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교자성체(ferromagnetic-like antiferromagnet) 내부에서 스핀의 정렬 방향을 바꿔 변환 신호의 방향까지 뒤집는 데 성공했다. 복잡한 다층 구조나 강한 자기장 없이도 전류 스위칭이 가능해지는 원리를 제시한 것으로, 향후 저전력 스핀 반도체 소자 개발의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UNIST 신소재공학과 유정우 교수와 물리학과 손창희 교수 연구팀은 10일 산화루테늄 기반 교자성 소재에서 스핀-전하 변환을 가역적으로 제어할 수 있음을 실험적으로 규명했다고 밝혔다.
산화루테늄은 최근 반도체 분야에서 강자성과 반강자성의 장점을 모두 지닌 ‘제3의 자성 소재’로 주목받는 물질이다. 이론적으로는 기존 반도체 소자의 속도 한계를 뛰어넘고 에너지 효율을 크게 높이는 스핀 반도체 구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실제 전자소자로 활용하려면 스핀 신호를 회로가 인식할 수 있는 전류 신호로 바꾸는 ‘스핀-전하 변환’이 필수적임에도, 교자성 소재에서는 이를 정밀하게 제어하는 기술이 부족했다.
연구팀은 교자성체 내부에서 스핀 정렬 방향을 나타내는 네엘 벡터(Néel vector)를 조절하면 스핀이 전하로 변환될 때의 극성(신호 방향)이 완전히 뒤집힌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 즉 자성 정렬을 180도 회전시키는 것만으로 출력 신호의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원하는 대로 가역적으로 변경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외부 전원을 끊어도 정보가 유지되는 비휘발성 메모리 소자에서 ‘0’과 ‘1’ 상태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제어할 수 있는 핵심 원리다.
그동안 스핀 신호 변환을 제어하려면 복잡한 적층 구조를 제작하거나 강한 외부 자기장을 가해야 했다. 연구팀은 자체 설계한 단일 소자로 이러한 한계를 돌파했다. 이산화타이타늄(TiO₂) 기판 위에 산화루테늄(RuO₂)과 코발트철붕소(CoFeB) 박막을 차례로 적층해 실험 소자를 제작하고, CoFeB 박막에 온도 차이를 줘 생성된 스핀 신호를 산화루테늄으로 주입한 뒤 이를 전하 신호로 변환되는 과정을 정밀 측정해 원리를 검증했다.
공동 연구진은 “이번 연구는 교자성체에서 스핀 신호를 가역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실험적으로 확인한 것”이라며 “이 원리는 스핀 기반 차세대 논리 소자 및 메모리 소자 설계의 핵심 기술로 활용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계도전 R&D 프로젝트’의 지원을 받아 2024년 9월부터 진행됐다. 이 사업은 기존 연구 방식으로는 구현이 어려운 고난도·고위험 기초과학 연구를 빠르게 추진하기 위해 설계된 국가 연구개발 제도로, 연구팀은 소재 합성부터 소자 제작·측정·논문 발표까지 약 1년 만에 전 과정을 완주하며 우수한 성과를 냈다.
김동호 한계도전전략센터 책임PM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혁신 도전형 연구의 대표적 성공 사례”라며 “향후 이 기술이 한국 반도체 산업의 핵심 전략 기술로 발전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는 UNIST 신소재공학과 정현정 연구원(현 GIST 이노코어 박사후연구원)과 물리학과 소기목 연구원이 제1저자로 참여했으며, 연구 결과는 나노과학·재료 분야 세계적 권위지 ‘나노 레터스(Nano Letters)’에 11월 25일자로 게재됐다.
헬로티 이창현 기자 |





