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 그 사이에서 길을 묻다
정부가 다시 신도시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매년 하나씩, 5년간 수도권에 135만 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입니다. 과거와 달리 '계획'이 아니라 '착공'을 기준으로 삼겠다는 점에서 강한 의지를 보여주지만, 과연 이번엔 다를까요? 진짜 삽을 뜰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 정책은 실수요자와 투자자에게 어떤 선택을 요구하는 걸까요?
1기 신도시: 먼저 산 자의 승리
1989년, 1기 신도시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반반이었습니다. "너무 멀다, 집값 떨어진다, 교통도 없다"는 우려가 컸지만, 분당과 일산을 중심으로 신도시는 빠르게 도시의 형태를 갖추었고 지금은 서울 강남권의 확장선이 됐습니다. 당시 분당에 집을 샀던 사람들은 10년 안에 두세 배의 자산 상승을 경험했습니다. 일산과 중동, 산본도 안정된 주거지로 자리 잡았죠. 1기 신도시는 '산 사람'과 '안 산 사람'의 차이를 명확히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집을 산 사람은 시세차익과 안정된 주거를 얻었지만, 기다렸던 사람은 몇 년 후 더 높은 가격으로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2기 신도시: 기다린 자의 보상
2000년대 들어 정부는 2기 신도시를 통해 한 걸음 더 나아간 실험을 했습니다. 자족 기능, 교통, 산업단지 유치까지 함께 고려한 도시를 만들겠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이상과 현실의 간극은 컸습니다. 광교, 동탄, 운정 등 일부 신도시는 서울과의 연결성이 떨어졌고, 자족 기능은 기대보다 늦게 자리 잡았습니다. 그렇다고 실패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동탄은 광역 교통망 확충과 기업 유치를 통해 뒤늦은 반등을 이루었고, 판교는 강남 IT벨트의 중심지로 성장했습니다. 2기 신도시는 결국 기다릴 수 있었던 사람에게는 보상을, 기회를 놓친 사람에게는 후회를 안겼습니다.
3기 신도시: 기다림이 만든 후회
2018년 이후 등장한 3기 신도시는 아직 입주조차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왕숙, 창릉, 교산 등은 발표된 지 7년이 다 되어가지만 실제 착공이 진행된 곳은 많지 않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3기 신도시 나오니까 좀 기다려 보자"고 했지만, 그 기다림 속에서 집값은 수억 원씩 올랐고, 실거주자와 투자자 모두 타이밍을 놓쳤습니다. 3기 신도시는 '공급 신기루'라는 비판 속에서 정부 정책의 실행력에 대한 회의감을 심어주었고, 사지 않았던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전세나 월세에 머물고 있습니다.
9·7 대책: 이번엔 다를까?
이제 다시 9·7 대책입니다. 정부는 이번엔 다르다고 말하며 LH가 직접 시행하고 공공청사나 학교 부지, 노후 임대단지까지 공급에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과거 1기 신도시처럼 속도감 있게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도 보이죠.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습니다. LH의 재정 여력은 빠듯하고, 서울과 수도권 내 유휴지는 갈수록 줄고 있습니다. 지자체 협의, 주민 반발, 정치적 리스크도 상존합니다. 과거처럼 택지개발촉진법으로 단숨에 밀어붙이던 시절과는 환경이 다릅니다.
실수요자와 투자자의 선택
시장은 더 똑똑해졌고, 사람들은 단순히 정부 발표를 믿지 않습니다. 공급의 숫자보다 중요한 건 공급의 질과 시간입니다. 과거의 교훈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합니다. **'먼저 산 사람이 결국 웃었다'**는 사실을 말이죠.
투자자들은 이번에도 패턴을 봅니다. 정부의 강한 공급 시그널은 곧 시장의 숨고르기를 뜻하며, 저평가된 지역과 향후 교통 개선이 예고된 곳, LH의 직접 시행 대상지를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실수요자에게는 조금 다른 기준이 필요합니다. 청약을 기다릴 것인지, 지금 매수할 것인지의 기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안정성입니다. 무기한으로 기다리라는 말은 틀릴 수 있습니다. 주거 안정과 미래 가치, 인프라 확장 가능성까지 냉정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과거는 반복된다
1기 신도시 때 분당을 샀던 사람들은 지금도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동탄을 10년 전 분양가로 잡았던 사람들은 지금의 시세표를 보며 미소 짓습니다. 반면 기다렸던 사람들, 더 떨어질 거라며 주저했던 사람들은 여전히 같은 고민 속에 있습니다.
지금 필요한 건 예측이 아닙니다. 이번 정부의 공급정책은 확실히 진화했지만, 시장도 똑똑해졌고 과거와는 다른 리스크들도 도사리고 있습니다. 공급은 숫자가 아닙니다. 삽이 뜨고, 철근이 올라가고, 가구가 분양될 때에야 비로소 시장은 바뀝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회는 늘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지나갑니다.
이번엔 어떻게 할 것인가. 지켜볼 것인가, 선택할 것인가. 과거를 안다면 답은 분명히 보입니다. 기다린 자가 아니라, 먼저 본 자가 시장의 주인이 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