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DX] 불통의 CAD 에러에 ‘지능적 가이드’를...다쏘시스템이 그리는 ‘AI 동반자 시대’

2025.12.21 16:50:31

최재규 기자 mandt@hellot.net

 

컴퓨터지원설계(CAD) 화면을 볼 때 가장 당황스러운 순간이 있다. 모델을 열었더니 경고와 에러가 이어지고 원인은 복잡한 용어로만 나열되는 상황이다. ‘하나 이상의 파일이 누락되었습니다’, ‘스케치가 초과 정의되었습니다’, ‘재생성 오류가 있습니다’ 등이다. 이러한 경고문은 원인도 아니고 해결책도 아니다.

 

이어 모델 목록에는 빨간 표시가 늘어나고, 부품들 사이 연결이 풀리면서 위치가 어긋난다. 한 군데를 고치면 다른 곳이 연쇄적으로 깨진다. 도면까지 연결돼 있으면 더욱 번거로워진다. 화면에서 보던 모양이 바뀌거나 치수가 틀어지고, 업데이트 한 번에 표기가 뒤집혀서 원인부터 다시 찾아야 한다.

 

그 순간 설계자는 ‘이걸 어디서부터 손대야 하지’가 아니라 ‘내가 이걸 손댈 자격이 있나’부터 우려된다. 설계가 멈추는 건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문제를 풀 수 있는 형태로 문제가 주어지지 않아서다. 소프트웨어는 증상을 나열하지만, 작업자는 원인·우선순위·방향성을 원한다. 결국 CAD 분야의 숙련자와 초보를 가르는 것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시스템이 던진 신호를 인간의 언어로 번역해 수정 가능한 절차로 바꾸는 능력이다.

 

 

이 장벽을 생성형 AI(Generative AI)가 해결할 수 있느냐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대화 방식으로 작업자에게 다양한 추천과 인사이트를 제시하는 이 방법론은 ‘어떤 방식으로, 어디까지 책임 있게 도와주느냐’가 관건으로 떠오른다.

 

프랑스 소재 시뮬레이션 및 3차원(3D) 설계 솔루션 업체 다쏘시스템은 자사 CAD 브랜드 ‘솔리드웍스(SOLIDWORKS)’에 이 같은 실험을 진행 중이다. 마니쉬 쿠마(Manish KUMAR) 다쏘시스템 솔리드웍스 최고경영책임자(CEO) 겸 연구개발(R&D) 부문 부사장은 AI가 CAD 분야에 제시하는 혁신점을 명확하게 짚었다.

 

AI는 설계자를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설계자의 언어로 문제를 재구성해 다음 행동을 만들어주는 버추얼 컴패니언(Virtual Companion), 즉 가상의 동반자라는 관점.

 

에러 리스트를 ‘액션 리스트’로 전환하는 다쏘시스템 AI 비전의 출발점

 

 

마니쉬 쿠마 CEO의 설명에서 제일 현실적인 부분은 화려한 생성 이미지가 아니다. 오류와 경고를 다루는 방식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부분의 CAD 오류는 결과만 알려준다. 무엇이 깨졌는지는 보이는데, 왜 깨졌는지와 어떤 순서로 손대야 하는지, 손대면 어떤 부작용이 생기는지는 작업자가 알아서 찾아야 한다. 그래서 에러를 고친다는 것은 사실상 설계 의도 전체를 다시 복기하는 작업이 된다.

 

이때 다쏘시스템이 지향하는 것은 에러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바꾸겠다는 것이 아니다. 오류를 해결 가능한 해법으로 세분화해 ‘단계적 실행’을 지원하는 것이다. 사용자는 원인을 추정하고 떠올리는 대신, 먼저 무엇을 확인하고 무엇을 고치면 되는지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는다. 쿠마 CEO는 “이러한 변화는 사소해 보이지만 CAD 초보자에게는 진입 장벽을 무너뜨리고, 숙련자에게는 오류를 찾아내고 수정하는 데 걸리는 디버깅(Debugging) 시간을 줄여준다”고 강조했다.

 

결국 전문가만 고치던 문제를 비전문가도 고칠 수 있게 만든다는 메시지다. CAD의 기존 불친절은 대개 기능 부족이 아니라 설명 방식 부족에서 오는데, 다쏘시스템의 AI 기술은 그 설명 방식을 행동 중심으로 유도하는 방향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다쏘시스템 거대언어모델(LLM) 기반 생성형 AI 기능 ‘아우라(Aura)’는 작업자가 마주한 문제를 작업 단위로 다시 정리해 주는 설계 지원 기능으로 정의된다. 쿠마 CEO는 아우라가 사용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필요한 정보를 끌어오는 데 초점을 맞춰 메커니즘이 구성됐다고 설명한다.

 

이 접근이 작동하려면 CAD 형상 데이터만으로는 부족하다. 설계 의도와 변경 이력, 부품 속성, 요구사항 문서처럼 흩어진 정보를 정리해 AI가 이해할 수 있는 맥락으로 묶어야 한다. 결국 AI 도입은 기능 추가보다 데이터 정리와 규칙 정비가 먼저라는 의미다.

 

솔리드웍스 안에서 어떤 순서로 무엇을 조치해야 하는지를 제안하는 방식으로 설계 흐름을 매끈하게 만든다는 설명이다. 다만 아우라가 제안하는 순서와 조치는 ‘정답’이 아니라 ‘가이드’라는 점도 명확히 했다. 최종 판단과 승인, 그리고 결과에 대한 책임은 여전히 엔지니어의 몫으로 남는다는 의미다.

 

 

CAD는 다른 업무 소프트웨어처럼 ‘그럴듯한 답’이 용납되면 안 된다. 쿠마 CEO가 책임을 강조한 이유가 여기 있다. 최종 결정의 책임은 엔지니어에게 있고, 그렇기에 AI는 결정권자가 아니라 보조자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아우라의 개입이 ‘대체’로 오해되지 않고 ‘검증 가능한 도움’으로 자리 잡기 때문이다. 쿠마 CEO는 아우라를 ‘정답 생성’이 아니라 ‘수정 경로 단축’에 가까운 도구로 설명했다. 이렇게 오류를 실행과 행동으로 바꾸는 기능은 바로 그 철학을 드러내는 첫 단추라는 의미다.

 

‘클릭’의 시대에서 ‘의도’의 시대로...대화형 CAD가 작업 습관을 바꾼다

 

다쏘시스템이 아우라를 ‘가상의 동반자’로 설계한 이유는 사용자 화면(UI)의 방향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명령어를 잘 아는 작업자가 아니라, 작업 의도를 정확하게 설명할 줄 아는 작업자가 주도권을 쥐는 쪽으로 CAD 사용 습관을 이동시키겠다는 메시지다. 예컨대 조립(Assembly) 과정에서 부품 수나 재질을 묻고 답을 얻는 흐름은 설계 객체를 ‘대화 가능한 대상’으로 바꾸는 선언이다.

 

쿠마 CEO는 한발 더 나아가 실제 변경 작업까지 연결되는 지점을 강조했다. 특정 부품의 재질을 변경했을 때 하위 구성요소와 연계 조건에 미치는 영향까지 자연어처리(Natural Language Processing, NLP) 기반으로 처리되는 구조는 불필요한 명령어 탐색 시간을 줄여준다.

 

CAD에서 생산성이 저하되는 결정적 순간은 설계 자체보다 기능을 찾고 적용하고 되돌리는 반복 작업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아우라는 이러한 반복을 사용자의 의도 기반으로 재구성하는 데 목적을 둔다. CEO는 이 대화형 흐름이 실질적인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자연어가 곧바로 CAD의 행동으로 변환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쿠마 CEO가 강조하는 구현 관점도 바로 이 지점이다. LLM은 사용자 질의에서 의도(Intent)를 먼저 추출한다. 이어 CAD 내 실행에 필요한 실행 순서(Event Sequence)를 구성하고, 이를 솔리드웍스 등 애플리케이션에 전달해 즉각 실행한다.

 

 

이러한 구조는 ‘입력은 했는데 CAD가 왜 이렇게 작동했는지 모르겠다’는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데도 기여한다. 입력과 출력 사이에 명확한 행동 시퀀스가 기록되기 때문이다. 쿠마 CEO는 이에 대해 책임과 검증이 필수적인 설계를 위한 체계라고 말했다.

 

이때 모델의 ‘똑똑함’ 자체가 아니라, 데이터가 안전하게 다뤄지고 결과가 추적 가능하게 남는 구조가 중심이다. 설계 데이터가 어디에 저장되고 누구의 데이터가 어디까지 쓰이는지 경계가 명확해야 한다. 그래야 추천이 아니라 업무로 자리 잡는다.

 

이 같은 대화형 CAD의 논리는 도면과 문서 영역으로도 확장된다. 도면 자동 생성의 목표는 결국 사용자 현장에서 즉시 쓰일 수 있는 규격으로 정리해주는 것이다. 사용자는 미리보기를 통해 결과를 확인하고, 용지 크기·레이아웃·표기 규칙 등을 자신의 형식에 맞춰 완성본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도면 작성을 설계 흐름 속의 자연스러운 출력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다. 특히 규제 PDF를 읽고 이를 요건 스펙으로 변환하는 흐름은 설계자에게 전가되던 문서 업무 부담을 근본적으로 해소한다. 결국 아우라가 지향하는 대화형 경험은 단순한 편의성 제고가 아니라, 설계 데이터와 문서 데이터 사이의 병목을 풀어 설계 프로세스를 전진시키는 핵심 장치다.

 

설계 품질은 모델 안에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변경 요청과 코멘트, 승인 지연 같은 협업 과정에서 리스크가 커진다. AI가 프로젝트 흐름을 읽고 지연 가능성이 큰 작업을 드러내며, 리스크를 앞당겨 정리하는 방향도 같은 맥락에서 연결된다.

 

로봇 개발의 '레프트 시프트', 그리고 아우라가 겨냥하는 진짜 비용 절감법은?

 

로봇 개발은 작은 설계 오류가 시스템 전체의 일정과 비용에 변수를 안기는 산업이다. 기구부 설계 변경은 배선, 제어 설정, 제작성, 안전 요구사항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쉽다. 그래서 설계 단계에서 더 빠르게 검증하고 정확하게 수정하는 구조가 곧 경쟁력이 된다.

 

로봇 관점에서 쿠마의 메시지는 ‘레프트 시프트(Left Shift)’다. 제품 개발 과정을 기획부터 생산까지의 시계열로 볼 때, 사후 조치에 드는 시간·비용을 줄이기 위해 모든 검증·수정을 설계 초기 단계로 끌어오는 전략이다. 초기 콘셉트 단계에서 오류를 잡으면 자원 소모가 많지 않지만, 제조단 이후로 넘어가면 수정 비용이 폭발한다는 설명은 로봇 업계에서는 상식에 가깝기 때문이다.

 

마니쉬 쿠마 CEO는 “로봇 개발에서 가장 비싼 실수는 실수 자체가 아니라, 그 실수가 너무 늦게 발견되는 순간 발생한다”며 “우리의 목표는 실수를 완벽히 없애는 것이 아니라, 실수가 설계단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도록 시스템적으로 앞단에서 걸러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 솔리드웍스 기반 로봇 설계 검증을 위해 다양한 테스트를 전개하고 있다. 카드·동전 정밀 조작(Manupulation) 검증 과정(좌)과 시스템 감각 작용을 검증하기 위한 '센싱(Sensing)' 과정(우). (출처 : 다쏘시스템, 촬영·편집 : 헬로티 최재규 기자) 

 

실제로 로봇은 현장 튜닝(Tuning)이 잦아 설계 변경이 사실상 숙명이다. 하지만 이 같은 잦은 변경은 곧 오류와 재작업 가능성을 키운다. 수많은 오류 메시지와 문서 작업이 개발 속도를 잡아먹기 시작하면, ‘레프트 시프트’는 생존 전략이 된다.

 

아우라는 그 구조를 CAD 안에서 만들겠다는 시도다. 쿠마 CEO는 AI의 목표를 ‘화려한 결과’가 아니라 ‘즉시 실행 가능한 다음 행동’으로 두는 관점을 분명히 했다. 동시에 데이터 경계와 설명 가능성이 먼저 확보돼야 한다는 시각도 함께 전달했다.

 

여기서 골자는 CAD가 던지는 복잡한 문제를 작업자가 바로 풀 수 있는 형태로 바꾸는 데 있다고 본 것이다. 이는 오류를 읽기 쉬운 설명으로 바꾸는 수준이 아니라,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조치로 쪼개 실행 순서를 제안하는 방식이다.

 

로봇 개발·제작 시뮬레이션과 검증 과정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규정 문서를 설계가 다룰 수 있는 형태로 정리해 재작업을 줄이는 방향도 같은 맥락이다. 핵심은 문제가 커지기 전에 수정이 시작되게 만드는 데 있다.

 

 

이 과정에서 기술만큼 중요해지는 것이 보안과 책임이다. 로봇 제조사에 CAD 데이터는 곧 핵심 지적재산권(IP)이다. 이것이 공급망과 협력사와 얽히는 순간 데이터의 경계가 곧 비즈니스의 경계가 된다. 그래서 쿠마 CEO는 AI의 정의를 내세울 때도 책임과 경계를 함께 꺼내 든다.

 

사용자 데이터를 철저히 분리하고 학습 데이터를 공유하지 않는다는 원칙, 그리고 결과값에 대한 설명 가능성은 이제 기능 경쟁을 넘어선 신뢰 경쟁의 필수 조건이 됐다. 아우라가 진정한 동반자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지능보다 ‘안전한 경계’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사용자가 ‘말은 했는데 왜 이렇게 움직였는지 모르는’ 불투명한 AI가 아니라, 모든 과정이 검증 가능한 책임 있는 설계를 지향한다”고 밝혔다. 이 변화가 실현되면 로봇 개발의 다양한 변수 구간은 프로젝트 후반이 아닌 전반에서 미리 정리될 수 있다.

 

이제 CAD의 다음 전장은 누가 더 빨리 그리느냐가 아니라, 설계 과정의 막힘을 누가 더 매끄럽게 처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헬로티 최재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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