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엘리베이터 앞에서 배송 로봇이 멈춘다. 이 과정에서 하드웨어는 멀쩡하다. 멈춘 이유는 기계가 아니라 도시의 문법 때문이다. 승강기 연동 규격, 안전·인증, 전력·통신 등 사람에겐 당연한 규칙이 로봇에게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다.
반대로 어떤 로봇은 이미 우리 집에서 청소기처럼 가전의 중심 지위를 얻었다. 기술의 성패는 더 이상 성능만이 아니다. 사용자 경험(UX), 표준·인증 등 제도, 교육·경험 디자인 등이 로봇이 사회에 들어가는 관문으로 떠오른다. ‘보여주는 로봇’에서 ‘쓰이는 로봇’으로 로보틱스 기술이 확장돼야 하는 이유다.
지난달 30일 서울 삼성동 전시장 코엑스에서 열린 ‘2025 서울AI로봇쇼’는 시민이 로봇을 쉽고 즐겁게 체험하고, 기업·연구자가 성과·투자·인재를 공유하는 산업 플랫폼을 결합한 자리로 주목받았다. 서울특별시는 이 무대를 통해 “사람과 로봇이 공존하는 도시”를 선포했다.
부대행사로 진행된 로봇 전문가 포럼 개막 환영사에 참석한 주용태 서울시 경제정책실장은 “서울을 세계적 로봇 친화 도시로 키우겠다”며 산업계·학계·공공기관의 협력을 통한 사람 중심 로봇 도시 비전을 강조했다.
“서울, 로봇 도시의 브랜드를 설계해야”

엔젤로보틱스 최고기술책임자 및 이사회 의장을 겸하고 있는 공경철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계공학과 교수는 서울의 산업 전략을 겨냥한 화두를 던졌다. 그는 서울은 앞으로 로봇 도시로 불릴 수 있는가, 그렇다면 무엇을 브랜드로 내세울 것인지를 제시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주목할 국내 지정학적·산업적 이중 압력을 언급했다. 미국뿐 아니라 중국까지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지금, 단순히 로봇 완제품만 논의할 게 아니라는 뜻이다. 구동기(Actuator)·감속기(Reducer)모터(Motor) 등 부품·소재 생태계를 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여기에 희토류 등 핵심 자원 확보를 통한 글로벌 경쟁력 확보 방안도 강조했다.
공 교수는 “휴머노이드 상용화가 시작되면 로봇 핵심 부품의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며 “이 흐름을 놓치면 한국은 로봇 완제품은 있어도 원천 기술과 공급망은 외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서울의 고유 자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며 한국의 로보틱스 경쟁 우위 전략을 내세웠다. 그가 역설한 대표적 예시 분야는 의료 분야다. 서울의 병원과 재활 시스템은 이미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고, 로봇 재활·임상 실험의 최적지라는 것이다.
또 다른 자산은 문화·관광 인프라다. 교수는 'K-문화(K-Culture)'와 로보틱스 기술이 결합하면 세계에 유례 없는 새로운 브랜드가 탄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그는 현재의 스타트업 지원 정책을 언급하며 “스타트업은 지원 대상이 아니라 생태계의 결과다. 단기적 지원금·보조금보다, 장기적으로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짜는 게 핵심”이라며 지금 필요한 건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도시 차원의 지속적 설계라는 뜻을 설파했다.
앞선 여러 전략을 통해, 서울은 로봇의 판타지를 그리는 무대가 아닌, 실용적이고 지속 가능한 로봇 생태계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로봇은 단일 제품이 아니라 공간의 해답”

최리군 현대자동차그룹 로보틱스랩 상무는 발표 주제를 ‘공간 비즈니스’라고 규정했다. 그의 발표는 로봇이 해결할 공간별 문제를 어떻게 설정했는가에 초점을 맞췄다. 이 과정에서 자사 로보틱스 솔루션을 빗대 참관객의 이해를 도왔다. 그는 이와 연결해 병원, 오피스, 제조 현장, 공공 인프라를 사례로 들었다.
의료 분야에서는 간호사의 근골격계 부담을 줄이는 착용형(Wearable) 로봇 ‘엑스블 숄더(XBLE Shoulder)’가 소개됐다. 이 로봇은 반복적인 팔 동작이나 장시간 환자 보조 과정에서 근육과 관절에 가해지는 하중을 덜어 준다. 현장에서 쓰이면 현장 의료 인력의 만성 근골격계 질환을 예방하고, 인적 소모를 줄여 환자 간호의 질을 높이는 효과가 기대된다.
제조 현장에서는 경사면에서도 수평을 유지하며 자재를 운반하는 모빌리티 플랫폼 모베드(MobED)가 등장했다. 기존 운반 로봇이 경사나 요철에서 흔들리는 문제를 해결해, 공장 내부 물류 효율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여기에 생산 라인의 연속성을 지켜 불량률을 낮추고, 인력을 단순 반복 작업에서 해방시키는 효과도 있다.
오피스나 공공 공간에서는 고객 응대 서비스 로봇 ‘달이(DAL-e)’가 눈길을 끌었다. 최 상무는 안내·홍보· 대화 등을 수행할 수 있어 전시장이나 홍보관에서 고객 경험을 풍부하게 만든다고 언급했다. 이 로봇은 정보 제공이라는 본연의 가치를 넘어,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고, 고객이 기업과 소통하는 새로운 접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가치를 발휘할 전망이다.
전기차 충전소에서는 자동 충전 로봇 ‘ACR(Automatic Charging Robot)’이 공개됐다. 이는 충전구 위치를 인식하고 로봇 팔(Robot Arm)을 자동으로 연결해주는 방식이다. 무거운 충전기를 직접 들 필요가 없고, 다양한 날씨나 야간 시간대에도 편리하게 충전을 마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으로 소개됐다. 그는 “전기차 보급 확산에 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교통 약자와 고령층의 접근성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최리군 상무는 다각적 시장 진입 전략을 기반으로 한 자사 로봇 기반 도시 혁신점을 짚었다. 그는 “처음에는 병원 같은 현장에 무상으로 로봇을 투입해 데이터를 모으고, 품질을 끌어올린 뒤 상용화하는 전략을 채택할 것”이라고 밝혔다. 판매보다는 데이터 기반 운영에 방점을 찍는 모양새다.
특히 현대자동차와 서울시가 함께 구상하는 ‘사람 중심 로봇친화 도시’ 청사진을 앞세웠다. ▲로봇 구매 및 운용 관련 보조금 제도 ▲테스트베드, 통신·에너지 인프라 활성화 ▲서비스 허가 관련 규제 간소화 ▲로봇·인프라 연동 표준화 및 인증체계 마련 등 정책 패키지가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마지막으로 그는 “좋은 로봇을 만들어도 가격 경쟁력이 없으면 결국 활용도가 떨어진다”며 “결국은 관건은 ‘감당 가능한 가격대(Affordability), 즉 '사용자가 실질적으로 로봇 인프라에 투자할 수 있는 가격'이 관건”이라고 전했다. 이 메시지는 국내 로봇 시장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업계에서 다양한 접근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시사점으로 풀이된다.
“도시에 맞는 로봇 기체·형태가 신뢰 만든다”

데니스 홍(Dennis Hong)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기계항공공학과 교수는 ‘도시 친화 로봇’에 대한 강연을 이어갔다.
그가 보여준 첫 사례는 미국 구글(Google)의 모회사 알파벳(Alphabet)이 운영하는 자율주행 기술 '웨이모(Waymo)'의 자율주행 택시다. 홍 교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부르면 차가 오고, 운전석에는 아무도 없는데 이용자는 불편해하지 않는다”며 “이는 익숙한 자동차라는 외형 때문”이라며 핵심은 화려한 기술이 아니라 익숙한 외관과 친숙한 UX라는 뜻을 밝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기술의 적극적 수용성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연구실에서 개발한 다양한 로봇 폼팩터를 공개했다. ▲계단 버튼을 누르기 위해 팔을 변형하는 로봇 ▲뱀처럼 기어가거나 바퀴로 달리는 멀티 모드 로봇 ▲관로 내부를 기어 다니는 검사 로봇 ▲풍선 몸통으로 안전성을 높인 이족 보행 로봇까지. 그에 따르면, 이들은 도시 문제 해결을 위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그는 “형태는 기능이 결정한다(Form follows function)”이라는 메시지를 강조하며, 도시에 필요한 기능을 먼저 정의한 후 그 기능을 구현하는 형태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이것이 진짜 도시 친화 로봇이라는 설명이다.
아울러 최근 속속 등장하는 다양한 로봇 모델 데모에 대한 의견도 전했다. 홍 교수는 “멋진 동작에 매몰되면 실제 쓰임새를 놓치게 된다. 도시에서 로봇이 자리 잡으려면 안전·가격·신뢰 세 가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못 박았다.
“물리적 지능(Physical Intelligence), 행동에도 언어가 필수”

마지막 연사는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 기계공학과 교수이자, 미국 IT 업체 ‘메타(Meta)’에 합류한 김상배 교수다. 그는 “왜 지금 휴머노이드인가”라는 질문으로 발표를 시작했다. 답은 분명했다. 초고령 사회가 다가오면서 단순한 디지털 지능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현실 세계를 움직일 물리 지능(Physical Intelligence)이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센서로 환경을 인식하고, 로봇 구동기·감속기를 제어해 몸을 움직이며, 상황에 맞는 행동을 설계하는 능력을 구현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는 현재 단순히 알고리즘을 잘 짜는 것을 능가하는 방법론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기계가 실제 공간에서 균형을 유지하고, 물체를 집어 들고, 사람과 안전하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 역량이 이에 해당한다.
그가 MIT에서 개발한 전기모터 구동 사족 보행 로봇 ‘치타(Cheetah)’를 예시로 들었다. 이는 기존 유압 구동 방식의 상식을 뒤집는 형태로 설계됐다. 김상배 교수는 로봇에 탑재된 '자각적 구동기(Proprioceptive Actuator)'는 로봇 설계의 패러다임을 바꿔놨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초고속으로 탁구를 치는 핑퐁 로봇의 시연 영상도 현장에서 공개했다. 드라이브, 스핀, 커트 등 실제 탁구 기술을 구사하는 모습은 데이터 기반 학습보다 ‘모델 기반 제어(MPC)’가 얼마나 정밀한지를 증명하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그는 “고속·정밀 영역에서는 여전히 물리 모델이 유리하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의 메시지는 단순히 과거 기술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행동에도 언어가 필요하다”는 새로운 화두를 제안했다. 그러면서 “오늘 현장에서 공개한 데모를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데, 이는 로봇의 동작을 표현할 언어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와 연결해, 동작 언어(Action Language) 및 행동 언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 근거로, “데이터 학습만으로는 원인 설명과 고장 진단에 한계가 있지만, 언어 모듈을 얹은 물리 지능은 강건성(Robustness)과 해석 가능성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상배 교수는 “복잡함을 덜어내고 단순한 구조 속에서 정밀성을 끌어내는 것이 차세대 로봇 아키텍처의 진정한 혁신”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헬로티 최재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