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DX] 설계 앞단으로 간 시뮬레이션...제조 가상화가 도달하는 ‘다쏘시스템표’ 엔지니어링 비전

2026.06.11 19:46:04

최재규 기자 mandt@hellot.net

데이터 가공 뛰넘는 ‘전사적 재편’으로...LLM이 가져온 제조 현장의 압박

 

제품 개발의 주기가 단축되면서 제조 연구개발(R&D) 현장에는 더 빠른 검증, 낮은 비용, 높은 품질이라는 과제가 동시에 부여됐다. 김용현 LG전자 연구위원은 이 과정에서 디지털 전환(DX)에서 인공지능 전환(AX)로 전환되는 속도를 짚었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데이터 가공과 머신 러닝(Machine Learning) 기반 업무 효율화가 핵심 과제였지만, 지금은 거대언어모델(LLM)을 바탕으로 한 전사적 업무 재편이 제조업의 새로운 압박으로 부상했다는 진단이다.

 

그는 “AX 로드맵은 도구 도입이 아니라 워크플로 재설계”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개발 조직의 타임라인을 압박하는 요인은 전기차 수요 변동, 중국 제조사의 짧은 개발 주기, 글로벌 경쟁사의 인공지능(AI) 네이티브 전환이다.

 

 

이 가운데 김 위원은 데이터 거버넌스, 엔드투엔드(End-to-end) 연결성, 설계 지식 데이터 지도화 구축을 주요 과제로 꼽았다. 개별 업무에 AI를 파편적으로 붙이는 방식으로는 개발 공정의 병목을 줄이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아울러 이 같은 제조 공정 재배치와 맞물려 엔지니어링 환경의 연산 병목도 급증했다. 설계 데이터는 대형화됐고 시뮬레이션, AI,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실시간 협업 등은 현장의 기본 조건으로 안착했다.

 

이형우 한국레노버 워크스테이션 BDM 상무는 “이제는 일반적인 설계를 거쳐 시뮬레이션, AI 활용, 디지털 트윈, 실시간 협업이 중요해졌다”며 “엔지니어가 열심히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처리해야 할 데이터양과 연산량이 이전과 달라진 만큼, 하드웨어 플랫폼 역시 개발 생산성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는 암시다.

 

글로벌 시뮬레이션 및 3차원(3D) 설계 솔루션 업체 다쏘시스템이 지난 11일 연 ‘시뮬리아 유저 데이 2026(SIMULIA User Day 2026)’에서 이에 대한 파훼법을 내놨다. 앞선 두 가지 압박을 해결할 대안으로 모델링·시뮬레이션 통합(MODSIM), AI, 가상 환경, 공간 컴퓨팅을 통합한 개발 체계가 제시됐다. 설계·해석을 따로 취급하고 파일을 주고받던 기존 방식에서, 제품 기획과 설계 초기 단계부터 성능을 예측하고 리스크를 줄이는 구조에 초점이 맞춰졌다.

 

 

라이프사이클 후반부 ‘검증단’에서 초기 ‘판단 체계’로...시뮬레이션, 위치 이동하다

 

다쏘시스템이 제시한 패러다임의 핵심은 제품 생애주기(Lifecycle) 속 시뮬레이션의 ‘위치 이동’이다. 제품 개발 후반부에 배치되던 검증 도구를 초기 설계 단계의 판단 체계로 전진 배치하는 발상. 이주상 다쏘시스템코리아 본부장은 “과거 라이프사이클 후반부 ‘검증단’에 머물던 시뮬레이션이 현재는 제품 기획과 설계 초기 단계에서 성능을 예측하고 리스크를 줄이는 핵심 역량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최신 트렌드를 설명했다.

 

이러한 변화는 모델 준비, 해석 조건 설정, 결과 검토 등 소모적인 기존 반복 작업을 AI가 전담하고, 엔지니어는 설계 방향 설정과 검증 전략 수립에 집중하는 구조를 제안한다. AI가 업무 효율과 판단 정확도를 높이면 제품 개발 참여자 전체가 성능을 공유하며 의사결정에 참여하게 되는 것. 사후 결과 확인용 계산 도구였던 시뮬레이션이 사전 설계 판단을 위한 공통 언어로 이동했다는 의미다.

 

미셸 애시(Michelle Ash) 다쏘시스템 시뮬리아(SIMULIA) 최고경영책임자(CEO)는 이 전략을 ▲물리 기반 솔버(Solver) 강화 ▲MODSIM ▲AI 적용 등 세 가지 방향성으로 정립했다. 즉, 충돌이나 공기 저항 등 물리 법칙 수학 문제를 대신 풀어주는 핵심 연산 엔진 역할인 ‘솔버’의 하드웨어 구조를 그래픽처리장치(GPU) 환경으로 재구축해 계산 속도의 임계치를 극복하겠다는 구상이다.

 

첫 단계는 계산 기반 고도화다. 사측은 아바쿠스(Abaqus)·파워플로우(PowerFLOW)·CST스튜디오스위트(CST Studio Suite)·심팩(Simpack) 등 자사 핵심 솔버 소프트웨어 제품을 GPU 환경에 맞춰 재구축하고 있다. 순서대로, 구조역학(Structural Mechanics)·유체역학(Fluid Mechanics)·전자기학(Electromagnetics)·동역학(Dynamics) 등 분야별 4대 연산을 담당한다.

 

애시 CEO는 “GPU용으로 아키텍처를 다시 짜면서 최소 3배에서 최대 25배까지 연산 속도를 끌어올렸다”며 자사 기술 메커니즘을 언급했다.

 

두 번째 과정인 MODSIM은 설계·해석의 데이터 연결이다. 자사 3D 기반 설계·엔지니어링 소프트웨어 브랜드 ‘카티아(CATIA)’의 모델링 역량과 시뮬리아(SIMULIA)의 시뮬레이션 기능을 단일 데이터 구조로 통합하는 방식이다.

 

이때 시뮬리아는 다쏘시스템의 해석·시뮬레이션 브랜드로, 물리 영역별 솔버를 포괄한다. 카티아가 설계·모델링을 담당한다면, 시뮬리아는 구조·유동·전자기·동역학 등 해석·검증 역영을 맡아온 셈이다.

 

 

MODSIM은 이 두 브랜드를 하나의 개발 흐름으로 묶어 설계 단계에서 해석 결과를 확인하는 환경을 만든다. 이 대목에서 애시 CEO가 강조한 지점은 내부 구현 방식보다 반복 검토의 최소화다. 설계·해석이 같은 데이터 흐름 위에 놓이면 하나의 설계안만 오래 붙잡는 대신 여러 대안을 빠르게 비교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애시는 미국 자동차 제조사 포드(Ford)의 실증(Pilot) 사례를 들어 “기존 40시간이 걸리던 설계 작업을 MODSIM을 통해 4시간으로 단축했다”며 “하나의 설계안만 반복 검토하던 시간에 이제는 10개의 대안을 동시 검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AI는 이 통합 구조 상단에서 구동된다. 애시 CEO가 설계한 AI의 자리는 해석 소프트웨어 외곽을 맴도는 보조 도구가 아니다. 물리 솔버와 MODSIM으로 정립된 엔지니어링 인프라 위에서 직접 연산에 관여하는 산업용 AI다.

 

그는 “MODSIM에 가속 AI를 결합하는 순간, 연산 타임라인은 4초 수준으로 압축된다”며 공정 최적화 방안을 짚었다. 설계·해석을 동일한 구조로 먼저 묶어낸 뒤 AI를 탑재하는 명확한 기술적 인과인 셈이다.

 

이 구상은 설계·제조·사용·유지보수·재활용을 관통하는 제품 전체 생애주기를 가상 환경에 구현하는 자사 기술 비전 ‘3D유니버스(3D UNIV+RSES)’ 생태계로 확장된다. 첫 물리적 프로토타입을 공장 바닥에 찍어내기 전에 이미 답을 알고 시작하는 개념이다. 제품의 물리적 변형이나 가혹 환경에서의 사용자 반응은 물론, 생산 라인 로봇의 동선·수명이 다한 뒤 재활용 매커니즘까지 가상 공간에서 예측·통제하는 역량이다.

 

 

가상 환경에서 엔지니어의 손발이 되는 생성형 AI(Generative AI) 기능은 ‘가상 동반자(Virtual Companion)’라는 역할 기반 에이전트로 구체화됐다. 지난 2월 미국에서 열린 다쏘시스템 연례 행사 ‘3D익스피리언스 월드 2026(3DEXPERIENCE World 2026)’에서 보강된 최신 AI 기술 방법론이다.

 

지난해 행사에서 범용 인터페이스로 첫 등장해 가상 동반자의 포문을 연 ‘아우라(AURA)’, 형상·시뮬레이션·제조를 잇는 작업 순서를 제안하는 ‘레오(LEO)’, 소재·규제·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등 과학 기반 의사결정을 돕는 ‘마리(MARIE)’로 구성됐다.

 

애시 CEO는 “이들을 버추얼 컴패니언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말 그대로 ‘또 다른 동료’이기 때문”이라며 “가상 환경에서 엔지니어와 실무를 함께 처리하는 파트너”라며 챗봇을 뛰어넘는 가상 작업대 속 실무 협업 솔루션임을 확실히 했다.

 

다쏘시스템이 지향하는 이 같은 AI 네이티브 엔지니어링은 공정 자체의 재배치를 목표로 한다. 물리 솔버가 해석의 신뢰성을 보장하고, MODSIM이 설계와 해석을 단일 데이터 구조로 통합하면, AI가 그 위에서 반복 업무를 실시하며 의사결정 범위를 넓히는 식. 시뮬레이션의 진짜 제자리는 검증 뒤가 아니라 설계 앞단이라는 선언이다.

 

문서 파편화 끝낸다...AI가 판단할 ‘맥락형 데이터’ 인프라 탄생?

 

이러한 다쏘시스템의 공정 전환 전략은 모델링·시뮬레이션에서 구체화됐다.

 

프란체스코 폴리도로(Francesco Polidoro) 다쏘시스템 시니어 디렉터는 시뮬레이션 병목을 개발 현장의 '작업 손실'에서 찾았다고 했다. 기존 방식은 설계자가 형상을 만들어 파일을 내보내면 해석 엔지니어가 이를 받아 메시를 짜고 솔버 입력 파일을 구성하는 방식이다. 설계가 바뀌면 이 과정은 처음부터 반복됐다.

 

디렉터는 이 부분을 진단했다. “설계를 변경하고 시뮬레이션을 다시 실행해야 하는 순간, 대부분의 작업은 파일 변환과 전달 과정에서 사라진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다쏘시스템이 MODSIM으로 겨냥한 지점은 이 손실 구간이다. 설계자·해석자가 다른 파일을 주고받는 대신 하나의 데이터 모델 위에서 같은 제품을 다룬다. 설계·해석 데이터가 따로 쌓이지 않고 같은 구조 안에서 갱신되는 형태다. 형상이 바뀌면 해석 쪽에 변경 알림이 뜨고, 몇 번의 조작만으로 해석 루프가 이어진다. 폴리도로 시니어 디렉터는 이를 두고 “대부분 요소가 같은 환경 안에 있다는 점이 강력한 이점”이라며 “이것이 순차 엔지니어링에서 동시공학으로 이동하게 하는 핵심”이라는 결론을 내놨다.

 

 

이 구조는 모션과 전자기 해석 사례로 연결된다. 다쏘시스템은 다물체 동역학(Multi-body Dynamics) 해석 소프트웨어 ‘심팩(Simpack)’ 기능을 자사 버추얼 트윈 플랫폼 안으로 가져왔다.

 

‘3D익스피리언스(3DEXPERIENCE)’ 환경에서 설계자가 운동학적 거동과 다물체 동역학을 같은 작업 흐름 안에서 확인하는 방식을 제시한 것. 전문가 영역에서는 다물체 시뮬레이션에서 나온 하중을 구조 해석으로 넘기고, 다시 그 결과를 유연체 모델로 반영하는 흐름이다. 저주파 전자기 해석용 ‘오페라(Opera)’ 기술 역시, 로봇 팔(Robot Arm) 전용 전기 모터의 전자기 성능을 같은 모델링 환경에서 분석하는 대표적 사례다.

 

이 과정에서의 핵심은 구조·구동·전자기 해석이 개별 도구와 파일로 흩어지지 않고, 단일 변경 이력 위에서 물려 돌아가는 점이다. 부품 형상이 바껴도 해석 맥락이 끊기지 않는 이유다. 형상, 재료, 하중 조건, 해석 결과가 하나의 데이터 안에 남는다.

 

다음 단계는 해석 프로세스의 ‘템플릿화(Templatization)’다. 다단계 해석 절차를 전문가의 개인 숙련에만 두지 않고 반복 가능한 방법론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폴리도로 디렉터는 “스크립트나 복잡한 코딩 없이 재사용 가능한 템플릿을 빌드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이를 통해 전문가·비전문가가 플랫폼 안에서 동일한 기술 자산을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지점에서 MODSIM은 AI의 기반 데이터 구조로 작동한다. 산업용 AI가 설계에 깊이 관여하려면 형상·재료·요구사항·해석 등 조건이 한데 정립된 ‘맥락형 데이터’가 필수다. 디렉터는 “MODSIM은 어떤 형상과 조건에서 해석이 수행됐고, 설계 변경이 어떤 영향을 줬는지 플랫폼에 기록한다”고 짚었다.

 

 

검토의 감각이 바뀐다? ‘센스 컴퓨팅’ 공간 위 색상 기류

 

회사의 앞선 로드맵은 애플(Apple)과 협업한 ‘애플 비전 프로(Apple Vision Pro)’ 기반 공간 컴퓨팅 환경에서 시각적으로 구체화됐다. 다쏘시스템은 버추얼 트윈 환경에서 사용자의 오감과 물리 현상을 연결한다는 의미를 담아 이를 ‘센스 컴퓨팅(Sense Computing)’으로 정의했다.

 

이날 글로벌 모터스포츠 대회 ‘포뮬러 원(Formula One, 이하 F1)’의 차량이 무대 위 가상 공간에 실물로 등판했다. 3D익스피리언스 플랫폼에 저장된 설계·해석 데이터가 현실 공간으로 불려 나왔고, 사용자는 차량 전체 형상을 1대1 실제 크기로 마주했다.

 

▲ 센스 컴퓨팅을 활용한 3D익스피리언스 데이터 기반 차량 설계·해석 검토 데모다. (촬영·편집 : 헬로티 최재규 기자)

 

데모를 진행한 김현진 다쏘시스템코리아 3D익스피리언스 이그제큐티브 센터(3DEXPERIENCE Executive Center) 센터장 역시 이 공간이 주는 현장감에 주목했다. 그는 “3D 설계안을 1대1 비율로 현실 세계에 불러와 구조를 한눈에 보는 이른바 ‘익스플로디드 뷰(Exploded View)’까지 살펴볼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의 말대로 가상 F1 차량은 부품 단위로 분해됐고, 사용자는 개별 구성 요소를 공중에 띄워 검토를 이어갔다. 물리 프로토타입 제작 전, 원격지 엔지니어가 동일한 가상 공간에서 같은 제품을 보며 협업하는 시나리오를 부각한 모습이다.

 

 

그 다음은 실제 물리 데이터의 결합이다. 차량이 분해된 가상 작업대 위로 정압 분포(Static Pressure), 유동 속도(Velocity Magnitude) 등 전산유체역학(CFD) 기반의 공력 해석 결과가 차체 표면과 주변 공간을 감싸 안았다.

 

차체 부위별 압력, 공기 가속 위치, 와류 발생 지점, 에너지 손실 구간 등이 입체적인 색상 기류로 시각화되는 연출이다. 김 센터장은 “공기 흐름, 압력 분포, 열, 전자기장 등 작업자가 눈으로 보지 못하는 요소를 공간 안에서 직접 확인하는 방식”이라며 센스 컴퓨팅의 시각적 기능을 짚었다.

 

공기 흐름이 차체 성능을 좌우하고, ‘누르는 힘(Downforce)’과 ‘공기 저항(Drag)’의 균형이 속도·성적과 직결되는 F1 차량은 이 기술을 입증할 최적의 피사체다. 다쏘시스템은 차량 형상 위에 해석 데이터를 그대로 적용해, 공력 손실 지점과 개선 구간을 실시간으로 도출하는 워크플로를 선보였다. 해석 결과물이 설계 판단을 위해 살아 움직이는 '3차원 공간 데이터'로 도출된 순간이다.

 

▲ F1 차량 형상 위로 전산유체역학(CFD) 공력 해석 결과가 겹쳐졌다. 정압 분포, 유동 속도, 와류 발생 지점, 에너지 손실 구간이 3D 공간 데이터로 시각화돼 작업자가 공기 흐름과 압력 변화를 실제 형상 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촬영·편집 : 헬로티 최재규 기자)

 

김현진 센터장에 따르면, 이 시각적 장면은 앞선 MODSIM의 데이터 통합 논리와 맞물려 돌아간다. 설계·해석이 단일 데이터 모델을 공유하기 때문에, 결과를 다시 문서로 옮겨 부서 간에 설명·설득하는 소모적 공정이 애초에 발생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센스 컴퓨팅은 이 엔지니어링 데이터를 인간이 받아들이는 감각적 메커니즘 자체를 바꾸는 혁신으로 다쏘시스템 비전의 핵심으로 활약할 전망이다.

 

헬로티 최재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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