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어의 법칙’은 반도체 업계에서 정설로 통한다. 이 법칙은 반도체 칩 집적도가 2년마다 2배씩 늘어나는 성능 향상 실현을 의미한다. 이처럼 반도체 산업은 끊임없는 변화를 거치며 반도체가 필요한 산업 영역에서 진보의 기반을 마련해왔다. 반도체는 미래산업에서도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이며, 그에 걸맞은 성능을 갖추기 위해 지속해서 개발되고 있다. 산업계는 특히 차세대 반도체라 불리는 AI 반도체와 PIM 반도체, 전력 반도체의 발전을 주시하고 있다.
AI 반도체, 고품질 AI 서비스 제공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는 지난 9월 ‘AI 반도체 스케일업 네트워크 발대식’을 열었다. 정부와 AI 반도체 업계, 연구기관은 AI 기술 발전의 핵심으로 꼽히는 AI 반도체를 국내 기술로 상용화하기 위해 손을 잡았다. 과기정통부는 상용화 초기 단계인 국내 AI 반도체의 수요를 창출하고 관련 생태계를 활성화하는 협의체라고 설명했다.
국내 AI 반도체 기술은 딥러닝 등에 특화된 국외 선도기업들과 비교해 아직 상용화 초기 단계다. 이에 참가기관은 유망 분야로 꼽히는 초고속·저전력 클라우드 데이터 센터를 국산 AI 반도체로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AI 반도체와 클라우드, AI 서비스를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사피온은 국내에서 AI 반도체 개발에 주력하는 기업 중 하나다. 사피온은 최근 NHN의 데이터 센터 NCC에 당사의 AI 반도체 ‘SAPEON X220’ 기반 인프라를 확대 구축했다고 전했다. 이는 지난 2021년에 구축된 파일럿 인프라에 이어 추가 구축된 것으로, AI 반도체가 상용 데이터 센터에 도입돼 AI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례다.
NHN 클라우드는 NHN 데이터 센터에 2021년 5.22Peta OPS 수준의 사피온 AI 인프라를 구축했고, 올해 9.22Peta OPS 성능의 사피온 AI 인프라를 추가 확대해 구축했다. 이로써 총 14.44Peta OPS의 국산 AI 반도체 기반 클라우드 인프라가 구축됐으며, 이는 1초당 1경4000조 번의 연산을 하는 컴퓨팅 성능이다. 양사는 국산 AI 반도체 기반 클라우드 인프라를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에 제공해 기존 고비용 GPU 인프라 도입에 대한 비용부담을 낮추고 국산 AI 반도체 기반 고품질 AI 서비스를 사용하는 환경을 조성할 계획이다.
신소재 등에 업은 전력 반도체
반도체 업계에서는 앞으로 탄화규소(SiC)와 질화갈륨(GaN) 등 이른바 3세대 반도체 기술이 본격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트렌드포스는 2023년 10대 기술 산업 트렌드 중 하나로 3세대 반도체의 부상을 꼽았다.
기존 전력 반도체는 주로 실리콘(Si) 소재로 만들어졌는데, 최근에는 전력 효율과 내구성을 극대화한 SiC와 GaN 등 신소재를 기반으로 한 차세대 전력 반도체가 주목받고 있다. 앞으로 전자기기 수요 확대와 전력 소비 증가가 예상되면서, 차세대 전력 반도체는 미래 성장 가능성이 높은 분야로 꼽힌다.
트렌드포스는 오는 2026년까지 5년간 SiC와 GaN을 활용한 전력 기기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이 각각 35%, 61%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트렌드포스는 “800V 전기차, 고전압 충전, 고효율 그린 데이터 센터 등의 급부상으로 SiC와 GaN 부품은 가파른 성장 단계에 접어들었다”며, “2023년을 앞두고 더 많은 자동차 업체가 메인 인버터에 SiC 기술을 도입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DB하이텍은 최근 전력 반도체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DB하이텍은 고성능 전력 반도체 부품인 ‘슈퍼정션 모스펫(SJ MOSFET)’ 3세대 제품의 양산 물량을 늘이는 등 사업 추진에 나섰다. 모스펫은 소비가전과 각종 IT 기기의 전원공급장치에 적용돼 스위칭과 신호 증폭 기능을 담당하는 핵심 부품이다. 고전압과 고효율을 특징으로 하는 전자장치의 보급 확산에 힘입어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DB하이텍은 기존에 양산 중인 650V 공정에 더해 600V, 700V 공정을 추가로 개발해 제품 라인업을 확대했다. 3세대는 2세대보다 저항값을 약 60% 낮춰 성능을 개선하고 칩 크기를 줄인 것이 특징이다. 연내에 차량용 고온 신뢰성 품질 테스트를 완료해 자동차 등 고부가 시장으로 영역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DB하이텍은 에이프로세미콘과 손잡고 차세대 전력 반도체 개발을 직접 추진한다.
양사는 올해부터 2024년까지 GaN 전력 반도체 생산을 위한 공정기술 개발을 추진할 계획이다. 질화갈륨을 적용한 GaN 반도체는 기존 실리콘 소재 반도체보다 전력효율과 내구성이 뛰어나 차세대 반도체로 주목받고 있다. DB하이텍은 이번 협력으로 GaN 전력 반도체 핵심 공정기술을 확보하고 스마트폰과 IT 기기, 전기차 등에 사용되는 차세대 전력 반도체를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PIM 반도체, 메모리·시스템 융합으로 탄생하다
과기정통부와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는 지난 9월 경기도 성남시 판교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범부처 ‘PIM인공지능반도체 사업단’ 출범식을 열었다.
PIM인공지능반도체는 메모리·연산 통합 지능형 반도체로, 데이터를 저장하는 메모리에서 연산까지 함께 수행해 효율을 높일 것으로 기대되는 차세대 반도체 기술이다. PIM은 ‘Processing-In-Memory’의 약자다. 메모리 반도체에 연산 기능을 더해 AI와 빅데이터 처리 분야에서 데이터 이동 정체 문제를 풀어낼 기술로 손꼽힌다.
과기정통부와 산업부는 올해 ‘PIM인공지능반도체 핵심기술개발사업’에 착수하고 2028년까지 7년간 과기정통부 2897억 원, 산업부 1130억 원을 합해 총 사업비 4027억 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과기정통부 사업으로는 PIM 특화소자·집적기술 개발, 다양한 메모리 기반의 PIM 설계, PIM 반도체에 최적화된 시스템 소프트웨어 개발, 산업부 사업으로는 비휘발성 메모리 기반 PIM 공정·장비 개발이 이뤄질 예정이다.
지난 2월, SK하이닉스는 PIM을 발표해 업계의 화제를 모았다. SK하이닉스는 PIM이 적용된 첫 제품으로 ‘GDDR6-AiM(Accelerator in Memory)’ 샘플을 개발했다. 초당 16기가비트 속도로 데이터를 처리하는 GDDR6 메모리에 연산 기능이 더해진 제품이다.
일반 D램 대신 이 제품을 CPU·GPU와 함께 탑재하면 특정 연산의 속도는 최대 16배까지 빨라진다. 특히 이 제품은 GDDR6의 기존 동작 전압인 1.35V보다 낮은 1.25V에서 구동된다. 또한, 자체 연산을 하는 PIM이 CPU·GPU로의 데이터 이동을 줄여 CPU·GPU에서 소모되는 전력을 줄여준다.
그 결과, 기존 제품 대비 에너지 소모는 80% 가량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GDDR6-AiM은 머신러닝, 고성능 컴퓨팅, 빅데이터의 연산과 저장 등에 활용될 전망이다. 나아가 SK하이닉스는 사피온과 협력해 GDDR6-AiM과 AI 반도체를 결합한 기술도 선보일 계획일 것이라고 밝혔다.
헬로티 서재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