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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컬처] 코드판타지아 “영화의 언어, AI와 함께 쓰다”

서태규 AI 영화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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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AI와 영화의 만남, 서태규 감독을 만나다

 

생성형 AI는 빠른 속도로 우리 일상에 녹아들고 있다. AI 태동기만 해도 전문가와 대중 모두 창작만큼은 AI가 가장 늦게 침투할 영역이라 예상했다. 창작은 ‘창의성’을 기반으로 한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AI 기술이 가파르게 발전하면서 생성형 AI는 글과 그림, 음악과 영상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본격적으로 전 영역을 파고들었다. 이제 사람들은 AI와 함께 글을 쓰거나 AI로 생성된 이미지를 자신의 SNS에 올린다. AI가 작곡해 준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면서 휴식을 취하고, 유튜브와 각종 숏폼 플랫폼에서 영상화된 AI 콘텐츠를 즐기면서 시간을 보낸다.

 

AI라는 새로운 도구의 등장과 함께 창작자들 역시 이 도구 사용법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특히 ‘영화’는 예술 장르 중에서도 흔히 ‘종합 예술’로 꼽히며 다양한 예술적 요소를 아우르면서 동시에 촬영·연출·편집 등 전문적인 기술 역량이 요구된다. 홀로 하는 작업이 아닌 팀 작업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사이에 존재하는 기술적 역량을 조율하는 것 또한 중요한 과제다. 이러한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며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인물이 있다. 서태규 감독은 AI 영화 ‘목소리’로 서울 국제 AI 영화제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이어 오스틴 AI 필름 페스티벌에서 최종 후보작으로 선정됐으며, 미국 AI 국제영화제와 누 웨이브 AI 필름 페스티벌에도 초청돼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AI가 영화의 언어가 될 수 있는지, 그에게 물었다.


 

한국 영화산업, 여전히 침체의 늪

 

코로나 팬데믹 이후 세계 영화시장은 반등과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 헐리우드는 다시 대형 프로젝트가 재개됐고 유럽 영화제들도 활기를 점차 되찾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서 감독은 그 이유를 관객의 변화된 습관에서 찾았다. 그는 “코로나 이후 관객들이 새로운 플랫폼에 빠르게 적응하면서 영화관을 찾는 빈도가 줄었다”고 말했다. OTT의 부상과 모바일 소비 확대는 영화관 중심의 시장 구조를 흔들었고 이는 투자 위축과 제작 부진으로 이어졌다.

 

이런 구조적 악순환 속에서 글로벌 한류 열풍은 오히려 역설적인 결과를 낳았다. 최근 세계적으로 한국 콘텐츠에 대한 기대는 높아졌지만 그 수혜는 해외 대형 제작사와 OTT 사업자가 가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서 감독은 “국내 영화계는 암흑기에 가까운 국면에 들어선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산업 전반이 구조적 변화를 겪는 와중에 AI는 또 하나의 불확실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제작 현장을 바꾸는 AI의 속도

 

AI가 불러온 가장 큰 변화는 제작 현장이 아니라 기획 단계에서 나타났다. 콘셉트 디자인과 시각 자료 제작은 과거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서 감독은 “AI를 활용한 덕에 기획 단계에서 한 달 이상 걸리던 작업을 하루 만에 끝냈고 수정도 10분 만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기존 프로세스라면 일주일 이상 걸릴 일이었다.

 

서태규 감독은 극장용 애니메이션 ‘아치와 씨팍’, 어린이 콘텐츠 ‘로보카 폴리’ 등에서 아트디렉터로 활약해 왔고 콘셉트 아티스트로써 ‘부산행’, ‘염력’을 작업하며 업계에서 활발히 활동해 왔다. 그는 평생 손으로 그림을 그려온 입장에서 “매우 낯설고 기이한 경험이었지만 동시에 효율성을 체감한 순간”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AI가 가져온 속도의 혁신은 프로젝트 진행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다만 이런 변화는 단순한 효율성 향상에 그치지 않는다. 인력 구조에 미치는 파급력 때문이다. 서 감독은 “예산이 부족한 프로젝트에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지만 미술팀의 일자리에는 위협이 된다”고 말했다. 기술 혁신이 새로운 가능성을 열면서 동시에 기존 시스템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감정을 전면에 내세운 ‘목소리’

 

 

서 감독의 대표작 ‘목소리’는 국내외 영화제에서 화제를 모았다. 다수의 AI 영화가 비주얼에 힘을 주는 경향에 반해 ‘목소리’는 감정 전달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서 감독은 영화제에서 “영화 안에 레이어가 많다”, “감정적으로 묵직한 작품이다” 관객 반응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특히 오스틴 영화제에서는 작품이 페이크 다큐멘터리임에도 실제 다큐멘터리로 오해받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배우가 실존 인물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정도다. 이러한 경험은 그에게 다음 작품에 대한 새로운 영감을 주었다. 서 감독은 “다음 작품은 실제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시도해보겠다”고 밝혔다. 예술적 실험과 산업적 실현 가능성을 동시에 고민하는 지점이다.

 

‘AI 영화’가 아닌 ‘영화’

 

서 감독은 AI와의 협업에서 본질적인 지점을 강조했다. 그는 “AI는 효율적인 도구이지만 여전히 사람이 더 잘하는 영역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작품에서도 배우의 연기와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는 “프롬프트만으로는 작품이 만들어질 수 없고 모든 것을 AI로 해결하려 하면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AI 영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AI를 활용해 효율성과 완성도를 동시에 높인 ‘영화’를 만드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시각은 단순한 기술 실험이 아닌 영화라는 매체 본연의 가치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AI가 만들어낸 콘텐츠의 한계로는 몰입감 부족과 감정 이입 저하가 흔히 지적된다. 서 감독은 이러한 문제를 기술의 발전과 더 뛰어난 창작자의 참여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윤리적 거리감 문제는 별도의 영역이다. AI가 인간의 얼굴과 사고를 흉내내면서 불러오는 불쾌감, 이른바 ‘거울 효과’는 새로운 문화적 충격이기 때문이다.

 

그는 “MP3와 냅스터가 처음 등장했을 때 음악 업계가 큰 혼란을 겪었지만 결국 스트리밍 시장으로 안정화됐다”고 회상했다. 지금의 혼란은 일시적이며, 오히려 AI의 필요성을 입증하는 과정일 수 있다는 해석이다. 기술이 문화로 자리 잡기 전 반드시 거쳐야 하는 진통이라는 메시지다.

 

코드판타지아, 기술과 예술의 실험

 

 

현재 서 감독은 AI 기반 콘텐츠 제작사 코드판타지아의 최고운영책임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회사의 이름에 대해 “코드는 명령어나 접속을, 판타지아는 예술의 정점을 의미한다”고 소개했다. 현재 코드판타지아는 주로 단편으로 제작되어 왔던 AI 영화 시장에서 30분 이상의 AI 장편 영화 기획과 오픈소스 기반 AI 기술 확보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또한 내년 봄에는 버추얼 아티스트 그룹 ‘레드소다 서클’의 데뷔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아직 AI 영화는 시장성이 제한적이지만 내실을 다지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장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기술과 예술을 접목하는 실험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다.

 

AI 시대 창작자가 갖출 태도

 

 

서 감독은 인터뷰 내내 메시지와 아이디어를 강조했다. 그는 작품을 만드는 일에는 “메시지와 아이디어, 이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단언했다. 때문에 AI는 표현을 빠르게 현실화하는 도구일 뿐이며 제약으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만약 AI로 작업하는 과정에서 한계에 부딪힌다면 기존 도구를 병행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하고자 하는 말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라는 점이다.

 

이러한 철학은 그의 작품 전반에 관통하는 주제이자 기술에 휩쓸리지 않는 창작자적 태도다. AI가 도입되더라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그의 관점은 전통과 혁신이 공존하는 지점을 보여준다.

 

끝으로 그는 AI가 영상 산업에서 차지할 위치에 대한 전망에서 다층적인 태도를 보였다. “AI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종사자는 도태될 수 있다는 불안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종이책과 회화처럼 기존 매체가 여전히 가치를 인정받듯 여러 기술은 공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시대의 변화는 뚜렷하다. 꾸준한 노동의 결과물보다 순간적인 아이디어와 임기응변이 더 높은 가치를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서 기성 창작자와 신인 창작자를 두고 그는 “기존 창작자는 기본기가 탄탄하기 때문에 적응의 문제를 해결한다면 AI 활용에서도 강점을 보일 수 있다. 반대로 신인 창작자는 도구에만 함몰될 위험이 있으니 창작의 본질을 잘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도구가 아니라 메시지이며 “자신이 가진 기술 안에서 최고가 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현재 그는 숭실대학교 연기연출과에서 ‘AI 비주얼 프로듀싱’ 과목을 맡아 학생들과 함께 AI 필름 메이킹을 탐구하고 있다. 기술을 넘어 메시지와 아이디어의 가치를 어떻게 구현할지, 그 고민을 교육 현장에서 다음 세대 창작자들과 나누고 있다.

 

헬로티 구서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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