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AI 반도체 생태계, 글로벌 경쟁 우위 점하려면?

2024.09.03 11:12:49

서재창 기자 eled@hellot.net


시스템 반도체 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빠른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시스템 반도체는 스마트폰, 자동차, AI 등 다양한 전자 제품의 두뇌 역할을 하는 반도체로, 그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특히, 시스템 반도체 시장의 핵심을 담당하는 팹리스 기업의 역할 또한 점차 부각된다. 팹리스 기업은 반도체 설계만을 전문으로 하며, 생산은 전문 파운드리 업체에 맡긴다.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 덕분에 팹리스 기업들은 설계에 집중해 혁신적인 기술 개발에 주력할 수 있으며, 고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하다. 



팹리스 경쟁력이 중요한 이유

 

대표적인 팹리스 기업으로는 GPU로 AI 시장을 사로잡은 엔비디아를 비롯해 AMD, 퀄컴 등이 있으며, 이들은 각각 GPU, CPU, 모바일 AP 등의 설계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자랑한다. 이들의 성공 사례는 팹리스 모델이 얼마나 강력한 비즈니스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또한, 팹리스 기업들은 다양한 설계 전문성을 통해 파운드리 업체와의 협업을 극대화하며, 글로벌 반도체 생태계에서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제조 역량을 넘어 혁신적인 기술 도입과 시장 변화를 이끄는 동력이 되고 있다. 

 

 

시스템 반도체 시장의 확장 속에서 팹리스 기업의 가치는 기술 혁신과 효율적인 자원 활용 측면에서 크게 평가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적인 강자로 자리 잡았지만, 시스템 반도체와 팹리스 시장에서는 상대적으로 도전과제를 안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팹리스 규모는 글로벌 단위에서 봤을 때 1% 미만일 정도로 존재감이 부족하다. 이뿐 아니라 대다수의 국내 팹리스 기업은 주로 중소형 애플리케이션에 집중하고 있어 글로벌 경쟁력 면에서 한계를 보여 왔다. 반면, 앞서 언급된 대형 팹리스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며, 이는 기술력, 인력, 자본 측면에서의 차이로 이어진다. 

 

최근 국내에서 AI 반도체 영역 안에서 경쟁력 있는 팹리스가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리벨리온, 사피온, 퓨리오사AI 등이 바로 그들이다. 주로 NPU(Neural Processing Unit)를 다루는 이 기업들은 AI 인프라 구축에서 차별점과 경쟁력을 갖고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을 앞두고 있다. 특히, AI 작업에 특화한 반도체인 NPU는 차세대 반도체 산업의 중요한 축으로 떠올랐다. NPU는 인간의 뇌신경망을 모방한 연산을 수행하며, 주로 딥러닝과 같은 AI 알고리즘의 처리에 사용된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NPU는 향후 AI 산업의 핵심 기술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약진하는 국내 AI 반도체 기업들

 

지난 8월, 국내 팹리스 업계에 빅딜이 성사됐다. 리벨리온과 사피온코리아 간 합병을 위한 본계약 체결 소식이 알려지며,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양사 간 합병으로, 국내를 대표하는 AI 반도체 기업이 될 가능성이 농후해졌다. 신규 합병법인은 기업가치 1조 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합병 후 존속법인은 ‘사피온코리아’로 하되, 리벨리온 경영진이 합병법인을 주도함에 따라 새 회사의 사명은 ‘리벨리온’으로 결정됐다. 그간 리벨리온의 가파른 성장을 이끌어온 박성현 대표가 합병법인의 경영을 맡게 될 예정이다. 리벨리온은 향후 2년 정도를 우리나라가 세계 AI 반도체 시장에서 승기를 잡을 골든타임으로 내다봤다. 

 

리벨리온, 사피온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또 하나의 기업인 퓨리오사AI는 현재 800억 원 규모의 투자 유치를 앞두고 있다. 현재 기업가치 9200억 원으로 평가받는 퓨리오사AI는 이번 투자 유치가 프리IPO 라운드가 될 전망이다. 핵심제품인 자사 AI 반도체 ‘워보이’는 수익 창출을 앞두고 있는데, 대만 컴퓨터 제조사인 에이수스는 워보이가 탑재된 서버를 데이터 센터 기업에 공급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에이수스 서버 구매 시 인텔, 엔비디아 등의 제품과 함께 워보이를 선택하도록 옵션을 제공하는 형태다. 업계에 따르면, 퓨리오사AI는 오픈AI 본사에서 2세대 AI 반도체 ‘레니게이드’를 시연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됐다. 

 

딥엑스는 최근 제품 양산에 발을 디뎠다. 첫 단계로 딥엑스의 5나노 반도체인 ‘DX-M1’의 양산을 위해 가온칩스와 계약을 체결했다. 딥엑스는 올해 6월 DX-M1의 커머셜 샘플을 삼성 파운드리로부터 받아 양산 검증 테스트를 진행했고 주요 지표를 통해 양산성을 확신했다. 딥엑스는 가온칩스와 삼성 파운드리 5, 14, 28나노 공정을 활용한 MPW로 시제품을 제작했으며, 120여 곳 이상의 기업에 AI 반도체와 SW 개발 툴인 ‘DXNN’을 제공했다. 그 결과, 20여 기업에서 양산 응용 제품 개발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딥엑스는 하반기에 10여 개의 고객사와 양산 개발 협력을, 내년 상반기까지 20여 개 이상 고객사 확보를 예상했다. 

 

정부 주도 반도체 생태계 펀드의 탄생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은 팹리스 생태계 강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는 팹리스 기업 지원을 위해 연구개발 투자, 세제 혜택, 인력 양성 등을 강화하며, 민간에서는 팹리스 생태계 확장을 위해 협력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기업이 팹리스 기업과 협력하며 기술과 노하우를 공유하고, 반도체 설계 인력을 키우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강화하는 추세다. 

 

최근 정부는 스케일업·인수합병(M&A)을 목적으로 하는 팹리스를 대상으로 올해 3분기부터 ‘반도체 생태계 펀드’를 추진한다. 정부는 현재 조성된 3000억 원 규모의 펀드를 시작으로 시스템 반도체 기업의 대형화를 집중 지원할 계획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7월 반도체 기업 750억 원·정책금융 750억 원·민간 출자 1500억 원을 포함한 총 3000억 원 규모의 반도체 생태계 펀드를 설계했다. 정부는 해당 펀드를 오는 2025년까지 3000억 원으로 조성하고, 올해 3분기부터 실제 지분 투자를 개시할 계획이다.

 

이와 더불어 정부는 신규 펀드 8000억 원을 새로 조성해 총 1조1000억 원 규모로 반도체 생태계 펀드를 증액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향후 기업 수요를 고려해 규모를 추가 확대할 가능성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신규 펀드 8000억 원은 재정 2000억 원, 산업은행 2000억 원, 민간 매칭 4000억 원 등을 통해 조달한다. 이 외에도 정부는 수요 연계 대규모 연구개발, AI 반도체 개발·생산 인프라 구축, 우수한 설계 인력 양성 등을 지원하고 있다. 이 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하반기 중 ‘AI 시대, 시스템반도체 산업 종합 지원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헬로티 서재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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