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반도체 산업은 성장 곡선을 그리고 있다. 반면 2025년은 반도체 기술을 가운데 두고 주요 국가 간 경쟁이 과열될 것으로 점쳐진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됨에 따라 자국 우선주의가 강화할 것이며, 그에 대응하는 중국 역시 자국 내 반도체 산업 중흥을 위한 속도를 더욱 높일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은 양국과의 관계를 고려한 반도체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공세 ‘점점 높아지는 강도’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함에 따라,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경쟁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아직 임기가 남은 바이든 행정부는 그동안 중국에 대한 지속적인 견제를 이어왔으나, 새 정부는 그 수준을 더욱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격화하는 기술 전쟁은 미국과 중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와 대만, 일본 등 주변 국가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중국 수출통제 대상 품목에 추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적용된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은 제품이 생산된 국가와 상관없이 미국의 기술이 사용됐을 시 수출통제를 준수해야 한다는 규칙이다. 물론 여기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포함된다.
이와 함께 미국은 자국의 반도체 기술이 중국으로 흘러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규제 도입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보도에 따르면, 미 정부는 대형 컴퓨팅 시설이 있는 국가에 판매되는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AI 반도체의 수량 한도를 설정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규제 대상에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를 포함함으로써 수출통제를 피해 이뤄지는 거래 루트를 모두 막겠다는 심산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미 정부는 AI뿐 아니라 자동차와 가전제품 등에 사용되는 중국산 레거시 반도체를 대상으로도 불공정 무역 행위 조사에 임할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NYT)는 미 정부가 자국의 무역 관련 협회에 중국 레거시 반도체에 대해 통상법에 따라 조사하겠다는 소식지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앞서 상무부 산업안보국(BIS)는 조사를 통해 자국 기업 제품 66%에 중국 범용 반도체가 사용됐을 것으로 내다봤으며, 이는 반도체 공급망에 대한 취약점과 보안 위협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 조사는 수 개월이 소요되기에 트럼프 정부가 바톤을 이어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 외에도 미 정부는 미국 국방수권법(NDAA)을 통해 화웨이와 그 계열사를 압박하는 조항을 기재하는 등 전방위적인 공세를 취하고 있다.
자구책 마련하는 중국 그리고 반격
미국의 공세에 중국 역시 반격의 기치를 올렸다. 중국은 자국이 보유한 자원을 무기로 대응했다. 지난 12월 미국의 HBM 수출 통제가 이뤄진 뒤, 중국 정부는 갈륨, 게르마늄, 안티모니, 흑연 등 4개 민간·군수 이중용도 품목에 대한 미국 수출을 금지했다. 특히 제3국 기업이 자국에서 광물을 인수한 후 미국 기업에 이전하는 것까지 금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중국이 수출 통제에서 환적에 대한 금지 조항을 포함한 첫 번째 사례로 꼽힌다.
이에 이중용도 품목을 미군 사용자에게 수출하거나 군사 목적으로 진행되는 수출도 금지된다. 원칙적으로 갈륨, 게르마늄, 안티몬 및 초경질 재료와 관련한 이중용도 품목은 미국으로 수출이 허용되지 않으며, 흑연 이중용도 품목은 더 엄격한 최종 사용자 및 용도 검증이 이뤄진다. 이 규제가 위협적인 이유는 역시나 중국에서 생산되는 압도적인 생산량이다. 중국은 전 세계 갈륨과 게르마늄 공급 비중이 각각 95%와 67%이며, 지난해 세계 안티몬 채굴량에서는 48%를 차지했다.
엔비디아에 대한 반독점법 조사도 화제가 됐다. 중국중앙TV(CCTV) 등의 보도에 따르면, 중국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이하 총국)은 엔비디아에 자국 반독점법 등을 위반한 혐의를 제시하고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엔비디아는 지난 2020년에 이스라엘 반도체 기업인 멜라녹스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총국이 제한적으로 조건을 부과해 승인하도록 한 결정의 공고 제16호를 위반한 혐의를 받았다. 당시 멜라녹스의 인수 금액은 69억 달러(약 8조5000억 원)에 달했다. 이 외에도, 중국의 드론 부품 제조 기업들은 미국과 유럽에 대해 출하를 제한하거나 전면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용돌이 속 韓, 전황 돌파할 전략은?
2025년은 국내 반도체 산업에 있어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2025년 산업 기상도 전망 조사’에 따르면, 반도체 산업은 ‘대체로 맑음’으로 예측됐다. AI를 매개로 한 대규모 인프라 투자는 2025년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이며, 이 과정에서 반도체는 견조한 수요를 확보할 것으로 점쳐진다. 이를 통해 올해와 마찬가지로 국내 수출을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2025년 글로벌 반도체 설비투자는 주요국의 반도체 지원 정책에 힘입어 전년 대비 7.9% 증가한 1872억 달러(약 267조 원)로 전망된다”며 “우리나라는 특히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설비투자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다만 수출에 있어 아세안 국가들의 위협이 대두되고 있다. 코트라가 공개한 ‘10대 수출 품목의 글로벌 경쟁 동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와 주요 국가 간 수출경합도가 공개됐다. 우리나라와 수출경합도가 가장 높은 나라는 중국이었으며, 경쟁 분야는 메모리 반도체였다.
대만과의 수출경합도는 과거에 비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반도체 설계와 파운드리에 강점이 있는 대만은 최근 우리나라와 경쟁이 삼화하는 추세다. 싱가포르도 새로운 제조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이미 뱅가드 국제 반도체 그룹, 글로벌 파운드리 등의 기업이 싱가포르에 대규모 제조 시설 설립을 확정지었다. 말레이시아도 반도체 조립 및 테스트, 패키징 공정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잠재적인 경쟁 국가로 떠올랐다.
이에 우리나라는 변화하는 국제 정세에 발맞춰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는 미국의 대중 수출 규제와 관련한 설명회를 개최한 바 있다. 산업부는 국내 기업이 미국의 수출통제 강화 조치에 원활히 대응하도록 지원하기 위해 주요 질의응답을 담은 안내서를 배포하고, 무역안보관리원과 한국반도체산업협회의 수출통제 상담창구를 통해 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와 함께 정부는 추진 중인 반도체 산업 지원 정책에 더해 반도체 소부장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지원도 추진할 예정이다. 올해부터 약 1조 원 규모의 ‘첨단 반도체 테스트베드·트리니티 팹’을 본격 구축한다. 또한, 지난해 발표된 저리 대출 프로그램에 따라 내년 4조2500억 원, 반도체 생태계 펀드에 내년 총 4200억 원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헬로티 서재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