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단순한 문장 요약이나 답변이 아니다. 이메일을 읽고 회신을 쓰며, 미팅을 잡고 보고서를 작성한다. 이 모든 과정을 사용자의 의도를 이해하고 스스로 판단해 실행하는 AI, 즉 ‘에이전트’가 담당하게 되면서, 기업과 소비자 모두의 디지털 환경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2024년을 기점으로 생성형 AI의 흐름은 모델 경쟁에서 에이전트 경쟁으로 전환됐다.
에이전트 시대 돌입, 커져가는 시장
다양한 연구 결과와 실증 사례가 단순 질의응답 기반의 LLM보다 목적 지향적인 에이전트가 높은 생산성과 사용자 만족도를 유도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면서, 기술 진영은 모델보다 작동 방식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오픈AI는 GPT 스토어를 통해 누구나 자신만의 GPT 에이전트를 만들고, 이를 공유·판매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구글은 실시간 멀티모달 감지를 내세운 Project Astra를, 마이크로소프트는 아예 윈도우 OS 수준에서 에이전트를 내장한 Copilot+PC를 선보이며 차세대 인터페이스 경쟁을 선언했다. 이들은 단순히 챗봇을 뛰어넘어, 사용자의 목표를 이해하고 다중 작업을 처리하는 동반자로서의 에이전트를 앞다퉈 상용화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CB Insights에 따르면, 2025년 전 세계 기업용 에이전트 시장 규모는 130억 달러 이상으로 전망되며, 에이전트 기반 SaaS와 툴 플랫폼에 대한 벤처 투자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특히 고객지원, 영업 자동화, 문서 분석, 재무 보고 등의 분야에서 에이전트가 파일럿 단계를 넘어 실서비스로 확장되는 점이 주목된다. 기술의 진화와 함께 플랫폼 전략도 본격화하고 있다.
지금까지 생성형 AI가 API 중심의 도구였다면, 이제는 이를 감싸고 실행하는 에이전트 생태계가 하나의 플랫폼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사용자는 직접 앱을 실행하는 대신, 에이전트에게 작업을 지시하고 결과를 받아보는 경험을 통해 새로운 디지털 활용 모델을 학습하고 있으며, 기업은 이를 새로운 고객 접점이자 수익 창출 구조로 인식한다.
결국, 누가 먼저 더 강력하고 확장성 높은 에이전트 플랫폼을 구축하고, 그 생태계를 선점하느냐가 생성형 AI 2.0 시대의 주도권을 결정지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오픈AI는 ‘GPT 스토어’를 전면 개편하며 개인용 커스텀 GPT를 누구나 만들고 공유하며, 수익화할 수 있는 구조를 열었다. 생성형 AI가 단순히 입출력 중심의 모델에서 벗어나, 사용자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툴을 호출하고, 웹을 검색하며, 데이터를 정리하는 자율형 에이전트로 진화한 것이다. 수십만 개의 GPT가 만들어졌고, 일부 개발자는 한 달 수익만 수천 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앱스토어와 다른 ‘에이전트 마켓플레이스’
흥미로운 점은 기존의 앱스토어와 에이전트 플랫폼의 근본적 차이다. 앱은 정해진 기능을 사용자가 직접 실행하지만, 에이전트는 사용자의 의도를 해석하고 목표 달성을 위해 판단한다. 따라서 GPT 스토어나 에이전트 마켓플레이스는 단순한 유틸리티의 나열이 아니라, 목표 중심의 서비스 큐레이션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수익화 모델도 변화하고 있다. 기존 앱스토어가 유료 다운로드나 인앱 결제 중심이었다면, 에이전트 생태계에서는 사용량 기반 과금, API 호출당 요금, 성과 기반 요금 체계까지 혼재하고 있다. 이는 개발자와 플랫폼 사업자 모두에게 새로운 수익 모델이자, 복잡한 운영 인프라를 요구하는 요인이 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많은 기업이 고민하는 포인트는 명확하다. ‘오픈 플랫폼에 올라탈 것인가, 자체 생태계를 구축할 것인가’. 특히 B2B 기업은 특정 도메인에 특화한 에이전트를 개발해 판매하거나, 내부 데이터와 연동된 프라이빗 에이전트를 운영하고자 하는 니즈가 강하다.
예를 들어, 법률, 세무, 제조 분야에서는 RAG 기반으로 업무 매뉴얼, 계약서, 기술 문서를 호출하고 판단하는 에이전트를 구축하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이는 GPT 스토어와 같은 오픈 마켓보다, 자체 보안 인프라와 고객 요구에 최적화된 플랫폼을 지향하는 흐름으로 이어진다.
기술적으로도 과제는 많다. 대표적으로는 툴 연동과 실행, 메모리 관리, 에이전트 오케스트레이션이 핵심이다. 이에 LangChain, LangGraph 등 다양한 오픈소스 프레임워크가 등장하며, 오픈AI의 Assistant API, 구글의 Gemini API도 점차 개발자 친화적으로 변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 환경에서 요구되는 보안성, 커스터마이징, 데이터 연동성을 충족시키기 위해선 여전히 고도의 설계 역량이 필요하다. 이제 기업의 경쟁력은 단순한 AI 도입 여부가 아니라, 어떤 에이전트를 어디에, 어떻게 연결하고 실행시키는가에 달렸다. 사용자에게 맞는 인터페이스를 설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실행 결과를 보장하는 에이전트가 차별화 요소가 되는 시대다.
빅테크의 소리없는 경쟁은 계속된다
오픈AI가 최근 소프트웨어 개발에 특화한 AI 에이전트 ‘코덱스(Cedex)’를 연구용 프리뷰 형태로 공개했다. 코덱스는 코드 작성, 버그 수정, 테스트 실행, 코드베이스 관련 질의응답 등 다양한 개발 업무를 병렬로 수행하는 점이 특징이다. 이 모델은 오픈AI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전용 추론 모델 ‘o3’를 기반으로 하며, 현재 챗GPT 프로·엔터프라이즈·팀 요금제 이용자들에게 우선 제공된다. 오픈AI는 코덱스가 코딩 스타일을 정교하게 파악하고, 클라우드 상에서 독립적으로 작업을 수행해 결과를 1~30분 이내에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구글 딥마인드는 새로운 AI 에이전트 ‘알파이볼브(AlphaEvolve)’를 공개했다. 이 모델은 수학과 컴퓨터 과학 분야에서 필요한 알고리즘을 스스로 탐색하고 진화시키는 ‘진화형 코딩 에이전트’로, 자동화한 평가 지표를 기반으로 프로그램의 정확성과 효율성을 검증하며 점차 성능을 고도화한다. 알파이볼브는 구글의 최신 AI 언어모델인 제미나이를 기반으로 구축됐으며, 빠른 연산 능력을 갖춘 ‘제미나이 플래시’와 복잡한 문제 해결력을 가진 ‘제미나이 프로’를 결합해 다양한 문제를 깊이 있게 분석한다. 이 AI는 구글 내부 시스템에도 이미 적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연례 개발자 행사 ‘빌드 2025’에서 AI 코딩 지원 툴 ‘깃허브 코파일럿’의 진화형 버전을 공개했다. 이 에이전트는 간단한 지시만으로 전체 코드를 생성하고 작업 종료 시 검토 요청까지 수행한다. 이와 함께 기업이 자체 AI 에이전트를 구축할 수 있는 ‘애저 AI 파운드리’와 과학 연구에 특화한 AI 플랫폼 ‘마이크로소프트 디스커버리’도 선보였다. MS는 이들 에이전트가 외부 데이터 및 도구와 연동되도록 AI 시스템 상호운용 표준 MCP도 도입한다고 밝혔다.
헬로티 서재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