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헬로티]
지난해 8월 이후 국내에서 추가로 발생한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의 일부 원인이 배터리 때문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2월 6일, 민관합동조사단은 ESS 화재 5건 중 4건의 원인을 ‘배터리 이상 때문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2017년 8월부터 2019년 5월까지 발생한 ESS 화재 23건에 대해 1차 민관합동조사위원회가 ‘부실한 설치·운영 관리’라고 발표한 것과는 상반된 결과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민관합동 ESS 화재사고 원인조사위원회 위원 일부와 국회·기업추천 인사 등 전문가로 구성된 조사단은 지난해 1차 조사위의 발표 이후 발생한 5건의 화재에 대해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단은 1차 원인 규명과 배터리 제조사의 안전대책 발표에도 화재가 계속 발생하자 모든 가능성을 열고 조사를 진행했다. 이번 조사는 총 11회의 조사단 전체회의를 포함해 총 62회가 이뤄졌다.
조사단은 이번에 조사한 5건의 화재사고에서 4곳의 사업장에서 배터리 이상이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배터리 결함이 화재 원인이라고 지적된 사업장은 ▲충남 예산 ▲강원 평창 ▲경북 군위 ▲경남 김해 등 총 4곳이다.
조사단은 이 4곳의 사업장에서는 배터리가 발화점이라고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배터리에서 발화할 때 나타나는 용융흔적이 있고, 시스템 운영기록에서 이상고온 등의 현상이 발생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다른 1곳인 경남 하동 사업장은 외부로 노출된 가압 충전부에 이물이 접촉해 화재가 발생했다는 조사가 나왔다.
LG화학, 배터리 분리막 관통 가능성 없어
배터리 결함이 화재의 원이라고 지목된 4곳의 사업장에서 사용된 배터리는 LG화학과 삼성SDI 제품으로 조사됐다.
▲충남 예산과 ▲경북 군위 사업장은 LG화학 배터리가 탑재됐다. ▲강원 평창과 ▲경남 김해 사업장에는 삼성SDI 제품이 쓰였다.
충남 예산 ESS에는 LG화학의 1.56MWh 용량 배터리가 탑재됐다. 조사단은 현장에서 수거한 배터리에서 내부발화 시 보이는 용융흔적을 발견해 배터리 셀을 발화지점으로 결론지었다.
경북 군위 ESS 화재에는 LG화학의 1.36MWh 용량 배터리가 사용됐다. 조사단은 전소되지 않은 배터리를 조사한 결과 내부발화를 유추할 수 있는 음극활물질 돌기가 발견됐다며 이 문제가 화재로 이어졌다고 결론 내렸다.
조사단의 결과에 LG화학은 ‘수긍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LG화학은 충남 예산의 경우 배터리 분리막은 철로도 뚫을 수 없다며, 양근 파편이 점착된다고 해도 분리막을 관통하지 못해 화재 요인이 될 수 없다고 했다. 또, 리튬 석출물이 배터리 내부발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자체 실험을 통해 검증했다고 주장했다.
경북 군위에 대해 발생한 화재에서는 배터리 음극판과 분리막 사이에 이물이 존재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이 문제가 화재로 이어질 수 있는 결함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발견된 이물은 음극재 성분인 ‘흑연계 이물’로 이 역시 배터리 분리막을 관통할 수 없다는 게 LG화학 측의 설명이다.
삼성SDI, 화재사고 배터리 결함이라고 단정 못 지어
화재가 배터리 결함이라고 지적된 강원 평창과 경남 김해 사업장에 사용된 배터리는 삼성SDI의 제품이다.
강원 평창 ESS에는 삼성SDI의 7.1MWh 규모 배터리 3대가 탑재됐다. 조사단은 운영기록에서 고온, 저전압 등 이상 현상을 발견했다며, 이를 근거로 배터리를 발화점으로 분석했다. 또, 배터리 보호기능도 동작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경남 김해 ESS에는 삼성SDI의 2.26MWh 용량 배터리가 쓰였다. 조사단은 배터리 랙 내부의 배터리 간 전압편차(130mV)가 확인됐고, 분리막에서 발견된 황색반점에서 구리와 나트륨 등 내부 발화를 유추할 수 있는 성분이 검출됐다고 설명했다.
삼성SDI 역시 LG화학과 마찬가지로 두 화재사고의 문제를 배터리 결함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강원 평창 사업장의 경우 조사단이 배터리 발화 근거로 제시한 저전압, 이상고온, 랙 전압 불균형 등의 운영기록은 화재의 일반 현상으로 배터리 결함과는 무관하다고 지적했다. 또, 운영기록이 화재 발생 3개월 전 데이터라는 점에서 배터리 보호기능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해석도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경남 김해 사업장의 경우 배터리 간 전압 차이는 사용상 발생할 수 있는 현상이고, 조사단이 제시한 130mV의 전압편차는 안전 범위 내의 값으로 화재와는 관련이 없다고 설명했다. 황색반점 역시 배터리 사용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흔적이라는 게 삼성SDI 측의 주장이다.
관계자는 “같은 제품을 사용하고 유사한 환경에 있었던 해외에서는 ESS 화재 사고가 보고된 바 없다”며 “조사단의 주장이 맞다면, 동일한 사고가 유사한 환경에서도 발생해야하는 데 그렇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