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뮌헨 오토매티카 참관기] 협동로봇, 문제 푸는 ‘산업 동료’로 진화하다

2025.07.25 16:52:21

김지현 메쎄뮌헨 한국대표부 매니저 eled@hellot.net

 

자동화는 더 이상 제조업의 전유물이 아니다.

 

AI 융합 기반의 협동로봇과 범용 AMR 기술이 서비스·의료·물류 인프라를 넘나들며 산업 전반의 게임체인을 바꾸고 있다. 지난 6월 24일부터 27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에서 열린 유럽 최대 스마트 자동화·로보틱스 전시회 ‘오토매티카(automatica) 2025’ 현장에서 모든 기술과 흐름을 관통한 메시지는 명확했다. “협동로봇은 판단한다. 플랫폼은 자율성을 요구한다." 

 

AI를 품은 로봇은 단순히 사람을 돕는 기술을 넘어 스스로 판단하고 자율적으로 협업하며 인간의 ‘노동’을 재정의하는 국면에 진입했다. 실제로 전시장을 찾은 800여개 참가사와 5만 명의 글로벌 참관객은 제조를 넘어 물류, 병원, 호텔, 제약 생산라인까지 확장되는 자동화의 거대한 흐름을 목격했다.

 

 

 

제조 현장서 빠져나온 로봇, 병원과 호텔에 안착하다

 

전시 현장에서는 ‘서비스 산업으로 진입한 로봇 기술’이 집중 조명을 받았다. 자율이동로봇(AMR)과 협동로봇이 병원 복도와 호텔 로비를 재현한 부스에서 안내·운반·청소 작업을 수행하는 시연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AGV와 AMR 9개사가 참여한 통합 물류 시연존 ‘메시업(Mesh-Up)’은 물류 자동화의 미래상을 예고했다.

 

의료 분야의 움직임도 빨랐다. 수술 로봇, AI 진단 시스템, 의료 데이터 보안 솔루션 등이 등장한 ‘헬스테크 파빌리온’에는 독일 병원 관계자와 제약기업 실무진의 관심이 집중됐다. 전시장을 찾은 뉘른베르크대학병원 관계자는 “고령화와 인력난이 심각한 유럽에서는 자동화는 병원의 선택이 아니라 ‘인프라 전략’이 됐다”고 말했다.

 

 

제조업 ‘OS 전쟁’...ABB·Kassow, 로봇 플랫폼 주도권 확보 총력전

 

이번 전시회에서 협동로봇 기술의 진화는 단순한 팔이나 센서의 문제가 아니었다. 로봇이 주변 데이터를 인식하고, 스스로 다음 작업 위치로 이동하며,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한 판단까지 가능하다는 점이 주목을 받았다.

 

스위스의 산업자동화 기업 ABB는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다기능 로봇'을 내세워 눈길을 끌었다. ‘옴니코어(OmniCore)’라는 AI 기반 로봇 제어 시스템과 가상환경에서 로봇 동작을 시뮬레이션하고 바로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로봇스튜디오 AI 어시스턴트’, 자율 이동 로봇 ‘플렉슬리 무버 P603’을 공개했다. 이들은 공장이나 병원처럼 다양한 환경에서 스스로 판단-이동-협업까지 가능한 하나의 생태계를 지향하고 있다.

 

 

덴마크의 협동로봇 전문 기업 카소 로보틱스(Kassow Robots)도 사람과 함께 일하면서도 높은 무게를 감당하고 섬세한 작업까지 가능한 7축 협동로봇 ‘KR1824/1240’을 선보였다. 이 로봇은 작업물의 미세한 움직임이나 저항을 감지해 자동으로 반응하는 ‘센서티브 암(민감한 로봇 팔)’ 기술이 적용돼 있다. 예를 들어 표면을 연마하거나 사람 손처럼 부드럽게 접촉해야 하는 공정에 적합하다. 이동 로봇과의 결합으로, 로봇이 작업 후 스스로 다음 공정으로 이동하는 시스템도 함께 선보였다. 

 

프랑스·스위스 합작의 산업용 로봇 기업 스토브리(Stäubli)는 GMP 기준의 제약·바이오 생산 환경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자율이동로봇 ‘스테리무브(Sterimove)’를 전면에 내세웠다. 병원이나 클린룸 등 섬세한 청정환경에서 로봇이 직접 약품을 운반하고 조제하는 자동화가 가능해졌다는 점에서 산업 적용 범위가 급속히 확장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두산·한화·HD현대, 한국 대기업 3사도 협동로봇 전략 고도화

 

두산로보틱스는 ‘지능형 로봇 솔루션’을 주제로 음성, 비전, 시뮬레이션 기반의 지능형 로봇 솔루션을 대거 전시했다. 특히 아마존웹서비스(AWS)와 협력한 음성 명령 기반 작업 시스템 ‘보이스 투 리얼(Voice to Real)’, 엔비디아와 협업한 3D 비전과 거대언어모델(LLM)을 활용한 작업 인식 기술은 참관객들의 높은 관심을 끌었다.

 

HD현대로보틱스는 최대 50kg 가반하중과 초당 6m 속도를 구현하는 하이브리드 협동로봇 ‘HDC 시리즈’와 AI 기반 용접·3D 비전 솔루션을 선보이며 정밀 제조 시장을 공략했다. 전시 기간 중 독일 노이라 로보틱스와 휴머노이드 용접 로봇 공동 개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며 조선업 자동화와 유럽 시장 진출 확대 의지도 밝혔다.

 

 

한화로보틱스는 고하중 협동로봇 ‘HCR-32’를 세계 최초로 공개하고, 태양광·배터리 등 중량 공정 대응 솔루션을 앞세워 유럽 에너지 산업을 겨냥한 전략을 펼쳤다. 용접, 도장, 물류 자동화 등 산업별 로봇 라인업과 함께, 전시 현장에서 네덜란드 대표 조선소 ‘로열 IHC’와 용접 자동화 MOU를 체결하며 글로벌 사업 확장의 발판도 마련했다. 세 기업 모두 단순한 로봇 제어 기술을 넘어 AI 기반 지능화와 산업 맞춤형 자동화 솔루션을 중심으로 기술 고도화와 글로벌 확장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줬다.

 

‘부품 강국’ 한국, 플랫폼 전쟁의 새로운 변수로 부상

 

자동화 기술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산업 내 경쟁의 양상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로봇의 속도나 정밀도 같은 하드웨어 사양이 핵심 경쟁력이었다면, 이제는 AI를 기반으로 한 통합 플랫폼을 얼마나 잘 구축하느냐가 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다.

 

 

단순히 로봇을 잘 만드는 것을 넘어 복잡한 상황을 스스로 이해하고 판단하는 ‘추론 기능’, 영상과 음성, 텍스트를 동시에 인식해 작업 흐름을 파악하는 ‘멀티모달 해석 능력’, 상황에 따라 적절한 도구를 선택해 작업을 수행하는 ‘에이전트 구조’까지 갖춰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공감대다.

 

또한 고성능 AI를 안정적으로 구동하면서도 에너지와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경량화된 GPU 운영 체계, 설치부터 유지보수까지 아우르는 생애주기 관리 서비스까지 확보한 기업만이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기술 경쟁 속에서 한국 기업 역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KOTRA와 한국로봇산업협회가 공동 운영한 ‘한국관’에는 감속기, 액추에이터, 토크센서, 그리퍼, 3D 비전센서, 안전 인공지능 솔루션 등 핵심 부품 기업 11곳이 참가해 글로벌 바이어의 이목을 끌었다.

 

 

이들은 단순 부품 전시를 넘어 실제 작동 시연을 중심으로 부스를 꾸몄고, 해외 바이어와의 비즈니스 상담도 활발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유럽계 바이어는 “한국 기업들이 부품 기술력에서 특히 강한 인상을 줬다”고 전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로봇 생태계 내 공급망 내재화를 주도하려면 부품 기술에서 승부해야 한다”며 “한국은 이제 글로벌 로봇 OEM의 핵심 파트너로 진입할 수 있는 분기점에 서 있다”고 분석했다. 하드웨어를 넘은 싸움이 시작된 지금, 부품 기술의 강국인 한국이 글로벌 플랫폼 전쟁의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지금은 연결의 싸움” 2027년, 플랫폼 통합이 성패 가른다

 

2027년 열릴 차기 오토매티카에서는 기술의 외형이나 개별 성능보다 기술 간 연결성과 플랫폼 연동성이 산업 경쟁의 핵심 축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디바이스-플랫폼 연계, AI 클라우드 통합, 랩 자동화와의 연동 등 디지털 공정 전반을 하나로 엮어내는 생태계 구축 능력이 기업 간 격차를 더욱 벌릴 것으로 보인다. 한 글로벌 로봇 솔루션 기업 관계자는 “자동화 기술은 이제 공장 안에서만 머무르지 않는다”며 “생산, 물류, 의료, 서비스의 경계를 넘나드는 연결력이 글로벌 시장에서의 생존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국형 자동화 플랫폼’의 출현 가능성도 주요 관전 포인트로 떠오른다. 지금까지는 감속기, 센서 등 부품 단위 경쟁력에 집중해온 한국 기업들이 앞으로는 플랫폼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생태계의 중심에 설 수 있느냐가 새로운 과제가 될 것이다.

 

특히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LLM·AI 기업들이 독자 생태계 구축에 나서고 있는 시점에서 제조업 기반 로봇 기업들도 이들과 연계 가능한 플랫폼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다음 전시까지 남은 2년. 더 이상 ‘로봇을 잘 만드는가’가 아니라 ‘산업의 문제를 누가 풀어줄 수 있는가’가 게임의 룰을 바꾸게 될 것이다.

 

헬로티 서재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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