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봇규가 간다] “화장실 열 걸음부터 산티아고 순례길까지”...위로보틱스 ‘윔 S’ 보행 훈련소를 가다

2025.11.15 19:58:47

최재규 기자 mandt@hellot.net


로봇, 더 이상 SF가 아니다...일상 속 BOT을 찾아서 [봇규가 간다]

 

차디찬 강철 덩어리가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와 당신의 일상을 공유한다면? 더 이상 상상이 아닙니다. '봇규가 간다'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로봇의 가치를 낱낱이 파헤치는 리얼 다큐멘터리입니다. 데이터와 이론 뒤에 숨겨진 로봇의 진짜 모습. 그리고 로봇 도입 전의 막연한 기대감, 실제 체험 과정에서의 새로운 경험, 로봇이 가져올 미래 청사진까지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기록합니다.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경험하는' 로봇 프로젝트. 봇규가 간다에서 그 생생한 현장을 여러분의 눈앞에 펼쳐 보입니다.


 

보행자의 날을 앞둔 11월 8일, 웨어러블·휴머노이드 로봇 기술 업체 위로보틱스가 장년층을 위한 보행 프로그램을 전개했다. 서울 송파구 소재 올림픽공원 맞은편에 있는 ‘윔 보행운동센터’에서 자사 웨어러블 로봇 ‘윔 S(WIM S)’의 경험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체험객은 준비운동으로 몸을 푼 후 윔 S를 차고 올림픽공원을 보행한 뒤 센터로 돌아오는 코스를 경험했다. 이 50분 동안 로봇은 체험객의 걸음에 개입하지 않는 선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게 만드는 ‘세 번째 다리’ 역할을 했다.

 

윔 보행운동센터는 지난해 3월 문을 연 국내 최초 로봇 보행 전문 체험 공간이다. 보행 보조 웨어러블 로봇을 직접 착용해 보고, 물리치료사·건강운동관리사 자격을 가진 트레이너의 1대1 맞춤 지도를 받을 수 있는 곳이다.

 

관계자에 따르면, 센터 개관 이후 현재까지 누적 체험자 수는 2000명을 넘겼다. 부모의 보행을 걱정하는 자녀, 수술 후 회복 중인 가족, 암 치료 후 체력이 떨어진 환자, 다시 걷는 자신감을 찾으려는 중·장년층 등이 대상자다. 여기에 물류·택배업 종사자, 환경미화원, 주차요원, 경찰, 소방관, 산악 공원 관리자 등 다양한 대상자도 1세대 모델인 윔(WIM)과 2세대 모델 윔 S를 체험하고 있다.

 

위로보틱스 관계자는 “이번 오픈하우스 데이의 기획 의도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걸음을 중심에 두자는 데 있다”며 “보행자의 날을 맞아 ‘가까운 사람의 걸음을 다시 바라보는 하루’라는 메시지 아래, 평소 주변에서 보행에 어려움을 겪는 가족이나 지인의 모습을 무심코 지나쳤다면 이날만큼은 그 걸음을 제대로 살펴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20세부터 103세까지, 보행 지원 거점으로 진화하는 ‘윔 보행운동센터’

 

 

센터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기다리는 건 문진표다. 약 복용 여부, 현재 운동량, 수술 경험과 질병 진단 경험 등을 꼼꼼하게 적어야 본격적인 체험이 시작된다. 인공관절 수술 전후의 무릎, 젊은 파킨슨 환자, 암 치료 후 체력이 떨어진 사람, 만성질환을 안고 사는 이들이 이 문진표를 채우고 있다. ‘그래도 스스로 운동해 보고 싶다’는 의지를 확인받는 셈이다.

 

관계자는 실제로 “화장실만이라도 혼자 걸어가고 싶다”, “언젠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보고 싶다”와 같은 목표를 말하는 참가자들도 많다고 귀띔했다.

 

그동안 참여자 데이터에 따르면, 체험자의 연령대는 60대 이상이 75% 이상으로 집계됐다. 건강 상태 기준으로 보면 뇌졸중·파킨슨·근육병·암 투병 이후 방문한 중증질환자가 37.6%, 관절염과 인공관절 수술 전후, 노화로 근 감소를 체감한 보행 약자가 30.3%를 차지했다. 이는 많이 걷는 사람을 더 멀리 걷게 하는 곳이기보다는, 조금밖에 못 걷는 사람의 걸음을 한 칸 더 늘리는 곳에 가까워 보였다.

 

 

위로보틱스 관계자는 “실제 사용자는 20세부터 103세까지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윔을 설계할 때만 해도 하루 종일 걷는 직업군을 주 타깃으로 생각했지만, 실제 센터에서는 시니어와 만성질환자가 주요 타깃이 됐다”고 덧붙였다.

 

대신 “앞선 산업계 종사자 그룹 또한 염두에 두고 있고, 특히 리모델링 현장처럼 엘리베이터부터 뜯어내는 건설 작업자들이 ‘계단만 오르내려도 하루가 끝난다’는 의견을 반영해 모델을 개선했다”고 부연하며 밝혔다.

 

윔 S와 함께한 50분 수업 “걷고 싶게 만드는 신기한 기계”

 

본격적인 준비운동은 문진과 보행 분석에서 나온 데이터를 바탕으로 시작된다. 트레이너의 안내에 따라 하체 근육을 깨우는 스트레칭과 스쿼트, 균형 잡기 동작을 수행하면서 오늘 50분 프로그램의 목표를 맞춘다. 이 50분은 ▲준비운동 ▲실내 평지 보행 ▲실외 보행 ▲마무리 운동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보행 수업’이다.

 

윔 S는 1.6kg의 소형·경량화 설계를 갖춘 2세대 보행 보조 로봇이다. 1세대 윔은 단일 모터 대칭 보조 메커니즘으로 초경량 보행 보조 로봇의 기준을 세운 제품이었다. 윔 S는 이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본체 무게가 20%가량 줄었다. 높이와 두께 또한 각각 18·10%를 덜어내 전체 부피를 더 작고 가볍게 만들었다.

 

▲ 윔은 크게 허리와 양 무릎에 차는 밴드, 로봇 본체로 구성돼 있다. 측면에 탑재된 버튼을 통해 네 가지 모드를 번갈아 활용할 수 있다. (출처 : 헬로티 최재규 기자) 

 

여기에 안내음 조절, 음소거 및 저소음 설계, 방수·방진 등급 IP65 확보, 보행 모드 강화 등으로 개선됐다. 관계자는 이에 대해 “기존 1세대 사용자의 의견을 적극 수렴해 2세대를 지난 4월 선보였다”며 “이전 세대보다 조용하고 다양한 환경에서 쓸 수 있도록 진화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윔 S는 1세대 사용자의 요구를 반영해 완성도를 높였다. 관계자는 특히 착용감과 사용 편의성을 극대화한 설계 덕분에, 현장에서 웨어러블 로봇을 처음 경험하는 이들에게도 기술의 접근 장벽을 낮추는 역할을 수행했다고 평가했다. 이날 생애 처음 웨어러블 로봇을 입어본 체험객도 생각보다 가볍고, 몸에 많이 걸리적거리지 않았다라고 후기를 전했다.

 

실내 워밍업은 체험객이 네 가지 보행 모드에 적응되도록 하는 과정이다. 윔 S에는 평지를 가볍게 만들어 주는 ‘에어 모드’, 오르막·내리막과 계단 구간을 버텨 주는 ‘등산 모드’, 보폭이 짧고 속도가 느린 사람을 위한 ‘케어 모드’, 물속을 걷는 것처럼 저항을 걸어 하체 근력을 키우는 ‘아쿠아 모드’가 있다.

 

▲ 준비운동하는 모습(좌)과 야외 체험 전 센터 안을 걷는 모습(우). (출처 : 헬로티 최재규 기자) 

 

이 가운데 실내 워밍업에서는 에어 모드와 아쿠아 모드를 중심으로 보행하는 과정을 거쳤다. 평지에서는 에어 모드를 켜고 평소보다 약간 빠른 속도로 걸어본다. 관계자에 따르면, 이 모드는 평지 보행 시 대사 에너지 소모를 약 20% 줄이고, 무거운 물건을 든 상태에서 에너지를 절감하는 것을 목표로 설계된 모드다.

 

체험객은 발이 지면에서 떨어질 때마다 허리 뒤에서 살짝 밀어주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몇 분이 지나면 종아리와 허벅지에 남는 피로가 평소보다 적다는 후기도 남겼다. 이어서 하체 강화 구간에서는 아쿠아 모드로 바꿔 물속에서 걷는 듯한 저항을 일부러 만들어준다.

 

체험객은 “에어 모드에서 아쿠아 모드로 전환하는 순간 허벅지와 엉덩이 근육에 힘이 들어가는 느낌이 나고, 에어·아쿠아를 번갈아 쓰는 것만으로 짧은 시간 안에 다각적인 근육 활용을 느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실외 보행은 센터 앞 횡단보도에서 시작된다. 에어 모드로 맞춰둔 채 보행 신호 시간 안에 일정한 보폭으로 건너가는 연습을 먼저 한다. 해당 횡단보도는 약 50초 동안 보행이 허용된다. 센터 측은 사용자가 이 안에 도보를 건너도록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올림픽공원 안으로 들어가면 평지·오르막·내리막·계단 등 코스가 혼재된 실제 야외 환경이 펼쳐진다. 이곳에서는 로봇의 경사로 보조, 계단 보행 기능 등 복합 환경에서의 성능을 집중적으로 검증하게 된다. 예를 들어, 평지는 계속 에어 모드를 유지하며 리듬을 맞추고, 경사로와 계단 구간에서는 등산 모드의 오르막 오르기 지원 기능을 쓴다.

 

▲ 윔을 착용하고 야외를 걷고 있는 체험객이 위로보틱스 관계자의 안내를 지속적으로 받고 있다. (출처 : 헬로티 최재규 기자) 

 

이때 등산 모드는 대퇴·햄스트링 근부하와 대사 에너지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설계됐다. 계단을 오를 때 숨이 차오르는 지점을 평소보다 조금 뒤로 미룬다. 계단·경사로를 내려올 때도 등산 모드를 활용한다. 내려갈 때 발을 내딛는 다리를 지지해 하강 속도와 충격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무릎에 걸리는 충격 하중을 최대 22%, 평균 13%까지 낮추는 이점을 확인했다고 관계자가 설명했다.

 

체험객은 “장년층에게는 내리막이나 계산을 내려갈 때 무릎에 걸리는 하중이 중요한데, 평소 같으면 순간적으로 무릎에 신호가 오던 구간을 이 기능을 통해 쉽게 넘을 수 있었다”며 “마치 두꺼운 에어쿠션을 한 번 거친 뒤 도착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프로그램 후반부에는 그동안 축적한 피로를 저감하는 케어 모드를 활용한다. 안전장치 역할을 하는 이 장치는 본래 보행 속도가 느리고 보폭이 좁은 시니어를 위한 설정이다. 하지만 이렇게 힘이 빠진 구간에서 발을 떼기 직전까지 다리를 살짝 들어 올려줘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도와준다.

 

▲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체험객이 오르막 등반, 내리막 하강, 계단 등반, 계단 하강을 체험하는 모습.  (촬영·편집 : 헬로티 최재규 기자) 

 

체험객은 “마지막 코스에서 케어 모드로 바꾼 뒤 몸이 앞으로 쏠리지 않고, 여유를 두고 발을 디딜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올림픽공원 산책을 마치고 다시 센터로 돌아오면 마무리운동과 데이터 피드백이 이어진다. 현장 트레이너는 “준비운동 때와는 다른 근육들을 풀어주는 스트레칭으로 호흡을 정리한 뒤, 체험 전후 보행 데이터를 비교해 보폭·속도·균형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확인한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윔 S는 전용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과 연동해 보행 속도, 균형, 근력 등 지표를 기록한다. 윔 업(WIM UP) 프로그램으로 개인 목표에 맞춘 셀프 트레이닝 루틴도 제안한다. 이날 이렇게 50분 동안 몸으로 느낀 변화가 숫자로 정리되면서, 이 애플리케이션이 이 수업의 완성도를 높였다.

 

프로그램을 이수한 한 체험객은 “윔 보행운동센터는 실제 보행에 필요한 윔 S의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고, 보행 개선 효과를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해주는 시설”이라고 체험 후기를 전했다.

 

▲ (출처 : 헬로티 최재규 기자) 

 

한 걸음 더...보행 동반자로서의 미래 비전

 

위로보틱스는 이런 보행 개선 효과를 임상 연구와 논문으로도 검증했다. 수원시 영통구 보건소와 함께 9명의 고령자를 대상으로 4주간 8회 야외 보행 훈련을 진행한 것이다.

 

사측에 따르면, 10m 보행 속도는 14.8%, 6분 보행 거리는 10.6% 늘었다. 균형 지표인 TUG·FSST는 각각 24.5%와 19.6% 개선됐다. 발목 배측굴곡·저측굴곡 근력도 75.4·43.8% 강화되는 등 낙상 위험을 줄이는 데 의미 있는 변화가 관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TUG(Timed Up and Go Test)는 보행·이동성을 시간으로 측정해 낙상 위험과 균형 능력을 평가하는 검사다. FSST는 동적 균형(Dynamic Balance) 능력을 측정하는 검사로, 민첩성과 낙상 예방 능력을 평가한다.

 

다른 한편,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실린 논문에서는 1세대 윔이 상용·연구용 외골격 로봇(Robotic Exoskeleton) 12종과 비교해 가장 가벼운 구조임에도 대사 에너지 절감 효과가 동등하거나 더 뛰어나고, 무게 대비 효율성은 최고 수준이라는 결론을 냈다. 특히 고관절 역 위상 토크 대칭성을 활용한 단일 구동 메커니즘이 주목받았다. 이를 통해 높은 효율의 보행을 구현했고, 이 같은 구조는 윔 S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센터 출범 1주년 데이터, 임상 연구 및 논문 결과, 이날 현장에서 만난 체험객들의 이야기를 한데 보면 윔 보행운동센터의 사용자 구성이 명확하게 파악된다. 특히 60대 이상 고령층이 전체 방문자의 절반을 넘어서는 가운데, 웨어러블 로봇의 주 사용층이 분명해지고 있다.

 

센터 관계자는 “다섯 걸음 걷던 사람이 10걸음을 걷는 변화가 이 센터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로봇이니까 모든 걸 자동으로 해줄 거라는 기대를 가진 사람도 있지만, 이곳에서의 로봇은 한 발짝이라도 스스로 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다음 두세 발짝을 함께 만들어 주는 동반자”라고 부연했다.

 

위로보틱스는 윔, 윔 S, 윔 보행운동센터 말고도 휴머노이드 로봇(Humanoid Robot) 연구 거점인 ‘로봇 이노베이션 허브’를 운영 중이다. 이들은 ‘전 국민의 보행 개선’과 ‘1인 1로봇 시대’라는 비전을 말한다. 100세를 넘어 130세까지 살아야 할지 모르는 시대에, 가장 기초적인 기능인 걷기를 차세대 로봇 기술로 지지하겠다는 선언이다.

 

이날 체험객들에게는 다양한 삶의 장면에서 마주하는 보행 도전 과제들이 제시됐다. ‘내가 나이 들었을 때’, ‘내 부모님이 더 나이가 들었을 때’, ‘화장실까지의 열 걸음’, ‘횡단보도를 건너는 15초’, ‘언젠가 도전해 볼 혹한의 보행 도전’ 등 같은 다양한 거리를 어떻게 건너게 될까. 윔 보행운동센터에서 본 웨어러블 로봇은 그 답을 대신 내리는 장치라기보다, 그 거리를 포기하지 않게 붙들어 주는 장치에 가까웠다.

 

헬로티 최재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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