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산업이 호황기에 접어들면서 생산시설 확보를 위한 아낌없는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인텔, TSMC 등의 주요 기업들은 증가하는 시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생산시설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지금과 같은 반도체 산업의 호황이 하반기부터 꺾일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호황기 타고 막대한 투자 이어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반도체 수요가 늘고 수급난이 이어지면서 반도체 업계는 호실적을 누리고 있다.
세계 반도체 시장이 3년 연속 두 자릿수 성장을 기록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제조업체는 대규모 투자 계획을 짰고 미국 등 정부는 반도체 공장 유치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이런 호황을 누리는 기간이 그리 길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일부 전문가는 이르면 올 하반기에 업황이 꺾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반도체 업계가 호황을 누리면서 업체들은 대규모 투자계획을 잇달아 내놨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는 올해 설비투자에 최대 440억 달러를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300억 달러에서 늘어난 것으로, 2019년 설비투자액의 3배에 달한다.
미국 인텔은 올해 270억 달러를 쏟아 부을 계획이다. 인텔은 총 200억 달러를 들여 미 오하이오주에 반도체 제조공장을 짓는다고 발표했다.
추후 6개 공장을 추가로 건설, 향후 10년간 총 1000억 달러가 소요될 것이라고 인텔은 설명했다. 삼성전자 역시 올해 설비투자액이 작년의 330억 달러를 넘어설 것임을 예고하는 등 공격적인 구상을 밝혔다. 독일 인피니언 등 소규모 반도체 기업 역시 투자에 돈을 아끼지 않고 있다.
반도체 전문 조사기관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지난해 반도체 업계의 설비투자액은 34% 증가, 2017년 이후 가장 많았다. 반도체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고객사 입장에서 보자면 이런 자금 투자는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수요는 빨리 변하기 마련이라는 점에서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
공장 건립에 드는 기간은 2년 이상. 수요는 그보다 빨리 식을 수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스마트폰 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코로나19 봉쇄 기간에 호황을 누렸던 스마트폰 판매도 약세를 보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모건스탠리는 반도체 구매기업의 55%가 이중 주문을 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공급 부족 등을 이유로 수요를 일부러 부풀린다는 것이다. 여기에 높은 물가상승률과 금리 상승 등의 요인이 겹쳐 경제 성장에 타격을 주고 반도체 수요 역시 꺾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영국의 시장조사업체 퓨처호라이즌의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맬컴 펜은 반도체 사업이 1950년 등장 이후 일정 주기를 보이며 움직였다며, 올 하반기나 내년 초에 변곡점을 맞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와 함께 정부의 공장 유치 등의 노력도 시장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반도체 부족 현상과 첨단기술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 전쟁은 정치인들에게 반도체의 중요성과 함께 특정 기업에 의존하는 현실을 깨닫게 했다.
그 해법으로 미 정부가 제시한 것은 보조금을 주고 공장을 유치하는 것이었다. 업체들도 이를 잘 활용하고 있다. 마크 리우 TSMC 회장은 2020년 미 애리조나에 공장을 짓자고 회사를 설득하는 데 이런 보조금이 필수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인텔도 주 정부의 인센티브 등을 고려해 오하이오를 공장 부지로 택하기도 했다. 펜 CEO는 반도체 회사의 풍부한 투자자금에 정부 자금까지 더해지면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생산능력을 갖출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리고 최대 호황을 누릴수록 부진의 골 역시 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업황이 달라지더라도 이전과는 다를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보이는 업체도 있다.
웨이저자(魏哲家) TSMC CEO는 하락장이 오더라도 모든 업체가 똑같이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며, 첨단 기술력 덕분에 자사는 변동성이 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새 생산능력의 상당 부분은 이미 최신 아이폰을 위해 애플사와 장기 계약으로 예약됐다고 덧붙였다.
올해도 지속되는 반도체 호황, 하반기에는?
유진투자증권은 연초 반도체 업체들의 주가 하락에도 올해 시장 규모 성장이 예상된다며 반도체 산업에 대한 긍정적 전망을 내놨다.
지난 2월 유진투자증권에 따르면, 1월 주요 50개 반도체 기업 중 TSMC를 제외한 엔비디아(-22%), ASML(-20%), 삼성전자(-6%) 등 49개 종목의 주가가 하락했다. 이승우 연구원은 “금리 인상 및 긴축에 속도가 붙을 것이란 점이 부담으로 작용해 1월은 반도체 기업들에 주가 측면에서 최악의 달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많은 업체가 예상을 상회하는 실적과 긍정적 전망치를 발표한 만큼 주가를 끌어내린 것은 분위기 변화였다”며 “그러나 기초체력 측면에서 시장 분위기는 오히려 긍정적”이라고 덧붙였다. 이 연구원은 올해 반도체 시장이 6135억 달러 규모로 11.4% 성장하고, 메모리 시장도 다운 턴 우려에도 1653억 달러 규모로 7.9%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PC 및 서버 수요 모두 올해 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당초 올해 소비 패턴 정상화로 PC 판매가 주춤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지만, 오미크론 확산에 따른 소비 패턴 정상화 지연, 비대면 생활 방식 확대가 지속될 전망”이라며 “올해 PC 출하 증가율을 기존 -3%에서 3%로 상향한다”고 말했다.
또한, “빅테크 기업들의 장기 성장을 위한 설비투자 경쟁이 쉽게 멈추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올해 서버 출하는 7∼8%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란 긍정적 전망을 유지한다”고 밝혔다. 메모리 다운 턴 우려는 완화될 것으로 예상됐다.
이 연구원은 “PC나 서버 등 반도체 관련 수요가 견조한 가운데 메모리 업체들은 1분기부터 출하를 자제해 가격 하락 충격을 줄이고 있고, 세트 업체들의 부품 재고조정 우려도 지난해 하반기와 비교해 개선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지난해 메모리 업체들을 괴롭혔던 메모리 겨울 논쟁은 다소 싱겁게 끝날 듯하다”며 “이번 메모리 사이클은 과거처럼 뚜렷하기보다는 다소 흐지부지한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올해 D램 평균판매단가(ASP)는 연말 기준 16% 하락할 것으로 전망하며 “D램 가격이 하락한다는 면에서 다운 턴으로 봐야 하지만, 시장 매출 규모는 오히려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다운 턴 같지 않은 다운 턴이 될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다만 인플레이션과 긴축 변수가 하반기 경제 회복 기대감과 이에 기초한 메모리 사이클 회복에는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긴축이라는 역풍은 실적 및 주가의 상단을 제한하는 변수로 작용할 수 있으며, 특히 금리 상승은 미래 기대감의 현재 가치를 낮추는 요인”이라고 전했다.
헬로티 서재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