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AIST가 국제 연구진과 함께 환경 규제가 강한 국가일수록 전기차 등 녹색 제품의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전통적으로 기업이 환경 규제가 느슨한 국가로 생산거점을 이전한다는 ‘오염 피난처(pollution haven)’ 가설을 뒤집고, 기업이 이제는 ‘녹색 피난처(green haven)’를 찾아간다는 새로운 전략을 제시한 연구 결과로 주목받고 있다.
KAIST는 기술경영학부 이나래 교수 연구팀이 미국 조지타운대 헤더 베리·재스미나 쇼빈 교수, 텍사스대 랜스 청 교수와의 국제 공동연구를 통해 ‘환경 규제가 엄격한 국가일수록 전기차 등 녹색 제품의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규명했다고 17일 밝혔다.
‘녹색 제품’은 환경을 덜 오염시키는 친환경 제품으로, 에너지 효율이 높은 가전제품이나 오염을 줄이는 친환경 자동차(전기차, 하이브리드차) 등이 해당된다.
기존에는 다국적 기업이 환경 규제가 약한 나라에서 주로 생산과 수출을 집중한다는 설명이 주류였다. 그러나 최근 기후변화 대응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강화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녹색 제품의 교역이 급증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존 이론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새로운 패턴이 나타나고 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공동연구팀은 2002년부터 2019년까지 92개 수입국, 70개 수출국, 약 5천여 개 제품을 대상으로 유엔(UN)이 운영하는 세계무역 데이터베이스 ‘UN Comtrade’ 자료를 분석해 교역 패턴을 정밀 검증했다.
그 결과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 전체 교역량은 줄어드는 전형적인 오염 피난처 효과가 나타났지만 녹색 제품에 한해서는 오히려 교역이 증가하는 현상이 확인됐다. 즉, 환경 규제가 엄격할수록 녹색 제품의 수출과 조달이 활발해지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는 기업들이 단순히 생산비 절감을 위해 규제가 느슨한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친환경 제품의 생산과 거래 과정에서 투명성과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오히려 규제가 강한 국가를 선호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소비자와 직접 맞닿는 최종 소비재 분야, 즉 스마트폰, 의류, 식품, 화장품, 가전제품, 자동차 등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또한 환경운동이나 NGO 활동이 활발한 국가로 수출되는 제품일수록 그 효과가 더욱 강했다.
이나래 교수는 “이번 연구는 글로벌 공급망이 더 이상 비용 효율성만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기업의 환경적 정당성이 전략적 선택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며 “강력한 환경정책은 기업 활동을 제약하는 것이 아니라, 녹색 제품 경쟁력을 높이는 기반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경영 분야의 최상위 학술지인 저널 오브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스터디스(Journal of International Business Studies, JIBS) 9월 1일자에 게재됐다. 이번 연구는 KAIST의 오픈 액세스(Open Access) 출판 지원을 통해 논문 전체를 누구나 무료로 열람할 수 있도록 했으며, 이에 따라 연구 결과가 학계와 정책 현장에서 폭넓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헬로티 이창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