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 기업 디지털 기술 활용도 낮다…첫 걸음은 도입 의지와 데이터 확보
단기적 효과보단 장기적 투자 필요…플랫폼 기반 응용솔루션도 개발해야
디지털 전환은 특정 국가나 기업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우리나라 역시 디지털 전환을 산업 혁신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규제 혁신, 디지털 인재 양성, 디지털 기술 개발, 디지털 플랫폼 추진 등 정부 주도의 청사진을 그려가고 있다. 그러나 기업의 디지털 전환 준비와 대응 역량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작은 부분에서부터 디지털 전환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3월 8일부터 10일까지 열리는 ‘스마트공장·자동화산업전 2023(AW 2023)’에서도 지속가능한 스마트 제조 혁신 구현과 산업 디지털 전환 해법을 제시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전시회를 공동 주최하고 있는 (주)첨단은 그에 앞서 지난 2월 8일 국내 산업자동화 전문가를 초청한 특별 좌담회를 개최했다. 이들 전문가가 진단한 우리나라 산업 디지털 전환 해법은 무엇일까?
인공지능은 성장 모멘텀
■ 김진희 콘텐츠사업국장 (이하 김진희) : 안녕하십니까? 바쁘신 중에도 대한민국 제조업 미래를 위해 이번 좌담회에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최근 산업의 가장 큰 화두는 ‘디지털 전환’이라고 보여지며, 이러한 큰 변화의 물결에 표류하지 않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풀어야할 과제도 있을 줄 압니다. 오늘 모신 전문가 분들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하나하나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공통 질문으로 인공지능을 활용한 산업 디지털 전환이 가져올 파급 효과는 어느 정도라고 보시는지, 한 분씩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김태환 한국산업지능화협회 상근부회장 (이하 김태환) :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4차 산업혁명은 초연결, 초지능, 초융합 등 기술 혁신을 통해서 사회 전반을 지능화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필요한 핵심 기술은 IoT,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이 될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2016년에 알파고를 경험했고, 최근에는 쳇GPT(ChatGPT)라는 대화형 인공지능이 끼칠 우리 사회의 변화에 대한 예고편을 보고 있어요.
그리고 많은 컨설팅 기업들은 세계를 성장시킬 새로운 모멘텀으로 인공지능을 꼽고 있죠. 제조업을 예로 들면, 제조의 생산 요소에는 자본, 노동, 토지 등이 있을 텐데, 제4의 요소로서 인공지능을 들고 있습니다. 생산 현장에서 인공지능은 기존의 단순 반복적인 작업을 대체할 것이며 AI 자체학습을 통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혁신을 이룰 것입니다. 그 다음에 노동과 자본 같은 기존 생산 요소를 효율적으로 재배치할 것이고, 그로 인해 신규 일자리도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측됩니다.
또 하나는 디지털 기술은 확장성이 좋아요. 어떤 한 분야에서 혁신이 일어나면 다른 분야로의 파급 효과가 크다는 거죠. 예를 들면, 자율주행 관련 기술은 자동차뿐만 아니라 항공기, 선박에도 실제 적용되고 있으며 다른 산업에도 영역을 넓히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공지능의 영향력은 앞으로 예측할 수 없을 만큼 커질 전망이지만, 그렇다고 지금 당장 지능화된 사회를 만들지는 못해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변화를 일으키면서 또 한편으로는 투자도 많이 해야 될 거라고 봅니다.
□ 박한구 스마트제조혁신추진단 前 단장 (이하 박한구) : 그동안 3차 산업혁명의 한 세기를 돌아보면, 많은 기업들은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생산 현장을 자동화하고 사무실을 자동화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내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작업자들의 반발이 거셌지만, 단순 반복적인 작업, 더럽고 위험하고 어려운 3D 작업을 로봇이나 자동화 기계, ERO·MES와 같은 소프트웨어가 대신하고 사람은 사무실에서 다른 업무에 집중하도록 해줌으로써 단순근로자를 지식근로자로 전환시키는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게 되었죠.
인공지능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개념이 아니라 사람의 능력을 증강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거죠. 즉, 인공지능이 생산 현장의 모든 데이터를 모니터링해서 이상 상태를 분석, 예측, 판단하고 사람은 인공지능이 판단한 결과를 가지고 최종적인 의사결정을 해서 신속하게 조치를 취하는 등 협업을 하게 됩니다.
□ 권봉현 LS일렉트릭 자동화CIC 최고운영책임자 (이하 권봉현) : 앞서 두 분께서는 인공지능을 대하는 전반적인 사회 현상에 대해서 다뤄주셨는데, 저는 한 걸음 더 나가 디지털 전환이 얼마나 준비돼 있고 앞으로 어떻게 준비해 나가느냐에 따라 기업의 연속성 보장도 결정된다는 점을 명확히 해 두고 싶어요. 기본적으로 디지털 전환이 되거나 준비하고 있는 기업만이 경쟁력에서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앞으로는 두 종류의 기업으로 바뀔 것 같아요. 하나는 플랫폼을 주도하는 기업이고, 다른 하나는 데이터나 인공지능을 활용하면서 회사를 더욱 투명하고 예측가능하게 만드는 기업이 있을 겁니다. 초기에는 기업들이 효율성 향상을 위해 힘썼지만 지금은 플랫폼과 자사만의 기술이 있어야 살아남을 것이고, 이것은 아마 모든 산업에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디지털 기술 활용도 낮다…시작은 사고 전환부터
■ 김진희 : 글로벌 선도 기업들은 인공지능 기반 디지털 전환을 통해 한 차원 높은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국내의 경우, 데이터, 인공지능 등 디지털 기술 활용도는 어느 정도 수준이라고 보시며 이대로라면 문제는 없는지요?
□ 박한구 : 지금 우리나라 제조업의 인공지능 기술 활용은 아직 시작 단계입니다. 그 요인을 4가지로 말씀드리고 싶어요.
첫째, 최근 인공지능 기술을 보면, 제조 현장에서 측정되는 모든 미가공 데이터(Raw Data)를 빠짐없이 제어 주기로 수집하여 저장해야 하는데, 비용 측면을 고려하여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데이터만을 수집하고 있지요. 그러다 보니 아무리 좋은 인공지능 솔루션을 도입한다 해도 100% 만족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2% 부족한 상태로 남게 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든 데이터를 수집하고 통합해 분석을 해야 합니다. 빅데이터가 중요하다는 얘기죠.
둘째, 기업 내 OT, IT 전문가 모두 자신이 DT 전문가라고 말합니다. OT 전문가가 IT 분야 일을 겸하고 있고 DT 전문가가 OT 분야 일을 겸하고 있는 거죠. 엄밀히 말하면, OT·IT·DT 분야의 전문가가 세분화되어 일을 처리해야 하는데, 분야의 구분을 두지 않고 일을 하다 보니 전문성과 효율성이 떨어지는 겁니다.
셋째, 인공지능 솔루션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의 사고 전환이 필요합니다. 대부분 스타트업 기업들은 대학에서 배운 인공지능 기술이 전부인 줄 알고 사업을 합니다. 그런데 사업을 하다 보면 돈은 없고 인력은 한정돼 있기 때문에 정부 지원 사업에 의존합니다. 하지만 정부 지원 사업은 대체로 단기성입니다. 단기적 지원을 받고 기술개발이 이루어지다 보니 개발한 기술도 단기적 성과로 끝나게 되죠. 따라서 스타트업 기업들은 OT 기술을 가지고 있는 기업과 협업을 해서 사업 계획을 수립하고 테스트베드가 돼 있는 공장과 공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넷째, 경영자들의 인공지능 투자 마인드가 바뀌어야 합니다. 하드웨어 투자는 설계, 제작, 가동하면 기업이 문제없이 수리하여 사용하지만, 인공지능 솔루션은 현장 데이터, 공정 특성 분석부터 설계, 알고리즘 선정, 소프트웨어 개발까지 OT 전문가가 참여해야 하고, 가동 후에는 2~3년 동안 OT 전문가와 DT 전문가가 함께 인공지능 두뇌를 처음 50%에서 단계적으로 100%까지 끌어올리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일회성 투자가 아니라 OT 전문가가 데이터 과학자가 될 때까지 매년 투자를 해야 한다는 거죠.
■ 김진희 : 디지털 기술 활용도를 협회에서도 조사했을 텐데요. 김태환 부회장님은 협회 입장에서 어떻게 보셨는지요?
□ 김태환 : 이대로라면 문제가 많다고 봅니다. 설문조사 통계를 보더라도 제조 부문에서 데이터 활용률은 8.4%로 금융(43.6%), 통신(34.7%)보다 현격히 낮고, 인공지능 활용도 역시 1.6%로 더 낮아요. 제조 산업에서 디지털 기술 활용률이 낮은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제조는 B2C 영역보다 훨씬 다양하고 복잡하기 때문이죠.
또 하나는 우리나라 기업 규모나 업종, 투자 분야별 살펴보면, 불균형이 심화돼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산업 디지털 전환은 대기업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LS일렉트릭의 경우만 보더라도 등대공장으로 등재될 정도로 IoT나 AI를 충분히 활용하고 있습니다. 투자 분야에 있어서도 여러 디지털 기술 중 클라우드가 47%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인공지능은 1.6%로 투자가 미미한 수준이죠.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안 될 것 같아요.
■ 김진희 : 앞서 LS일렉트릭 사례를 잠깐 언급해 주셨는데, 권봉현 최고운영책임자님, 실제로 인공지능 솔루션을 적용한 디지털 전환 혁신 사례들이 많이 있죠?
□ 권봉현 : LS일렉트릭도 업체별, 업종별 약간의 편차는 있지만, 인공지능 기술을 많이 활용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죠. 처음 시작할 때는 품질, 예지보전, 에너지 등 특정 아이템에 대해서 데이터를 수집하고 AI 분석을 해서 솔루션을 찾아내거나 품질 수준, 생산성,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활동을 했습니다. 지금은 그 단계는 지났다고 보고 이제는 확산 단계에 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또한 데이터가 많이 모이게 되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집니다. LS일렉트릭 경우도 모든 유형의 데이터를 모아서 데이터 레이크(Data Lake)를 만들어 놓은 상태입니다. 데이터 레이크가 운영되면 데이터를 한 장소에 모았기 때문에 이에 접근하기도 편리하고 작업자가 대시보드를 통해 현상을 보면서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결국 데이터 분석 전문가는 아니지만 데이터를 분석하고 새로운 인사이트를 발견하며 예측 모델을 만들어 비즈니스 결과를 개선하려는 시티즌 데이터 사이언티스트(Citizen Data Scientist)가 나오게 되는 거죠. LS일렉트릭도 그 수준에 가까워지고 있으며, 그 다음 단계도 준비해 나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연합학습을 통한 디지털 생태계 구축 필요
■ 김진희 : 문제는 산업 전반에 AI를 내재화하는 것인데, 현실은 녹록치 않는 것 같습니다. 디지털 전환의 주체인 도입기업의 역량과 인식 부족도 그렇고, 디지털 전환 조력자인 공급기업이 성장하기 어려운 비즈니스 환경도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 박한구 : 사실, 중소기업이 새로운 기술을 접목해서 가치를 창출하기는 쉽지 않아요. 그 이유는 공급기업이 준비가 안 됐기 때문이며, 도입기업도 역량이 부족하여 기술을 넣어본들 큰 영향이 없다는 겁니다. 따라서 기술을 리딩하는 것은 대기업이며, 대기업이 공급기업들과 협업해서 공급기업을 육성해야 합니다.
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관계를 오케스트라 연주에 비유하고 싶은데요, 지휘자는 대기업의 엔지니어들이고 각각의 악기 연주가가 중소기업의 엔지니어라고 생각합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에 의해서 모든 악기가 제대로 울리고 화음이 나듯이, 대기업이 지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중소기업의 역량이 결정되기 때문에 대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 김태환 : 우리나라 산업 디지털 전환 수준은 낮다고 보고요. 특히 인공지능 분야는 매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달성하기도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대기업도 어려운데, 중견·중소기업은 기본적으로 인력이 없어서 기술 역량이 안 됩니다. 경영자들의 발전적이지 못한 인식 문제도 한 몫을 했다고 보고요. 더군다나 축적된 데이터도 없기 때문에 디지털을 가시화 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공급기업의 입장에서 우리나라 디지털 생태계는 좋지 않은 환경인 것 같습니다. 공급기업은 틈새시장에서 사업을 해야 하는 데, 현실은 여러 가지 문제가 혼재돼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공급기업은 특정 분야를 전문화하고 특화해야 할 것이며, 공공기관과 대기업은 열악한 환경에 있는 중견·중소기업이나 공급기업을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연합학습(Federated Learning)을 통해서 중소기업도 데이터와 보안에 문제없이 인공지능을 적용해보고 효과를 체감할 수 있는 방법론을 도입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권봉현 : 수요기업은 디지털 전환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출발점인데요, 디지털 전환을 왜 해야 하는지 명확히 하지 않으면 방향성을 잃게 됩니다. 그리고 방향성이 있어야만 관련 기업들과도 협업이 가능해집니다. 디지털 전환의 의지만 있다면 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고 생각합니다.
LS일렉트릭의 경우 중소기업 상생협력을 위해 테크 스퀘어(TECH SQUARE)라는 산업 디지털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플랫폼은 60여 명의 전문가 풀로 운영되고 있어, 수요기업이 멘토링을 받고 싶다고 하면 업종의 특성과 요구사항에 맞는 전문가를 파견하여 현장 밀착해서 지원합니다. 수요기업에 단계별 로드맵을 만들어주고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일을 정리해주며 검증된 공급기업 풀을 통해 지속가능한 유지보수를 제공합니다. 때문에 수요기업 입장에서는 내부적으로 디지털 전환팀이 없더라도 테크 스퀘어의 도움을 받아서 단계별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되는 겁니다. 공급기업 또한 테크 스퀘어로 고객 발굴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며 안정된 플랫폼 확보가 가능해집니다.
■ 김진희 : 「산업 디지털 전환 촉진법」이 시행된 지 7개월이 지났습니다. 이 법안이 가진 의미와 이 법 시행이 끼친 가장 큰 변화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김태환 부회장님, 말씀주시죠.
□ 김태환 : 전문을 보면 산업디지털전환촉진법은 산업 데이터와 지능 정보기술을 산업에 적용해서 산업 전반에 효율화를 도모하고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일련의 활동이라고 정의돼 있습니다. 법안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먼저 데이터가 공유되고 거래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산업 데이터는 속성상 공유되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기업 비밀에 해당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인데요, 그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를 담은 것이 법안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산업 데이터 거래에 대한 소유권, 사용 수익권을 보장하는 것이 법에 정의돼 있습니다.
법안에는 또 산업 디지털 전환을 촉진하기 위한 지원체계 및 기반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지난 1월 13일에 열린 산업디지털전환위원회도 해당 법에 근거해 데이터 거래 소유권, 사용 수익권, 표준화, 품질관리에 대한 부분을 언급하며 종합계획을 수립하였죠.
법안의 기대효과는 대국민 인식전환의 홍보효과를 들 수 있으며, 또 앞으로 데이터 거래가 일어났을 때 계약 가이드라인을 통해 거래의 애로를 풀 수 있다는 부분이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산업에 디지털 전환을 내재화하겠다는 거죠. 세부 목표는 제조 산업의 인공지능 기술 활용 사례를 늘리고, 인공지능 공급기업을 육성하겠다는 겁니다. 촉진법 재정 이후 지금까지 산업에서의 직접적인 효과가 있었다기보다는 궁극적 목표 달성을 위한 일련의 활동들을 전파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SaaS 수준 응용 솔루션 개발 서둘려야
■ 김진희 : 데이터 경제는 사람, 사물, 공간을 디지털 데이터로 연결해 새로운 데이터 기반의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게 해줍니다. 그 대표적인 정책이 바로 ‘Gaia-X’ 프로젝트인데요. 실제로 독일은 데이터 주권을 지키기 위해서 데이터 수집·저장을 넘어서 데이터를 공유하고 거래할 수 있는 서비스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특히, 클라우드와 데이터를 양면 전략으로 내세우며 산업 강화에 나서고 있는 거죠.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대책을 세워야 할지, 박한구 전임 단장님께서 말씀해주시죠.
□ 박한구 : 독일은 제조업 강국이면서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독일 생각에 미래에는 데이터 자본으로 바뀔 것이라 내다보고 있으며, 지금의 독일은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트 기업이 클라우드 플랫폼을 사업화하며 데이터 자본을 독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따라가려는 노력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독일의 고민은 시작된 거죠. 그래서 독일은 이런 빅테크 기업의 데이터 플랫폼을 활용해 독일의 데이터 주권을 확보하고 데이터 호환 기술을 개발해 데이터 소유권을 강화하자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국가 간의 데이터 주권을 유지하면서 서로 다른 CSP(Cloud Service Provider) 간에 쉽게 데이터 운용성, 지속성을 확보하자는 목적으로 탄생한 것이 ‘GAIA-X’입니다.
처음 GAIA-X를 독일 단독으로 추진하다 3개 빅테크 기업이 협력하지 않자, 프랑스와 협업하여 EU 집행위원회 산하의 자금으로 조직을 만들어 지금 브르쉘에 본부를 두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독일의 사례처럼, 우리가 잘하는 부분을 발굴해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서 운영하는 PaaS를 이용하여 목적별 플랫폼을 개발하고 SaaS 수준의 응용 솔루션을 개발해서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는 전략을 수립해야 해요. 정부도 클라우드 컴퓨팅 환경을 개발하는데 지원보다는 글로벌 CSP를 이용하여 플랫폼 기반의 응용 솔루션을 개발하고 활용하는데 자금을 투입해야 할 것입니다.
디지털 전환, 효과 볼 수 있는 것부터
■ 김진희 :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코로나19 팬데믹 등 환경 변화는 디지털 경제 활동의 빠른 확산을 가져왔으며 기업의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 중소기업의 현실을 보면 그렇지 않는 것 같습니다. 디지털 전환 역량이 여전히 미흡하고 디지털화 전략도 부재합니다. 그렇다면 중소기업들은 디지털 전환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 김태환 : 중소기업이 처한 현실을 보면, 대부분 업무 형태가 아날로그적인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게 가장 큰 이슈였고, 그 외에도 노령화, 숙련자 감소, 3D 업무의 청년 기피 등이 있습니다. 그러면 중소기업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라는 측면에서 몇 개의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봤는데요, 가장 먼저 확보해야 될 것은 디지털 리더십이었습니다. 하지만 디지털 전환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때문에 중소기업에 갑자기 디지털 전환을 하라는 것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선 아날로그적인 업무 방식을 디지털로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구두로 했던 계약을 전자문서화 하고, 여력이 있으면 RPA(Robotic Process Automation)를 도입하는 거죠. 전문 인력 또한 갑자기 외부에서 채용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내부 인력을 전문화해야겠죠. 그런 후 노하우와 데이터가 쌓이면 그때부터 컨설팅을 받고 전략을 수립해 본격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 박한구 : 디지털 전환은 중소기업이 모두 수행하는 것이 아니고 기업별 특성과 미래 발전 방향을 보고 필요한 개소에 종합 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해야 합니다. 단순한 땜방식은 투자 자금 대비 효과를 낼 수 없습니다. 투자는 3년 이내 효과가 나오는 경제적인 투자를 해야 하며, 정부에 의존하는 사업보다는 경쟁력을 갖기 위한 투자를 해야 합니다. 정부도 중소기업이 리스크가 있는 사업을 할 때는 실패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정부가 집단지성 전문 인력을 활용해서 사업 모델을 개발해주는 데 정책 초점을 맞췄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권봉현 : 기업은 기본적으로 실적 효과가 확실하지 않으면 투자에 보수적입니다. 막연하게 ‘디지털화 하라’, ‘데이터를 축적하면 돈이 된다’라는 식의 설득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실질적인 청사진이 필요한 거죠. 굳이 장기적으로 접근하지 않아도 단기적인 관점에서 효과를 볼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은데, 지금 중소기업들은 그것을 못 보고 있어요. 따라서 처음엔 효과를 볼 수 있는 것부터 가볍게 시작하고 성공 체험을 하고 나면 그 다음에 마스터플랜 단계로 가면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시작을 해야 하는 데 시작하려면 먼저 움직일 의지를 갖는 게 중요하겠죠. 또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문제를 극복한 성공사례들이 많이 늘어난다면 중소기업의 디지털 전환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입니다.
디지털 제품 여권, 한국도 준비해야
■ 김진희 : 디지털 전환을 얘기하면서 요즈음 나온 화두가 ‘디지털 제품 여권’입니다. 박한구 전임 단장님, ‘디지털 제품 여권’이란 무엇이며, 관련해서 유럽의 추진 동향은 어떤지요? 또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도 여쭙고 싶습니다.
□ 박한구 : 유럽연합(EU)은 탄소 넷제로를 위해 2015년에 순환경제체제를 선언하고 탄소배출권거래제(ETS)를 할당해서 규제를 시작했습니다. 유럽은 탄소배출권 가격이 톤당 86유로 정도하고 우리나라는 16,000원 정도 합니다. 유럽이 우리보다 10배 정도 비싸죠. 유럽에서 공장을 가동하면 탄소세 부담이 엄청난 겁니다. 그래서 탄소배출비가 적은 나라로 공장을 이전하는 경우가 많아졌죠. 국가 간 탄소배출비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 유럽연합은 2022년 12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도입에 공식합의하고 2026년부터 전면 시행을 예고했습니다. 이 제도를 좀 더 구체화하고 매뉴얼화 한 것이 2년 전에 출범한 ‘디지털 제품 여권’(DDP)입니다.
디지털 제품 여권에는 배터리를 예로 들면, 리튬이나 망간, 코발트 등 배터리 생산과 관련된 원자재 채굴부터 재련, 이송 등의 배터리 제작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과 원산지 증명서가 포함돼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패널티를 받게 되는 거죠. 2024년부터는 배터리, 섬유, 건축자재가 DPP 공시 대상이 됩니다. 2025년부터는 섬유, 건축자재를 대상으로 제한 탄소배출량 기준에 따라 추가 지불 및 환불 처리가 됩니다. 배터리는 2026년부터 시작되고요.
세계는 이미 탄소배출량 규제에 나서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대기업들은 막대한 자금과 인력을 투입하며 준비를 해왔습니다만, 중소기업은 대기업과는 달리 탄소중립을 준비한 기업이 손에 꼽힐 정도로 적습니다. 그래도 노력은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ETS나 CBAM 같은 경우에는 제품을 생산 및 수출하는 회사만 해당되는데, DPP는 원산지 추적을 다하기 때문에 제품과 관련된 기업 모두가 대상이 된다는 거죠. 그래서 중소기업도 탄소중립을 준비해야 합니다.
산업부를 비롯한 관련 기관도 중소기업과 협업해 국제 규격에 맞는 관련 소프트웨어 플랫폼 및 인프라, 솔루션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가 지원해주는 정책으로 나가게 되면 우리나라도 충분히 대응 가능하리라 봅니다.
■ 김진희 : 디지털 제품 여권(DDP)에 관해 협회에서도 관심을 안 가질 수 없을 것 같은데요.
□ 김태환 : 그렇죠. 디지털 전환이나 탄소중립이 디지털 데이터 없이는 안 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산업부에서는 관계망 구축에 초점을 둡니다. 추적을 하기 위해서는 관계망 구축을 해야 가능하잖아요. 하지만 대기업에서는 서로 관계망을 구축한다기보다는 각자 준비하고 시행하고 있습니다. 관계망 구축 및 통합은 플랫폼화로 가능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각자 갈 것은 각자 가고 공통으로 갈 것은 공통으로 가자는 거죠.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보니 각자 가는 것에 대한 비효율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서도 정부가 통합화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공공데이터와 민간데이터가 통합돼 추적하고 수출하는 것에 대한 대책이 필요한 거죠. 그런 부분을 논의하는 자리가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올해가 골든타임, 아직 희망 있다
■ 김진희 : 올해가 어쩌면 산업 디지털 전환의 골든타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번 시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앞으로 어떤 전략과 정책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 끝으로 한 분씩 말씀해주십시오.
□ 박한구 : 세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어요. 하나는 기업을 운영하는 분들의 생각 전환이 필요합니다. 산업 현장에 디지털 전환으로 신속하게 재무장하여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생각의 전환을 통해 과감한 도전을 해야 합니다. 급변화하는 글로벌 시장 환경에서 현 상태에 안주하려는 순간 도태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중소기업 중심의 디지털 경제 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지난 50년, 우리나라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여 글로벌 시장에 판매하는 전략으로 기존 혹 신설 공장을 스마트화 하여 생산하는 공정혁신 순으로 진행했습니다. 여기에 중소기업은 부품 가공, 조립 등 설계 기술 없는 대기업 납품 전속기업일 뿐이었죠. 그러나 미래에는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 체계로 탈바꿈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제조기업과 엔지니어링 기업 간 협업 체계로 신제품 설계, 개발 및 판매로 상호 이익 공유의 플랫폼 구축을 지원해야 합니다. 그래서 스타트업이 중소기업으로,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고, 더 나아가서는 글로벌 히든 챔피언까지 갈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이 정부에서 하는 디지털 경제 구축이라고 봅니다.
마지막 하나는 EU 순환경제에 따른 CBAM, DPP 등 규제 대응을 착실히 준비하면서 클라우드 환경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자들이 있지만 글로벌 클라우드 서비스와 호환성 문제가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클라우드 환경으로 바꿀 것인가가 중요해요. 러-우 전쟁에서도 봤듯이 데이터가 국가 기간산업이 된 건 이미 자명한 사실입니다. 우리나라도 자산인 데이터를 어떻게 백업하고 재난 복구 시스템을 갖춰가야 되느냐 하는 부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요. 그 고민의 시작은 클라우드 서비스 시스템 구축이라는 거죠.
□ 권봉현 : 먼저, 정책적인 부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지난 5~6년 동안 정부 주도의 스마트공장 구축 및 저변 확대를 해왔습니다. 그러나 공급기업 입장에서 봤을 때 중소기업들이 나름대로의 솔루션을 가지고 성장하는 기업이 몇 개나 있었느냐 하는 거죠. 이에 대한 분석과 성찰, 그리고 반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앞으로는 중소·증견기업들에게 노하우와 경험을 만들어주는 정책이었으면 합니다.
전략 부분의 기업 입장에서는 이미 대기업은 디지털 전환을 하고 있고요, 중소·중견기업들 또한 게임의 룰이 바뀌고 운동장이 바뀐 이 상황에서 발상의 전환을 통해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마스터플랜도 만들어야 돼요. 그 과정에서 정부나 대기업의 도움이 필요한 거고요.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부분은 디지털 전환에 있어서 기존 아날로그 방식에서 활동하던 인력들에 대한 대응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장에서 몇 십 년 동안 근무했던 인력을 어떻게 디지털 전문가로 연착시켜서 적응할 수 있게 하느냐에 대한 고민도 중요한 전략 중 하나라고 봅니다.
또 데이터의 독립성이나 자주성 확보도 디지털 전환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량입니다. 스마트 팩토리에서 현장 기기 데이터의 확보가 매우 중요합니다. 현재 제조 산업의 출발점이라고 보시면 돼요. 실제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데이터와 시스템을 보유했는지가 중요한데, 기업들이 이 부분을 많이 간과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 김태환 : 제가 정말 중요하게 보는 것은 민간 투자입니다. 정부 역할도 중요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민간의 역할이 정말 중요해요. 정부의 지원을 받았으면, 민간 투자도 이끌어내고 지속돼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잘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정부 지원에 너무 의존하고 있지 않는가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또 하나는 현재 B2C에서 하고 있는 플랫폼 비즈니스를 산업에 도입해야 한다고 봅니다. B2C의 플랫폼 비즈니스는 플랫폼 전략이기도 하지만 생태계 전략이기도 합니다. 이는 근본적으로 데이터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플랫폼 전략, 생태계 전략, 데이터 전략은 결국 하나의 패키지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플랫폼으로 풀어야 된다는 겁니다.
더 나아가 우리 기술을 가지고 글로벌 분야로 진출하려면 글로벌 시장에 맞는 상호운용성 같은 표준화가 이뤄져야 합니다. 현재 글로벌적으로 시도들은 하고 있으나 시장 지배적인 기업은 아직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도전해 볼 만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우리도 IT 기반이 잘 돼 있고 SaaS 등 버티컬 개발 역량이 되어 있기 때문에 기반만 잘 닦으면 충분히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고 봅니다.
■ 김진희 : 잘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산업 디지털 전환이라는 큰 화두를 가지고 세 분의 전문가와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디지털 전환 완성을 위해 갈 길은 멀고 풀어야할 과제도 많지만, 우리에게 아직 희망은 있는 것 같습니다. 바쁘신데 시간 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헬로티 임근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