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XW 2026] 설계자의 머릿속 노하우를 ‘자산’으로, 다쏘시스템이 가동한 ‘지식 가상화’ 전략

2026.02.04 15:39:09

최재규 기자 mandt@hellot.net

지식은 끊임없이 쌓이는데 사용자의 결정은 늦어지는 역설이 발생하고 있다. 설계 데이터, 문서, 협업 기록, 제조·조달 정보 등이 조직 곳곳에 파편화돼 유기적인 흐름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모건 짐머만(Morgan Zimmermann) 다쏘시스템(Dassault Systèmes) 3D익스피리언스(3DEXPERIENCE) 최고경영책임자(CEO)는 산업 혁신을 가로막는 병목으로 이 같은 정보 분절 이슈를 지목했다.

 

다쏘시스템 연례 기술 생태계 축제 ‘3D익스피리언스 월드 2026(3DEXPERIENCE World 2026 이하 3DXW)’은 지난 1일부터 나흘간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전 세계 엔지니어·설계자를 대상으로 개막했다.

 

 

이번 행사는 ‘지식의 가상화(Virtualization of Knowledge)’와 ‘인공지능(AI) 융합’을 슬로건으로 배치했다. 이를 통해 파편화된 데이터를 지능형 자산(Intelligent Assets)으로 전환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이로써 산업 전반의 불확실성을 유연하게 관리하는 ‘가상 기업(Virtual Company)’ 모델을 완성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모건 짐머만 CEO는 행사 사흘차에 열린 발표 세션에서 자사 가상 환경 방법론인 버추얼 트윈(Virtual Twin) 플랫폼 ‘3D익스피리언스’의 역할에 대해 역설했다. 전문성·노하우를 포착해 축적하고 다시 꺼내 쓰게 만드는 ‘지식 자산화 시스템’으로 재정의했다.

 

 

이 시스템을 실제로 구동하는 핵심 트리가가 바로 AI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여기에 이식된 AI는 기업 내부에 잠자고 있는 방대한 지식을 실시간으로 가동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후 의사결정 속도를 앞당기는 중추적인 프로세스여야 한다는 게 짐머만 CEO의 결론이다.

 

그는 다쏘시스템이 지향하는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인 ‘생성형 경제(Generative Economy)’라는 화두를 던졌다. 이 개념은 결과물을 생성하는 수준에서, 인간의 지능·경험이 기술과 결합해 새로운 가치를 재생산해내는 생태계를 의미한다. 모건 짐머만은 이 다소 추상적인 담론을 증명하기 위해 마니쉬 쿠마(Manish KUMAR) 솔리드웍스 최고경영책임자(CEO) 겸 연구개발(R&D) 부사장과의 대담을 통해 이를 피부에 와닿는 실패담으로 구체화했다.

 

쿠마 CEO는 재택근무 시절 직접 책상을 만들었던 경험을 공유하며, 인체공학적 설계와 구조적 강도가 필요했지만 전문 노하우가 부재했음을 고백했다. 그는 “나무 조각을 끼워 판재를 결합하는 연결 방식인 ‘비스킷 조인트(Biscuit Joint)’라는 용어를 처음 들었을 때, 차(Tea)랑 먹는 과자인 줄만 알았다”며 배경 지식 없이 시행착오 끝에 완성된 책상은 결과적으로 너무 무겁고 지나치게 과설계됐다고 회상했다.

 

이에 짐머만 CEO는 이 에피소드를 학습의 축적이라는 개념으로 연결했다. 이 사건 이후 쿠마의 두 번째 프로젝트가 수월해진 이유는 실패를 통해 얻은 지식이 이미 머릿속에 시뮬레이션 가능한 상태로 가상화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전문 디자이너나 제조 업체의 지식·노하우가 오늘날 어디에 저장돼 있는가”라고 반문하며, 흩어진 경험 데이터를 플랫폼이라는 하나의 그릇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이 산업 혁신의 핵심임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식·노하우를 가상화해 활용 가능하게 만들 때, 비로소 ‘가상 동반자(Virtual Companion)’가 설계자의 실질적인 파트너로 기능하게 된다는 뜻을 전했다.

 

여기서 가상 동반자는 다쏘시스템이 3D익스피리언스 플랫폼 안에 심어 놓은 역할형 AI 에이전트다. 핵심은 기업 내부에 흩어진 지식과 노하우를 끌어올려 실제 의사결정에 활용하는 기술 접근법이라는 점이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기존 툴과 화면을 그대로 쓰되, 가상 동반자가 플랫폼 내부에서 맥락을 이해하고 필요한 정보와 작업 패키지를 정리준다. 이후 조직이 무엇을 먼저 결정해야 하는지까지 좁혀주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사측은 올해 행사에서 ▲프로세스 맥락을 조율하는 ‘아우라(AURA)’ ▲엔지니어링 추론을 담당하는 ‘레오(LEO)’ ▲과학 영역을 담당하는 ‘마리(MARIE)’ 등 산업 노하우를 집약한 특화 AI 엔진을 완성했다.

 

먼저 아우라는 지난해 가상 동반자의 첫 얼굴로 제시된 뒤 1년 동안 다쏘시스템 최신 비전의 초석을 다졌다. 핵심은 설계·검증·협업 과정에서 흩어진 맥락(Context)을 모아 사용자가 ‘지금 무엇을 결정해야 하는가’를 빠르게 파악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어 레오는 아이디어가 현실의 물리·제조 제약을 통과하도록 돕는 엔지니어링 동반자다. 설계 대안을 놓고 강도·중량·공차 등 조건을 함께 점검하고, 시뮬레이션과 제조성 관점에서 어떤 선택이 더 합리적인지 판단 근거를 정리하는 역할로 정의된다.

 

마지막으로 마리는 소재·화학·규제 같은 과학 기반의 질문 해소에 무게를 뒀다. 예컨대 어떤 소재가 요구 성능을 만족하는지, 공정 조건이 바뀌면 물성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규제·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요구를 충족하려면 어떤 변수부터 확인해야 하는지 등을 다룬다. 어리한 마리는 과학적 근거 중심으로 안내하는 캐릭터로 포지셔닝됐다.

 

 

다쏘시스템은 이 같은 신 기술 도입에 대한 현장의 거부감 역시 정면으로 다뤘다. 플랫폼 도입을 위해 일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야 하느냐는 질문에 짐머만 CEO는 단호하게 ‘아니오(No)’라고 답했다.

 

사용자는 그동안 익숙하게 활용한 다쏘시스템 컴퓨터지원설계(CAD) 솔루션 ‘솔리드웍스(SOLIDWORKS)’ 환경을 그대로 사용하되, 플랫폼은 그 안에 담긴 설계·문서 속 지식을 팀 협업과 설계 후기의 중심으로 진화시킨다. 이는 도구를 구동하는 핵심 동력을 ‘AI 네이티브(AI Native)’ 환경으로 교체해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전략이다.

 

이번 행사에서는 지적재산권(IP) 보호와 클라우드 전환의 딜레마에 대해서도 현실적인 타협안이 제시됐다. 짐머만은 “지식을 추출하고 가동하는 데 필요한 대규모 AI 모델과 막대한 연산 자원을 개별 기업이 자체적으로 감당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연이어 다쏘시스템은 고성능 컴퓨팅 인프라를 통해 고성능 연산의 혜택을 제공하면서도, 사용자·조직의 노하우는 철저히 격리된 보안 환경에서 보호하는 신뢰 기반의 운영 모델을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이 기반이 되는 다쏘시스템 플랫폼은 설계실 내외부의 불확실성을 관리하는 영역으로 확장된 모습이다. 모건 짐머만 CEO는 전쟁, 물류 대란, 관세 급변 등 예측 불가능한 외부 변수에 대응하기 위해 자사 차세대 기술 비전 ‘3D유니버스(3D Universe)’의 역할을 내세웠다.

 

이 청사진은 외부의 위기가 사용자 내부에 미칠 파장을 정밀하게 계산하는 영향 계산 시뮬레이션 기능을 수행한다. 다쏘시스템은 이를 위해 신뢰할 수 있는 정보원(Trusted Sources) 라이브러리를 구축하고 외부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한다. 이렇게 확보된 외부 변수가 사용자 내부 데이터와 결합되면, 특정 지역의 분쟁이 공급망과 제조 원가에 미칠 충격을 구체적인 수치로 산출해내는 식이다.

 

 

쉽게 말해, 3D유니버스는 사용자가 마주한 가상과 현실의 모든 데이터를 한데 모아놓은 ‘거대한 지식의 바다’로 이해하면 된다. 가상 동반자가 이 안에서 수많은 변수를 미리 돌려보며 최적의 해답을 찾아내는 일종의 전략 시뮬레이션 환경인 것이다. 이 환경에서 가상 동반자는 설계자 3D유니버스의 데이터를 근거로, 위기 상황에 대한 선제적인 대응책을 제언하는 지능형 파트너로 진화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다쏘시스템은 독일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 ‘SAP’ 등 재무 시스템이나 구글클라우드(Google Cloud)·팔란티어(Palantir) 등 기존 데이터 플랫폼들과의 관계 설정도 명확히 했다. 이들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유용한 데이터 소스(Data Source)로 활용하겠다는 전략이다. 동시에 제품과 공장의 본질적인 언어를 정의·해석하는 중심축은 ‘버추얼 트윈’이 맡겠다는 것이다.

 

짐머만은 “항공기 제조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항공기 그 자체이며, 항공기의 본질은 결코 SAP에서 정의되지 않는다”며 “회사 내 모든 부서가 서로를 이해하도록 지원하는 매개체는 버추얼 트윈을 통한 가시성(Visibility) 확보”라고 설파했다.

 

결국 이 같은 비전이 현장에 안착하기 위한 마지막 퍼즐은 ‘단순화(Simplicity)’에 있다. 모건 짐머만 CEO는 고도화된 기술이 오히려 사용자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제품 구성과 내비게이션 환경을 전면 개편했다고 밝혔다. 자사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는 90초 내에 완료되며, 사용자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최대 2년간 동일 버전을 유지할 수 있는 옵션을 제공한다.

 

“더 레드하게(More Red), 그리고 더 단순하게”라는 그의 언급은 기술의 고도화와 사용의 편의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다쏘시스템의 전략을 함축하고 있다. 이는 플랫폼 내부의 엔진이 AI와 데이터 분석으로 고도화될수록, 사용자가 마주하는 사용자 화면(UI)은 오히려 스마트폰처럼 직관적이어야 한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복잡한 연산은 시스템에 맡기고 사용자는 오직 결정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이른바 ‘역설적 시뮬레이션’을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취지다.

 

물론 이러한 ‘지식의 선순환’ 구조가 실현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현실적인 문턱도 있다. 다쏘시스템이 강력한 보안 정책을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핵심 노하우를 외부 인프라에 올리는 것에 대한 제조 현장 특유의 심리적 저항선은 여전히 높다.

 

또한 암묵지(Tacit Knowledge)를 데이터화하는 과정에서 실무자에게 부과되는 데이터 정제·입력의 피로도 역시 해결해야 할 숙제다. 특히 짐머만 CEO는 협력사들이 느끼는 실존적인 공포를 솔직하게 거론했다. 자신들의 상세 설계 데이터를 공유했다가, 오히려 제조사가 이를 AI로 학습해버려 기술을 탈취당할 수 있다는 우려다.

 

결국 다쏘시스템이 내놓은 ‘IP 라이프사이클(Lifecycle) 관리’ 카드가 현장에서 얼마나 강력한 보안 신뢰를 구축하느냐가 가상 기업 엔진 가동의 핵심 승부처가 될 전망이다. 사측의 이 같은 각종 비전이 단순한 기술적 진보에서 머무르지 않기 위해서는 보수적인 제조 현장의 오랜 관성까지 성공적으로 재설계(Redesign)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헬로티 최재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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