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티 전자기술 기자 |
올해 상반기에 화두가 된 키워드가 있다면, 단연 ESG 경영이다. 세계 유수의 기업과 자산운용사는 장기적인 재무성과를 창출하기 위한 방법으로 ESG를 택했다. 기업에는 현재의 운영 방식을 개선해 전인미답의 미래로 나아가야 할 과제가 주어진 셈이다. ESG 경영은 단순히 착한 기업 만들기의 방편이 아니다. 미래를 위한 철저한 생존 전략이다.
비재무요소가 재무요소가 된 아이러니
윤리적 소비, 착한 기업 등은 이제 생소한 개념이 아니다. 근로자 인권, 환경오염 조장 등의 사회적 이슈는 파장에 따라, 해당 기업 임원진이 사퇴하거나 소비자 불매 운동이 일어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이처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 경영에 필수적인 요소가 됐다. 여기에 ESG 경영은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평가하기 위한 새로운 지표로서 등장했다.
ESG는 비재무요소지만, 기업 경영의 지속가능성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들은 사내 ESG 위원회 설립에 여념이 없다. ESG 위원회는 기업 차원에서의 ESG 방향성을 정립하고, ESG 경영을 점검 및 지원한다는 명목하에 조직되고 있다. 지난 8월에 ESG 위원회를 개설한 기업 및 기관만 해도 LS그룹, LG화학, 한국수력원자력, 롯데칠성음료, CJ엔터테인먼트, SPC삼립 등 다양하다.
기업이 이토록 ESG 경영에 몰두하게 된 이유에는 역시나 자본의 흐름이다.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ESG 경영이 대세가 된 배경에는 한 인물을 빼놓을 수 없는데, 그는 바로 세계 최대 규모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래리 핑크(Lawrence Douglas Fink) 회장이다.
지난 2020년, 래리 핑크 회장은 블랙록의 투자 기업 CEO에게 연례 서한을 보냈다. 서한에는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강조하고, 기후 변화에 따라 투자 포트폴리오를 수정하며, 매출액의 25% 이상을 석탄 발전으로 얻는 기업에 대해 채권과 주식을 매도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한술 더 떠 올해 발송된 서한에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천할 사업계획과 이 계획이 경제 구조와 어떻게 결합할지에 대한 전략까지 밝혀달라는 내용이었다.
래리 핑크 회장의 서한은 해당 투자기업뿐 아니라 자산운용사, 투자자 등 세계 경제에 파장을 가져왔고, 이후 미국 바이든 정부의 파리 기후변화 협약 재가입, 유럽의 탄소중립 정책 등 굵직한 이슈가 연이어 발표되며, ESG 경영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자연스럽게 세계 경제에 정착했다.
최근 자산운용사인 피델리티도 블랙독에 이어 투자기업에 ESG 경영을 촉구한 바 있다. 피델리티는 기후 변화, 이사회 구성원의 성별 다양성 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을 때 해당 기업 이사 선임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겠다고 밝혔다.
또한, 투자 포트폴리오 내에서 온실가스·탄소 배출에 기여하는 약 1000개 기업을 대상으로 ESG 경영 전략을 살펴볼 계획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이에 ESG를 고려한 투자 원칙이 세계적으로 확산됨에 따라, 국내 기업도 ESG 요소를 집중적으로 관리해 발생 가능한 위험을 최소화하고 중장기적 기업 가치를 향상시키는 작업이 요구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위원회 설립도 그러한 작업 중 하나다.
결국 ESG 경영의 핵심은 ‘착한 기업’으로의 변화가 아니라 기업이 가진 위험 요소를 줄이고 지속가능성을 발견하기 위한 ‘생존 전략’인 것이다. 한편,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통계에 따르면, ESG가 잘 관리되는 기업은 리스크 관리 수준과 준법 준수 수준이 높은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기업은 횡령, 부패 등 기업이 위험에 처하는 부정적 사건을 경험할 가능성이 낮다. ESG 수준이 높은 기업은 체계적 위험에 대해서도 덜 취약하다.
한 예로, 에너지 효율이 높은 기업은 기후 변화로 인해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는 등의 이슈를 겪더라도 타 기업에 비해 더 안정적으로 대응한다. 미국의 환경단체 세레스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ESG 리스크의 유형과 예시는 다음과 같다.
유형 | 정의 | 사례 |
물리적 리스크 | 기후 변화로 인해 실물에서 발생하는 직간접적인 물적 피해 리스크 | 폭우 등으로 인한 시설물, 공장 손상 |
공급망 리스크 | 제품 및 서비스가 생산되고 전달되는 과정에서 발생 가능한 리스크 | 협력업체 직원의 안전사고 |
평판 리스크 | 기업 평판이 악화됨에 따라 발생하는 리스크 | 오너 일가의 갑질로 인한 평판 하락 |
규제 리스크 | 규제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발생하는 리스크 | 제개정된 리스크를 준수하지 못해 부담하게 되는 제재, 벌금 등 |
소송 리스크 | 소송이 발생해 부담하게 되는 직간접적 비용에 관한 리스크 | 공사 소음 등으로 인한 지역사회 주민과의 분쟁 |
이행 리스크 |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저탄소 경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리스크 |
정부의 탄소배출 억제 정책 시행으로 화석연료 관련 자산의 가치 하락 |
인적자본 리스크 | 인적자본과 관련된 리스크 | 높은 이직률 등 |
▲ESG 리스크의 유형과 예시 (출처 : Running the Rick / CERES, 2019)
허울뿐인 ESG는 의미 없다
지난 8월,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하 한경연)은 ‘ESG의 지배구조 개선과 기업가치’ 보고서를 발표하며, 기업이 ESG 추진에 수익성을 고려해야 하며 정부는 규제 관점의 접근을 지양해야 한다는 주장을 밝혔다.
한경연의 조사에 따르면, ESG를 투자 지표로 활용하는 글로벌 투자금액은 2014년 21조4000억 달러에서 작년 40조5000억 달러로 2배 수준으로 늘어났다. ESG를 지표로 삼은 상장지수펀드(ETF)는 2015년 60개에서 작년 400개 이상으로 증가했고, 작년 전 세계 ESG 관련 펀드 총 자산은 약 1조3000억 달러인 것으로 조사됐다. ESG 경영이 최우선의 투자 요소가 되면서 막대한 자금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
한편, 보고서는 국내외 지배구조 개선 사례를 조사한 결과, 국내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 성과가 글로벌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수하다고 평가했다.
지배구조 측면에서 글로벌 기업은 경영진 보상, 다양성 측면 보완 등을 강조하고 있으나, 국내 기업은 사외이사를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하고 이사회 의장과 대표를 분리하는 등 이사회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강화하고 있으며 ESG 경영을 위한 컨트롤타워를 신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경연 측은 “국내 기업이 이사회 구조 개편 등 지배구조 개선에서 성과를 낸 것은 반 기업 정서가 강한 국내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보이며,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우려가 높았기에 오히려 국내 기업이 글로벌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성과가 높게 나타난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보고서에서 강조된 점은 지배구조가 ESG를 추진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기업명 | 주요내용 | |
국외 | 애플 | 임원 성과급에 ESG에 결과 반영 |
마이크로소프트 | 조직의 다양성을 높이는 다수의 투자 프로그램 추진 | |
넷플릭스 | 다원주의 인력 정책 및 임원진 보상 공개제도 도입 | |
월마트 | 다양한 ESG 관련 위원회 운영 | |
국내 | 삼성 | 이사회의 과반을 사외이사로 구성, 준법감시위원회 설치 |
현대자동차그룹 | ESG 경영을 위한 컨트롤타워로 지속가능경영위원회 설치 | |
SK | 이사회 중심의 지배구조 혁신 전략 실시, ESG 위원회 신설 | |
네이버 | ESG 위원회 및 ESG 전담조직 신설 |
▲지배구조 개선 사례 (출처 : 한경연)
보고서에서는 기업이 ESG 경영을 주저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기업은 ESG의 중요성을 인식하지만, ESG가 당장에 재무적 성과로 드러나지 않기에 주저한다는 것이다. 지배구조 개선과 기업 가치 관련 연구를 분석한 결과, ESG 경영과 지배구조 개선이 기업 가치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와 유의미한 영향이 없다는 상반된 연구 결과가 공존했다.
이에 보고서는 ESG를 개별 기업의 수익성 지표로 사용하기에 무리가 있는 만큼 기업이 ESG 도입 비용과 수익성을 연동시켜 수치화한 모델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현실 속 과제 맞닥뜨린 ESG 경영
투자 원칙의 핵심으로 떠오른 ESG 경영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기업은 거의 없어졌다. 다만, 앞서 언급했듯이 ESG 경영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과 ESG 경영을 실행하는 것은 또 다른 선택의 문제다.
기업은 ESG 경영을 수반하는 다양한 정책 및 제도 마련과 인력 구성, 자본 투자 등이 선행돼야하기 때문이다. 특히 예상하지 못한 사건의 발생이나 기업 내부에서 불거진 문제는 기업이 말하는 ESG 경영이 얼마나 예민하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바로미터가 된다.
최근 한국타이어는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의 산재 신청을 인정했다. 이는 백혈병으로 산재 인정을 받은 다섯 번째 사례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자 김씨는 1987년부터 33년간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에서 근무하며 타이어 고무를 고루 분산시키기 위한 각종 약품 혼합 작업을 담당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한국타이어의 작업 환경 유해성 문제는 꾸준히 제기돼왔다.
2007년에는 노동부가 실시한 특별근로감독에서 1394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례가 적발되기도 했다. 노동자의 산재 신청 후, 한국타이어 측은 해당 질병과 업무 상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으나,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고무산업과 혈액암의 관련성, 벤젠 포함 여부, 종사 기간 등을 고려해 만장일치로 노동자의 질병이 업무에서 비롯했다고 판단을 내렸다.
근로자 및 산업현장 안전 관리도 ESG 경영 범주 내에서 개선되고 있다. 지난 8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부근 현대건설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한 노동자가 굴착기 버킷에 깔려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당시 사고 현장을 확인할 수 있었던 수단이 CCTV 한 대뿐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현장 관리 및 감독 부실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다. 이 사고를 포함해 현대건설은 올해 네 차례의 인명사고를 기록했다.
이에 현대건설은 안전 관련 인센티브 확대 등 사고 방지 대책 마련에 나섰다. 현대건설은 안전 관리 우수 협력사에 포상 물량을 5000억 원 규모로 확대를 결정했고, 협력사 신규 등록 및 갱신 시 안전 평가 점수를 기본보다 4배로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협력사 대상 안전 부적격 업체에 대해 신규 등록 및 입찰 참여를 제한하기로 결정했다. 이뿐 아니라 AI를 활용한 장비협착방지시스템을 전 현장에 도입하기로 했다. AI가 적용된 이 시스템은 중장비의 주된 사각지대인 측후방에 설치된 카메라 영상 분석으로 사물과 사람을 구분해 중장비에 사람이 접근했을 때 알람을 제공해 작업자의 안전을 확보한다.
남양유업은 코로나19와 관련된 과대광고로 역풍을 맞은 사례다. 남양유업은 자사 제품 불가리스가 코로나19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는 과대광고를 진행해 결국 8억2860만 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지난 4월, 남양유업은 한국의과학연구원 주관으로 열린 심포지엄에서 불가리스 제품이 코로나19를 77.8% 저감하는 효과를 확인했다고 주장했으나, 과정과 결과가 입증되지 않은 내용으로 인해 전문가와 소비자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남양유업 세종공장 관할지역인 세종시는 과징금 처분 결정에 대해 세종공장이 남양유업 제품 생산의 40%가량을 맡고 있어 공장이 두 달 동안 문을 닫으면 지역 낙농가와 대리점 등에 연쇄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측면을 고려했다고 전했다.
이에 세종시는 지난 4월 식약처의 행정처분 의뢰를 받고 남양유업에 대해 식품표시광고법 위반으로 2개월 영업정지 행정처분을 사전 통보했다. 사건이 있은 뒤,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은 대국민 사과와 동시에 회장직에서 물러났으며, 홍 회장을 비롯한 남양유업 일가는 지분 전량을 한앤컴퍼니에 매각하는 주식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한앤컴퍼니는 기존 남양유업 직원의 고용을 승계하고, 지배구조 개선 절차에 나섰다.
ESG, 길고 멀리 보는 전략 필요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ESG 경영은 전략적 차원에서 기업의 장기적 성장을 위한 기회 요인이 된다. ESG를 통해 창출하는 사회적 가치는 수익 증가, 비용 감소 등의 경로를 통해 기업 가치 개선을 동반한다는 것이다.
수익 증가 측면에서는 주로 매출 증대, 인재 유치, 투자 및 자산 최적화의 가치창출 경로로 기업 가치가 개선된다. 한 예로, 친환경적·윤리적 소비 등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영위하는 경우, 친환경적·윤리적 소비를 원하는 소비자에게 경쟁 우위의 요소로 작용해 신규 시장을 개척하거나 기존 시장을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최근 대학생 1196명을 대상으로 알바몬이 진행한 ‘ESG 경영 관심 정도’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80.5%는 해당 기업의 ESG 경영 사실을 알았을 때 기업 및 제품 호감도가 높아진다고 답했다. 또한, ESG 경영을 인지하는 대학생 10명 중 8명은 ESG 경영 기업 제품에 돈을 지불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지속 가능한 자산에 투자해 효율성을 높이는 것도 방법이다. 한 예로, 기업이 에너지 효율적인 설비 등을 도입해 탄소 배출 감소 등의 규제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경우다.
SK에코플랜트의 경우, AWS와 폐기물 소각로의 운영 효율을 높이고 오염물질 배출을 감소시키는 친환경 소각로 AI 솔루션 개발에 나섰다. SK에코플랜트는 지난 4월 기술 개발을 시작해 테스트를 거쳐 9월부터 자회사인 환경시설관리에 적용할 계획이다.
기존 소각로 시설은 사람의 경험에 의존해 운용이 이뤄져 오염물질 배출관리에 어려움이 있었다. AI 솔루션은 CCTV, 센서, PLC 등에서 수집된 데이터를 AI 알고리즘이 분석하고 예측해 최적의 소각로 운영방법을 운전자에게 안내한다.
SK에코플랜트 측은 이를 통해 소각로 운영 효율을 높이고 소각과정에서 발생하는 질소산화물과 일산화탄소를 각각 연평균 2톤씩 저감 시킬 것으로 예상한다. 이는 연간 휘발유 승용차 950대가 배출하는 질소산화물과 160대가 배출하는 일산화탄소량을 저감하는 효과와 같다고 밝혔다.
비용 감소 측면에서는 규제에 따른 비용 및 기타 운영비용 감소와 자본조달 비용 감소 등이 있다. 준법 리스크 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설계돼 있지 않은 경우 법규 위반으로 인해 벌금, 제재 등의 비용을 부담하고 그에 따른 후속조치의 비용이 추가로 발생한다.
두 번째는 자원의 재활용 등 ESG를 고려한 새로운 전략을 도입해 불필요한 비용을 최소화하는 기회를 찾는다. 세 번째는 기업 이해 관계자에게 보다 투명한 공시를 하고 소통을 강화함으로써 정보의 비대칭을 완화하는 것이다. 정보의 비대칭 감소는 자본조달비용의 감소를 가져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