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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기술-활] 탄성을 위해 7가지 재료 1년 간 담은 ‘시간’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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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헬로티]


[조선의 기술 1편 – 활]


* [조선의 기술]은 한국의 전통기술들을 기술적 관점에서 살펴보는 ‘기술 체험 프로젝트’다. 과거 사용했던 기술의 특징을 통해 그 시대의 ‘제조’에 대해 가늠해보고, 현대에 와서는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도 다루어본다.


<사진 : 첨단 헬로티>


‘쏜살같다’, ‘정곡을 찌르다’ 이 말들의 공통점은 ‘화살’이다.


활(활과 화살을 통칭)은 총이 나오기 전까지 가장 빠른 무기였다. 정곡은 과녁의 한복판을 말한다. 국궁의 과녁 거리가 보통 140미터인데, 정곡을 찌른 활쏘기라면, 매우 예리하다는 의미로 쓰기에 충분하다. (참고로 양궁 경기의 과녁 거리는 75미터이다.)


활은 ‘약함’의 또 다른 표현이다


활은 우리 민족에게 군사 무기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우리 민족은 활을 나아가면서 쏘는 때보다 적이 다가오면 물러나면서 쏘는 때가 많았다. 활은 방어였고, 그래서 적과의 거리를 더 멀리하기 위해 활의 사거리를 늘리는 데 공을 들였다. 버티기 위해 발달한 활의 기술, 역사의 민낯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더 멀리 화살을 보내야 했던 우리 민족은 활의 탄성을 높이기 위해 활대를 둥글게 만든 다음 반대로 꺾었다. 그 뿐 아니라 활대 바깥 쪽에 물소뿔을 붙이고, 양 끝에 뽕나무를 잇고 안쪽에는 소힘줄을 붙여 탄성을 더 강하게 했다. 마지막으로 화피(자작나무 껍질)을 입혀 활을 보호했다. 또 수풀 사이를 비집고 다니거나 말을 타면서 활을 쏘아야 했기 때문에 크기는 120 ~ 130㎝ 정도로 줄였다.


활대를 자른 단면을 보면 대나무, 물소뿔, 소힘줄, 참나무 그리고 그 단단함 사이에 궁장이 조이고 붙이고 깎고 기다렸던 시간이 보인다.


활대의 중간을 자른 단면이다. 바깥부터 물소뿔, 대나무, 참나무, 소 힘줄이다. <사진 : 첨단 헬로티>


이번 [조선의 기술 1편 – 활]은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황학정 국궁전시관에서 듣고 본 내용을 담은 것이다. 이야기를 들려준 신동술 관장은 1970년 경부터 활을 배우기 시작했고, 지금의 황학정을 만들기 위해 오랜 기간 애를 썼다. 현재는 시장, 그러니까 화살을 만드는 장인이자, 황학정을 지키고 있는 관장이다. 앞으로 황학정을 더 키우고 많이 알려 잊혀져가는 국궁이 현대인들에게 스포츠로서, 정신을 가다듬는 수양의 도구로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문화로서의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한다.


쏜살같은 시간을 만들다


대나무를 물에 불리고 말린다. 불에 올려(화로 위에 불을 쬐게 하는 것) 둥근 형태를 잡는다. 이렇게 잡아놓고 일 년 간 서늘한 곳에 보관한다.


뽕나무는 대나무 양 끝에 붙는 고자목으로 쓰인다. 뽕나무는 물에 삶아 유연하게 만들고 둥근 형태를 잡은 다음 일 년을 보관한다.

일 년이 지나면 대나무와 뽕나무를 붙인다. 이 때 양 끝을 노룻발 모양(V자 형태)으로 잘라 연결한다. 대나무는 유연하면서 탄성이 좋고, 뽕나무는 부드럽고 강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 쉽게 부러지지 않는다.


물소뿔을 대나무 폭과 길이만큼 넓적하게(3~5mm 정도) 잘라 대나무 바깥쪽에 붙인다. -나중에 활을 반대로 휘면 안쪽이 된다- 비로소 우리 활의 강한 탄성이 생겨나기 시작하는 과정이자 우리 활을 각궁이라 부르게 된 과정이다.


접착제는 민어 부레를 끓여 만든다. 이 접착제는 활의 강한 탄성을 버텨낼 만큼 강하면서도 활이 반대로 꺾일 때도 그 늘어남을 버틴다. 민어 부레풀의 단점도 있다.


▲(왼쪽)신동술 황학정 국궁전시관 관장 <사진 : 첨단 헬로티>


신동술 관장은 “민어 부레 풀은 접착성이 강하면서도 유연한데, 한 가지 단점이 습기에 약하다. 태조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했던 명분 중 하나도 ‘무덥고 비가 많이 와 활의 아교가 풀어질 염려가 있다’고 했을 만큼 약하다”고 설명한다.


말린 소 힘줄로, 아직 가공이 안 된 상태다. <사진 : 첨단 헬로티>


소 힘줄은 활대 안쪽(나중에는 바깥 쪽)에 붙는다. 활이 바깥쪽으로 휘면 그 휘려는 힘을 반대로 당겨내면서 탄성을 높인다. 활대가 부러지는 것도 막는다. 소 힘줄에 붙은 살점은 방망이로 두들겨 모두 떼어낸다. 마른 소 힘줄은 물에 빨면서 기름기를 제거한다. 소 힘줄도 민어 부레 풀로 붙인다.


참나무는 활의 손잡이 역할을 하는 대림목으로 쓰인다. 대림목은 손으로 활을 지탱하는 부위이기도 하지만 활에서 가장 큰 힘을 받는 허리 부분이기도 하다. 참나무를 손에 잡히지 좋을 만큼 자른 다음 깎고 다듬는다.


이제 자작나무 껍질 즉, 화피로 활을 감싼다. 화피에는 기름 성분이 있어, 소 힘줄을 보호하고 습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여기까지 보통 3개월이 걸린다. 재료를 구하고 다듬는 과정까지 포함하면 족히 한 해가 필요하다. 쏜살같은 시간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시간들이다.


신동술 관장이 활대에 시위를 거는 심고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 첨단 헬로티>


신동술 관장은 “선조들이 어떻게 민어 부레로 풀을 쑤어 풀을 만들었는지, 대나무와 뽕나무를 이을 때 노루발 모양을 고안해 냈는지가 정말 경이롭다. 현재 개량형 국궁이 있는데, 이 활은 시위를 놓을 때 충격이 몸으로 들어온다. 반면 전통 국궁은 충격을 활이 모두 흡수해준다”고 설명한다. 


▲신동술 관장이 제작한 화살. 화살은 길이와 무게에 따라 분류된다<사진 : 첨단 헬로티>


국궁의 기술 우수성을 논하자면 화살도 빼놓을 수 없다. 화살은 빠르게 날 수 있을 만큼만 가볍고 바람이 쉽게 흔들리지 않을 만큼만 무겁다.


전통 화살은 죽시(竹矢)로, 재료는 대나무다. 그래서 화살 만드는 사람을 ‘시장’이라 칭한다. 대나무는 마디가 있다. 마디가 굵으면 마디에 바람이 걸려 멀리 날아가지 못한다. 또 화살이 곧지 않아도 잘 날지 못한다. 그래서 표면을 매끄럽게, 직선처럼 곧게 다듬는 것이 중요하다.


조막손과 도지개


활을 만들 때는 여러 도구가 필요하다. 망치, 칼, 줄, 톱 그리고 조막손과 도지개 등이 있다. 조막손과 도지개는 활 만드는 전용 도구다.


조막손은 활대에 물소뿔을 붙인 다음 줄로 묶어 고정시킬 때 더 단단히 감기 위해 쓰는 도구다. 도지개는 시위를 걸기 위해 활을 휠 때 활 선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활을 만드는 도구로, 황학정 국궁전시관에 전시돼 있다. 왼쪽부터 조막손, 밀쇠, 심빗, 풀솔 <사진 : 첨단 헬로티>


도지개로 활을 휠 때 곡선의 틀을 잡는 역할을 한다. <사진 : 첨단 헬로티>


옛것도 진화한다


궁장이 활 한 장 만드는 데 드는 시간은 3개월. 여러 개를 동시에 만드는 것을 감안하면 일 년에 70 ~ 80장 정도 만든다. 가격은 60만 ~ 70만원 정도다.


전통 기술의 계승 측면으로만 본다면 만드는 수보다 기술을 이어나가고 있는 데 의의를 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국궁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만약 궁장이 만드는 전통 국궁만 공급된다면, 증가하는 수요를 맞추지 못할 뿐더러 비싼 가격에 쉽게 구매하기도 힘들 것이다.


카본 재질의 개량궁은 20만 ~ 30만원대다. 연습용이면 이보다 더 저렴하다. 대나무나 물소뿔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장기 보관 시 휨도 없고, 민어 부레 풀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습기에 민감할 필요도 없다. 만약 화피를 감싼다면 목적 없는 전통 기술 흉내일 뿐이다.


신동술 관장은 화살도 개량형으로 나온 것이 더 멀리 날아간다고 한다. 마디가 없고 곧기 때문이며, 무게와 치수가 일정해 일정한 활쏘기에 더 효과적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전통 국궁에 대한 애정은 넘친다.


활쏘기에 취미를 가진다면 개량궁은 연습용으로 두고 실력이 쌓이고 국궁에 대한 열정이 더 높아지면 전통 국궁 한 장을 가지고 싶게 될 것이다. 신동술 관장이 국궁의 대중화를 위해 국궁 전시장을 만들고, 이제 박물관으로 키우고 싶어하는 것도 전통기술로서의 활이 시대에 맞게 활발히 계승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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