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이천에서 다시 한 번 물류센터 화재가 발생했다. 지난 13일 오전, 냉동식품과 생활용품, 리튬이온 배터리 등 다양한 품목이 보관된 대형 물류창고에서 화염이 치솟았다. 정확한 화재 원인은 공식 발표를 기다리고 있지만 한동안 잠잠했던 물류센터 화재 이슈가 재부상하면서 업계와 사회에 다시금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상존하는 휴화산처럼 물류센터 화재 사고는 시대를 가리지 않고 반복되고 있다. 이 고리를 끊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또 다시 불탄 물류센터…반복되는 사고의 원인은?
‘물류센터 화재’라는 키워드는 단순한 사고가 아닌 구조적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이천은 2020년에도 대형 참사를 겪은 바 있다. 냉매 배관 작업 중 발생한 불씨가 우레탄폼 자재에 옮겨붙으며 지하 2층부터 삽시간에 불이 번졌고 총 38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후 정부는 2024년 창고시설 전용 화재안전기준을 제정해 방화구획 강화, 스프링클러 설치 기준 상향, 배전반별 소화기 비치 등을 의무화했다.
그러나 2025년, 이천에서는 또다시 물류센터에 화염이 치솟고 말았다. 이번 화재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리튬이온 배터리라는 신유형의 위험물은 기존 기준이 제대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발화와 폭발 위험이 높은 배터리가 생활용품과 냉동식품 등과 함께 혼재된 상황에서, 과연 현장의 방재 설계는 충분했는지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 더욱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제도는 강화됐지만…현장 정착은 미지수
2020년 발생한 대형 물류센터 화재 이후 정부는 비교적 발 빠르게 대응책을 마련했다. 물류센터를 포함한 창고시설에 대해 기존의 건축법과 소방시설법 외에 특화된 기준을 제정했고 대규모 냉동창고나 풀필먼트 시설에도 강화된 규제를 적용했다. 특히 자동화 설비와 고밀도 보관시설에 맞는 감지센서 도입, 스프링클러 습식화, 소화수 수원 확보는 물류시설의 기본 조건으로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제도가 실제 현장에서 얼마나 효과적으로 적용되고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이번 이천 화재에서도 스프링클러의 작동 여부나 설계 구조의 적절성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위험물의 혼합 보관에 대한 사전 리스크 관리가 부실했다면, 기존 기준만으로는 반복되는 화재를 막기 어렵다는 반증이 될 수 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물류업계 관계자는 “하나의 사고가 발생했을 때 단편적인 방책을 마련하는 것보다는 장기적인 시각에서 모든 사고 가능성을 막을 수 있는 다각적인 예방책이 마련돼야 물류센터 화재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반복되는 물류센터 화재, 기술로 막을 수 있나
물류센터뿐만 아니라 다양한 산업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화재 사고를 막기 위한 기술은 꾸준히 진화해왔다. 최근 물류센터들은 화재 감지부터 자동 진압까지 빠르게 반응할 수 있는 스마트 방재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AI 기반 화재 감지, 열센서 기반 실시간 온도 모니터링, 스프링클러 자동 분사 제어, 고압 분무형 소화 시스템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들이 과연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물류센터처럼 복잡한 현장의 특성상, 인화성 물질을 다룰 때 보다 세심한 운영이 가능하도록 법적 체계와 현장 운영 매뉴얼이 분명하게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자동화라는 거대한 파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물류현장의 혁신이, 정작 그 기반이라 할 수 있는 화재 예방에는 얼마나 실질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제기된다.
기술도 중요하지만, 더 우선되는 건 실행력이다
물류센터는 이커머스 산업의 핵심 인프라다. 새벽배송이나 주 7일 배송이 일상화된 지금, 물류센터의 효율성과 안전성은 사회 전반의 생활 기반을 결정짓는 요소다. 따라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화재는 단순히 특정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구조 전체의 리스크 관리 수준을 가늠하는 시험대다.
전문가들은 위험물 취급 기준의 세분화, 물류센터 설계 단계에서의 화재 시뮬레이션 강화, 정기적인 방재 점검 의무화, 그리고 소방청과 물류기업 간의 공동 대응 매뉴얼 수립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서문에서도 언급했듯이 물류센터 화재는 새로운 유형의 사고가 아니다. 동일한 장소, 동일한 유형, 동일한 원인으로 사고가 반복된다면 이는 산업 전반의 위기를 의미한다. 어느 정도의 제도는 마련되었고 기술은 이미 개발돼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것들이 현장에서 얼마나 실행되고 있는가다. 오늘의 화재가 또 다른 기준 강화로만 끝나지 않도록 물류업계와 정부는 실질적인 실행력을 바탕으로 물류센터를 잠재적 화산인 ‘휴화산’이 아닌, 안전한 ‘사화산’으로 전환시켜야 할 시점이다.
헬로티 김재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