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봇규의 헬로BOT] RUN+BOTICS ③ | 완주는 끝이 아닌 ‘재건’의 시작...로보틱스가 여는 러너의 회복 공정

2025.12.27 18:05:37

최재규 기자 mandt@hellot.net


지금 한국은 말 그대로 ‘러닝 전국시대’다. 주말마다 도심 속 도로가 통제되고, 번호표 단 러너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다. 이는 통계만 봐도 금세 체감된다. 국민체육진흥공단 ‘2024 국민생활체육조사’에 따르면, 최근 국민이 1년간 참여 경험이 있는 체육 활동 가운데 ‘달리기’ 비중이 기존 0.5%에서 6.8%까지 상승했다. 이 가운데 주 1회 이상 조깅을 하는 사람만 약 330만 명으로 집계됐다.

 

여기에 업계와 마케팅 보고서에서는 국내 러닝 인구 전체를 2017년 500만 명 안팎에서, 1000만 명 안팎으로 추산하는 얘기까지 나온다. 국회 자료를 정리한 마라톤 매체는 국내 마라톤 대회가 코로나19 팬데믹 직후인 2020년 19회 수준에서, 2023년에는 200여 회로 급증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연간 참가자 수도 1만 명이 채 안 되던 상황에서, 지금은 100만 명을 훌쩍 넘기는 시장으로 커졌다. 서울 도심을 통째로 막아 4만 명 가까운 러너가 동시에 뛰는 장면도 이제는 뉴스라기보다 계절 풍경에 가깝다.

 

러닝을 대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지금 좀 뛰는 사람들은 ‘운동 좀 해야지’ 수준을 넘어서, 시즌마다 목표 대회를 찍고 워치로 각종 지표를 관리한다. 시간당 거리를 뜻하는 페이스(Pace)부터 분당 발구름 수치인 케이던스(Cadence), 심박 수 등을 분석하며, 이전보다 과학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러닝 수준을 끌어올린다. 이러한 정보가 한데 집약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서는 작년의 나와 올해의 나를 숫자로 비교하기도 한다.

 

 

이들은 퇴근 후 집 앞 코스를 한 바퀴 도는 생활 러너부터, 해외 메이저 대회를 버킷리스트에 올린 마스터스 러너까지 다양하다. 현시점 우리나라에서의 러닝은 장비·데이터·커뮤니티가 엮인 ‘프로젝트형 취미’에 가까워지고 있다.

 

흥미로운 건, 이 판 위에서 움직이는 것이 사람 발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손목 위 작은 컴퓨터인 스마트 워치부터 대회 코스 곳곳에 배치된 계측기기 등 각종 장비가 러너를 지원한다. 해당 기술은 숨·심장을 초 단위로 기록하고, 수천 명의 랩 타임(Lap Time)과 영상을 동시에 수집해 서버로 보낸다. 또한 러닝화 한 켤레 뒤에는 실험실과 테스트 장비, 밑창을 수십만 번 두드리는 로봇·자동화 설비들이 있다. 레이스가 끝난 뒤에는 지친 몸을 다시 세우는 재활실에는 각종 로봇과 기계 장치가 돌아가고 있다.

 

이번 RUN+BOTICS 특집은 이 풍경 한가운데에서 러너의 시즌을 세 시점으로 나눠 본다. 시즌이 막 시작되기 전, 시즌 한가운데, 시즌이 끝난 뒤.


 

메달을 목에 걸고 집에 돌아오면 러너의 시즌은 끝난 것처럼 보인다. 기록은 확정됐고, 레이스는 이미 끝났다. 그런데 몸은 그 순간부터 다시 일을 시작한다. 근육은 미세하게 찢어진 섬유를 꿰매고, 관절은 부하를 흡수하느라 틀어진 균형을 되돌리고, 신경계는 다음 착지를 대비해 패턴을 재정렬한다.

 

러너가 느끼는 피로와 통증은 감정이 아니라 러닝 로그 속 또 하나의 신호다. 어떤 구간에서 폼이 무너졌는지, 어느 부위가 먼저 잠겼는지, 무릎이 흔들렸는지, 발목이 말렸는지. 시즌 말의 회복은 휴식이기도 하지만, 기술 관점에선 다음 시즌의 성능을 좌우하는 마지막 공정이다.

 

러너가 무너지기 쉬운 지점, 즉 회복과 재활의 영역에서 로보틱스는 어떤 역할을 할까? 여기서 핵심은 ‘마사지 기계가 신기하다’가 아니다. 회복을 ‘느낌’이 아니라 ‘패턴’으로 남기고, 그 패턴을 반복 가능한 개입으로 바꾸는 순간마다 로보틱스가 등장한다.

 

어떻게 좋아졌는지 데이터로 답하다, 로봇이 재설계하는 러너의 ‘회복’

 

폼롤러도 회복이고, 스트레칭도 회복이다. 하지만 로봇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센서로 러너의 신체 상태를 감지하고 모델로 해석하며, 구동부(Actuator)를 통해 개입한 뒤 그 결과를 다시 측정한다. 그리고 해당 결과를 즉시 다시 측정해 다음 동작을 스스로 수정하는 ‘폐루프(Closed-loop)’ 시스템을 구축한다. 쉽게 말해, 러너 신체의 반응에 따라 로봇이 실시간으로 대응하는 지능형 피드백 구조다.

 

이러한 구조가 도입되는 순간, 회복은 단순한 행위가 아닌 정교한 ‘프로그램’이 된다. 이렇게 프로그램화된 회복 환경에서 시즌 말의 과정은 ‘어떤 러닝 패턴을 어느 정도의 강도와 속도로 복구했는가’에 대한 정밀한 기록으로 치환된다.

 

러너 입장에서 이 같은 변화는 직관적으로 다가온다. 부상 이후 복귀 시 가장 큰 불안 요소는 통증 그 자체보다, 이전과 같은 정상적인 착지가 가능한가에 대한 의구심이기 때문이다. 왼쪽은 안정적으로 지지하는 반면 오른쪽에는 체중이 온전히 실리지 않거나, 골반 비틀림, 무릎 내측 쏠림, 발목 불안정성 등이 발생한다.

 

이러한 감각적 불안은 주관적인 느낌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이때 로봇은 회복의 목표를 막연한 ‘호전’이 아니라, 구체적인 ‘데이터 기반 개선’으로 전환하는 핵심 장치가 된다.

 

걷는 법부터 다시...‘보행 재활’의 로보틱스 기반 자동화

 

전형적인 회복 로봇은 보행 재활 분야에서 선제적으로 발전해 왔다. 러닝은 본질적으로 ‘빠른 보행의 확장’이다. 시즌 말의 회복은 상당 부분 ‘보행 패턴’을 재정렬하는 과정으로 귀결된다. 이에 따라 재활 현장에서는 다리의 반복 운동을 로봇이 수행하는 장면이 심심찮게 보여왔다. 보행 패턴의 재정렬 과정을 과학적으로 고도화하는 것이다.

 

로봇 기반 보행 재활 장비의 핵심은 반복의 질에 있다. 전문 인력이 상주하며 매 순간 자세 교정을 지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반면 로봇은 동일한 리듬을 수백, 수천 번 정밀하게 구현한다. 일례로 트레드밀과 결합된 로봇 보행 훈련 시스템은 다리의 움직임을 일정한 궤적으로 유도하며, 필요에 따라 체중 부하를 조절하거나 속도를 미세하게 조정한다.

 

예를 들어 스위스 소재 로보틱 재활 장비 업체 호코마(Hocoma)가 있다. 사측 대표 제품인 로코맷(Lokomat)은 로보틱 보행 훈련 시스템으로 활약 중이다. 해당 기술은 트레드밀과 로봇 외골격 구조를 융합해 보행 궤적을 반복적으로 유도한다. 이 과정에서 체중 지지, 보조 강도, 속도 등을 센서와 소프트웨어로 미세 조정한다.

 

▲ 호코마 로코맷(좌)과 작동 원리(우). (출처 : 호코마, 편집 : 헬로티 최재규 기자)

 

여기서 핵심은 ‘정렬’이다. 신체가 정상적인 패턴을 기억하도록 무너진 축을 동일한 조건에서 되감는 과정이다. 이는 러너들에게 ‘회복은 올바른 패턴을 재설계하는 과정’이라는 시사점을 준다. 특히 부상 후 특정 부위를 회피하는 보상 동작이 고착될 때, 회복의 성패는 근육이 아닌 패턴 교정에서 결정된다. 로봇은 이 교정 공정을 수작업에서 자동화의 영역으로 이동시킨다.

 

재활 현장에서는 임상용 외골격(Exoskeleton) 기술 업체 엑소바이오닉스(Ekso Bionics)의 엑소NR(EksoNR)이 대표적이다. 재활을 목적으로 활용되도록 허가 범위가 정해진 외골격 장비다. 이는 러너용 장비라기보다, 보행 재학습을 반복시키는 임상 도구에 가깝다.

 

그런데 러닝 맥락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이런 ‘재학습 로봇’의 발상이 재활실 안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회복 루틴 속 움직임까지 직접 보조하는 웨어러블 로봇(Wearable Robot)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 엑소NR은 지능적 회복·재활을 돕는 웨어러블 로봇이다. (출처 : 엑소바이오닉스스, 편집 : 헬로티 최재규 기자)

 

다른 한편, 발목은 추진력과 충격 흡수의 관문이다. 러닝 시즌 말 피로가 누적되면 가동 범위가 줄고 종아리·아킬레스 쪽에 부하가 몰리기 쉽다. 이때 회복의 목표는 무너진 패턴을 안전한 강도에서 다시 맞추는 과정이다.

 

이 관점에서 발목 토크를 보조하는 ‘앵클 외골격(Ankle Exoskeleton)’ 연구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예컨대 미국 웨어러블 로봇 업체 데피(Dephy)의 엑소부트(ExoBoot) 같은 발목 외골격은 연구용 플랫폼으로 다뤄진 사례가 공개돼 있다. 이 기술은 러너가 걷는 일련의 과정을 실시간으로 파악한다. 이후 발끝을 아래로 누르는 동작인 ‘족저굴곡(Plantarflexion)’의 힘을 기계적으로 보태준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로봇이 즉각적으로 러너의 일상 장비가 됐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이는 회복이 ‘단순 휴식’에서 ‘정교한 설계’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흐름을 보여준다. 나아가 미래의 회복 로봇이 어떤 모습으로 러너 곁에 올지 그 실체를 미리 제시하고 있다.

 

러너가 시즌 말에 줄여야 하는 것은 훈련량만이 아니라, 무너진 패턴을 그대로 둔 채 다음 시즌으로 넘어가는 위험이다. 웨어러블 로봇은 그 위험을 낮추기 위한 기술적 카드로 제시되는 하나의 중추적 요소다.

 

숙련도 편차 없는 ‘일관된 회복’...로봇 마사지가 제안하는 ‘누적 균형’

 

러너들이 회복을 논할 때 흔히 마사지건을 언급한다. 이는 단순한 진동 도구에 가깝다. 이때 진정한 로봇의 단계는 신체의 형태와 반응을 인지하고, 압력·경로를 능동적으로 변경하며, 그 결과를 어떻게 기록하는지에 의해 결정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로보틱 마사지 기술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로보틱 마사지 분야에서 에이스케이프(Aescape)는 신체 스캔과 소프트웨어 설정을 바탕으로 압력·경로·템포를 개인화한다. 이어 세션 기록을 남겨 ‘같은 품질의 회복’을 재현하려는 시스템으로 러너의 회복에 기여한다.

 

사용자는 강도만 조절하는 수준을 넘어, 특정 부위에 대해 마사지 파라미터(Parameter)를 설정해 원하는 방식으로 회복 과정을 설계할 수 있다. 시스템은 그 설정과 결과를 기록해 일관된 품질을 유지하는 데 초점을 둔다.

 

 

이 과정을 통해 회복은 ‘기억’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특정 시기의 햄스트링 경직도나 레이스 직후 종아리의 과긴장 상태 등이 데이터로 누적된다. 러너에게 이는 회복이 정교한 ‘로그(Log)’가 된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이 가운데 로봇의 역할은 인간의 손을 대체함과 동시에 회복의 품질을 재현하는 데 있다.

 

전문가의 숙련도나 컨디션에 좌우되지 않고 동일한 회복 조건을 언제든 호출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시즌 말 회복의 핵심인 ‘누적된 균형 회복’을 기술적으로 설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차기 시즌 승부처는 ‘리셋’...이것이 사실상 ‘첫 훈련’이다

 

결국 이 같은 회복 로봇 기술의 발전은 회복의 과정이 로봇 언어로 번역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앞선 두 편의 시리즈에서 러닝 로그가 데이터가 되고, 그 데이터가 자동화된 장비를 통해 검증됐듯이, 이제 회복 또한 데이터로 수렴하고 있다. 센서가 무너진 패턴을 읽고, 로봇이 반복적인 개입으로 이를 정렬하며, 그 결과는 다시 러너의 다음 루틴과 장비 선택으로 연결된다.

 

많은 러너가 시즌을 대회의 시작과 끝으로 정의하지만, 로보틱스 관점에서 시즌의 진정한 마침표는 결승선이 아닌 ‘리셋’이다. 이 리셋 과정은 점차 정량화되고 자동화되며 로봇화되고 있다.

 

차기 시즌의 성패는 훈련량에 그치지 않는다. 어떠한 방식으로 회복을 설계했는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러닝이 인간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한, 그 활동을 지탱하는 동료로서의 로봇의 비중은 더욱 커질 예정이다.

 

헬로티 최재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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