모델이 우리를 알아봐 준 순간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한국 기업 중에는 인핸스가 유일하게 선발됐으며, 아시아 전체에서도 싱가포르 기업과 단 두 곳뿐이었다. 특히 팔란티어의 고객 중심, 문제 해결형 접근 방식은 인핸스의 기술 철학과도 맞아떨어져 향후 협력 시너지가 기대된다.
인핸스는 하반기 전략의 핵심을 글로벌 고객 확대와 기술 고도화에 뒀다. 이미 국내 주요 브랜드와 유통사를 확보한 상태에서, 북미·아시아·유럽 시장 진출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기술적으로는 ACT-1의 벤치마크 성능을 더 끌어올려, 버티컬 영역뿐 아니라 범용 AI 성능에서도 경쟁력을 입증한다는 목표다.
장기적으로는 커머스 OS를 넘어 금융·방산·서비스 등 다양한 산업에 적용 가능한 버티컬 OS로 확장 가능성을 모색 중이다. 이를 위해 현재 소규모 실증 프로젝트로 다른 산업군의 운영 프로세스에 액션형 AI를 적용하는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승현 대표는 “인핸스는 기업의 지식 체계와 운영을 혁신해 장기적으로 수익성을 보장하는 가장 고객 친화적인 오퍼레이팅 시스템 기업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커머스 분야에서 확보한 깊이 있는 도메인 지식과 실행 기술을 바탕으로, 국내외 기업의 수익 창출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겠다는 비전을 분명히 했다.
헬로티 서재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