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는 초대형 다국적 기업 가운데 기술혁신을 통한 성장을 가장 중요한 전략 축으로 표명한 보기 드문 전통적 제조 기업이다. 2017년 제프리 이멜트는 자신의 재임 기간 목표로 21세기에 가장 가치 있는 기술 중심의 제조 기업이 되기 위해 연구개발에 2배를 더 투자하고, GE의 생산성을 올리며, 고객사의 생산성 향상에도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초대형 다국적 기업 가운데 기술혁신을 통한 성장을 가장 중요한 축으로 표명한 기업으로는 소프트웨어 기반의 애플, 구글 등이 있다. 그러나 입수 가능한 책이나 기타 문서 형태의 경영 사례 가운데 GE 같은 초대형 다국적 기업이 기술혁신을 성장 전략의 주요 축으로 강조한 사례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기업의 성장에는 기술혁신 외에도 금융 투자, M&A, 마케팅의 혁신, 조직 혁신, 제품과 서비스 혁신, 생산 효율화 등 여러 요소가 영향을 미친다. 이 중에서 특정 요소를 강조하는 것은 성장 전략이 한쪽으로 편향되는 문제점을 가져올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GE는 전통적인 제조 기업 가운데 기술혁신을 통한 성장 전략을 추구하는 매우 드문 기업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잭 웰치의 GE가 M&A와 효율화를 통한 성장을 추구한 반면, 제프리 이멜트의 GE는 연구개발과 기술혁신에 의한 유기적인 성장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차별화가 된다.
이멜트는 기술혁신을 통한 성장을 유기적 성장(Organic Growth)이라고 표현했다. 특히 2011년부터 추구한 산업 인터넷 이니셔티브는 그의 기술혁신을 통한 유기적 성장 전략이라는 기조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GE의 이러한 기술혁신을 통한 성장 추구는 많은 사업 영역에서 디지털화가 진전됨에 따라 드러나는 자신들의 새로운 강점 분야에 주목하면서 모색되었다.
GE 애비에이션 사업부를 예로 들어보자. GE 애비에이션은 항공기 제작 업체에 고가의 엔진을 공급하는 회사로, 궁극적인 고객은 항공사다. GE 애비에이션은 항공사들이 엔진에서 추출되는 여러 데이터의 분석과 처리를 GE에 요청하지 않고 IBM이나 SAP 등과 같은 빅데이터 전문 기업에 맡기는 것을 발견했다. 항공기 엔진은 GE가 만들지만 정작 거기서 나오는 데이터 분석 작업은 다른 기업이 담당한 것이다.
빅데이터 전문 기업은 데이터 분석 테크닉을 적용할 수는 있지만 데이터 분석 결과의 해석에 필요한 엔진 및 항공기 분야 지식(Domain Knowledge)이 없기 때문에 분석에 한계가 있다. GE는 자신들이 이러한 업체들의 일을 수행한다면 새로운 영역, 즉 데이터 분석 서비스 영역에서 최강의 강점을 가진 기업이 될 수 있다는 데 주목했고, 기술혁신을 통해 유기적 성장 기회를 확보하는 데 나서게 된다.
사실 소프트웨어 전문 기업은 데이터 분석에 분명한 한계가 있다. 하드웨어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하는 일까지 GE가 한다면 경쟁우위를 가질 수 있고, 이를 활용하면 혁신을 통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GE는 하게 되었다. 그 결과, GE는 2011년부터 디지털화를 활용한 제품 및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추구한다. 이는 이전부터 GE가 추진해온 기술혁신을 통한 유기적 성장을 강조해온 이멜트식 접근의 연장선상에서 추진되었다고 볼 수 있다.
기술혁신을 통한 성장을 추구함에 있어 GE는 선도적으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경험한 서비스 업종 기업에서 새로운 모델을 찾았다. 1990년대에 서비스 업종은 전자상거래의 출현과 같은 디지털화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구현이 이루어지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이미 경험한 바 있다. GE는 바로 거기서 혁신의 추진 모델을 찾았다.
대표적인 기업이 아마존이다. 아마존의 경우, 고객 데이터를 클라우드에 보관하고, 이를 바탕으로 고객이 원하는 것을 제공한다. 이것은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비즈니스였다.
반면 GE와 같은 중공업 분야의 산업재는 고객사를 대상으로 하고, 데이터의 크기도 크고 복잡하다. 아마존의 일반 소비자와는 달리 고객사의 데이터를 수집하려고 해도 그 수가 적을 뿐만 아니라 수집 가능한 정보도 한계가 있다. 고객사에 데이터 협조를 요청하는 것은 어려운 반면, 고객사에 공급하는 제품에서 자동적으로 데이터가 흘러들어오게 하는 것은 가능하다. 이는 고객사에게 공급하는 엔진이나 가스터빈 등에 센서를 달아 데이터가 자동적으로 모이게 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면 고객사에 있는 기계와 부품들이 GE의 컴퓨터나 클라우드에 데이터를 자동으로 입력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게 된다. 이렇게 되면 모인 데이터를 분석하여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맞춤형 서비스 제공이 가능해진다.
이렇게 보았을 때 산업 인터넷 비즈니스는 소비자 인터넷 비즈니스의 창조적 모방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위해 GE는 시스코에서 부사장으로 ‘첨단 서비스 및 솔루션(Advanced Services and Solutions)’ 개발을 담당했던 빌 루를 영입한다.
고객에게 원하는 것을 제공하기 위해 제조 기업 입장에서는 기존 서비스 기업의 인터넷을 활용한 서비스를 모방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와 함께 인터넷 연결 환경에서, 기존 서비스 기업에 존재하지 않았던 ‘물건을 만들어 공급’하면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판단 아래 GE는 제조업의 데이터 중심 서비스화를 추구하는 산업용 사물인터넷과 개별 고객의 요구에 맞춘 제품 공급을 가능하게 하는 적층제조(3D 프린팅) 기술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게 된다.
GE의 제조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의 출발은 내부의 소프트웨어 시스템을 종합적으로 정리하여야 할 필요성을 자각하면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점차 진행되면서 거대한 도전에 직면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진통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동안 GE가 만든 솔루션은 많았지만 소프트웨어 간 시너지도 존재하지 않았고, 중복된 부분도 많았다.
이에 대해 하버드대의 카림 라카니 교수 등은 “GE는 2010년경 5,000명이 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고용하고 있었고, 소프트웨어로부터 얻는 수입이 250억 달러에 이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의 기술적 선택이나 상업적 제공을 가이드하는 전략이 없었다. 각 사업부는 현장 여건에 맞는 최적화된 소프트웨어를 선택하고, 기술 및 상업적 성공에서 커다란 이질성을 갖고 있었다”라고 기술했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소프트웨어를 모듈화하고, 공통된 아키텍처를 바탕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최근 소프트웨어 솔루션이 온라인 플랫폼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아키텍처를 온라인 플랫폼과 연결해 운영하는 것이 가능하다. 여기까지는 선도적인 제조 기업이라면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이다. 여기서 플랫폼화에까지 생각이 미치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GE의 산업 인터넷 비즈니스는 어떤 형태일까? 소비자 인터넷 비즈니스는 고객과 인터넷으로 실시간 연결된 비즈니스다. 소비자는 주문 과정에서 자신의 정보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제품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SNS 망을 통해서도 자신의 정보를 제공한다. 제조업은 이것이 쉽지 않다. 고객사가 정보 제공을 꺼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조업의 경우에는 고객사로부터 정보를 받기보다 고객에게 판매한 제품에서 데이터를 직접 받는 접근을 취한다. 하지만 고객사는 이러한 데이터 제공 역시 꺼린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고객사가 제공한 데이터가 자사의 이익에 도움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연결된 제품으로부터 데이터를 받고 분석하여 고객의 성과에 보탬이 되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면 협조를 얻을 수 있다.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등 소비자 인터넷 비즈니스 기업들은 대부분이 플랫폼을 바탕으로 경쟁한다. 이들의 플랫폼은 소비자들이 정보를 제공하고, 공유한다. GE는 이를 벤치마킹해 고객사로부터 흘러들어오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 활용하는 플랫폼으로 프리딕스(Predix)를 운영한다. GE는 자사의 가스터빈, 풍력 발전기 등의 제품이 프리딕스 OS와 호환되고, 연결되도록 했다. 이를 바탕으로 자사 제품의 예지 정비와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은 물론, 고객사가 그들의 고객에게 들어오는 데이터를 통해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체제까지 갖추고자 하였다.
* 본 기획 연재는 임채성, 임재영, 손현철 님이 공 동으로 저술하신 《GE의 혁신 DNA》 내용에서 발췌하여 요약 및 정리, 혹은 추가하여 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